[전대길의 CEO칼럼] 스위스軍과 폴란드軍
[전대길의 CEO칼럼] 스위스軍과 폴란드軍
  • 편집국
  • 승인 2020.06.2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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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70주년을 맞으면서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월남전 참전용사,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수필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유럽에선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한 중립국 두 나라가 있다. 폴란드와 스위스이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폴란드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식량과 지하자원이 필요했다. 또한 동맹국인 이탈리아와 연결된 스위스 국도를 확보하는 게 승리 요인이었다. 그래서 독일은 폴란드와 스위스를 침공했다. 

독일 군대의 침공으로 폴란드는 한 달 만에 쉽게 점령당했다. 폴란드에는 약 170만 명의 병력과 1차 대전에서 활약한 복엽 전투기, 그리고 유럽 전역에 명성이 높았던 기마부대가 있었다. 

그러나 폴란드는 독일의 침략 정보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고 중립선언에 만족한 나머지 평화만 생각하고 전쟁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다. 따라서 폴란드는 독일군의 신형 전차와 폭격기 공격에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폴란드 국민 대다수는 인접한 나라로 피난을 떠났다. 

폴란드와 달리 스위스는 남달랐다. 전 국민이 민병대원(民兵隊員)인 스위스 국민들은 전쟁에 대비한 완벽한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군사적 요충지에는 견고한 방공호와 지하요새를 구축하고 전쟁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스위스의 ‘앙리 기장(Henri Guisan)’ 장군이 앞장서서 스위스 국민의 결기(決起)를 다졌다. “독일군이 스위스를 침공해 온다면 우리 모두는 이탈리아로 향하는 모든 도로를 끊어버리자! 그리고 최후의 1인까지 결사항전(決死抗戰)하자!”고. 결국 스위스를 침공하려 작전을 세웠던 독일군은 스위스 침공을 포기했다. 

독일의 침공을 알아채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국방력에 안주했던 폴란드는 패전했다. 이와는 반대로 국토방어에 유리한 산악지형을 믿고 안주할 수도 있었건만 유비무환(有備無患)의 결기로 전쟁 준비를 했던 스위스는 독일의 침공 야욕을 물리칠 수가 있었다. 

한마디로 폴란드와 스위스의 국운(國運)은 서로 다르게 판가름이 난 것이다. ‘사전에 미리 대비하면 걱정할 게 없다’는 4자성어가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2020년 6월25일은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 70주년을 맞는 날이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났던 전쟁인양 ‘한국전쟁(Korean War)’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말하는 이가 있다. 이는 참으로 곤란하다. 우리 한국인은 ‘4.19혁명’, ‘8.15해방’처럼 ‘6.25전쟁’이라고 말하고 써야 함이 옳다.  

지금 이 순간에도 6.25전쟁이 끝난 게 아니다. 남북 간에 휴전(休戰) 중이다. 최근 북한은 남북평화의 상징인 개성공단 관리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했다. 미 전략자산 전개 및 한미훈련 재개와는 별도로 한반도 긴장 고조에 대비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군의 기본자세이다. 

어떠한 난관에도 우리 군의 결기와 국민들의 총화 단결된 힘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 평화로운 한반도를 이룩할 수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 군대처럼 무사안일(無事安逸)해서는 곤란하다. 전쟁에 무감각한 폴란드 국민처럼 느껴질 정도로 한반도에는 안보불안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6.25전쟁 휴전 협상대표였던 미국의 ‘C. Turner Joy’ 해군제독의 <공산주의자의 협상기법>이란 책에서 강조한 “공산주의자들은 상대방에 의한 무력사용 위협을 실감할 때에 실질적인 협상에 나선다”는 가르침을 잊지 말자. 

대한민국 영토를 수호하고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수호하는 대한국인의 결기(決起)를 다지며 세계 최강의 국방력을 키우자. 세계 최강의 국력과 군사력만이 한반도에 전쟁을 사전에 예방하고 자유, 민주, 평화를 지킬 수가 있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월남전 참전용사,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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