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생애설계 이야기25] 생애설계와 시니어의 품격(Ⅱ)
[최승훈 소장의 생애설계 이야기25] 생애설계와 시니어의 품격(Ⅱ)
  • 편집국
  • 승인 2020.09.0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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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공유의 품격 무재팔시(無財八施)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사)시니어벤처협회 고문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1. 천격(賤格)과 품격(品格)

1) 우리가 모르는 네 가지

첫째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잘사는지, 한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주재하였고 세계 7번째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의 30-50클럽에 가입한 큰 나라가 되었는데 아직도 자기비하의 엽전의식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에 사는 교포들은 ‘미국의 조선족’이라는 표현까지 쓴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의 높아진 경제규모가 국격으로 이어지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둘째는 한국인들만 일본과 중국이 얼마나 큰 나라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한때 우리를 식민지배한 가해자다. 요사이 ‘잃어버린 20년 ’으로 표현되는 경제침체를 넘어 호황으로 달려갔던, 일본은  여전히 세계 3위 경제대국의 저력으로 암암리에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미국과 함께 G2로 진입하고 있는 중국의 굴기(起)는 또 어떠한가? 중국은 14억의 인구, 미국에 버금가는 드넓은 영토, 핵과 군사위성을 보유한 군사대국으로 한반도에 대한 패권의지를 버린 적이 없다. 

셋째는 한국인들이 얼마나 위험한 지역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북한이 존립하는 한, 한반도는 계속 위험한 화약고로 남아 있을 것이다. 북녘의 기형적인 3대 세습으로 36세 김정은의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로 공갈치고 있는 한반도의 불안정과 불확실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70여 년 동안 북한 리스크에 시달려온 나머지 거의 안보 불감증에 걸린 상태여서 밖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평안에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브라질 교포의 말대로 우리가 참으로 어렵고 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벼랑 끝까지 몰리는 상쟁과 논란의 와중에서도 결국 산업화와 민주화의 옳은 길을 선택해 달려왔다. 

윈스턴 처칠은 “낙관론자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지만,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 속에서 어려움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도 낙관과 긍정의 힘으로 더 큰 기회를 찾아 나설 때다. 

넷째는 우리가 얼마나 극심한 부정부패에 노출된 채 정치.경제 판에 노출되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요즘 뉴스를 보면 참으로 불안하고 의욕이나 희망보다 절망감만 고조되는 있는 것이다. 마치 범죄가 판을 치는 나라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기업과 군사기밀을 마구잡이로 노출하는 언론의 행태가 매우 걱정스럽고 위험물질 관리나 안전 관리 불감증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도심에서 버젓이 마약을 제조해도 아무도 고발이나 견제조차 없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도처에서 부정식품이 판을 치다 못해 일부 학교 급식마저 원산지를 속이고 식수규정을 위반하다가 마침내 식중독 같은 위험에 노출되고 마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사기의 천국인 것처럼 보험사기, 무슨 사기, 보이스 피싱 등 사기사건이 횡행하고 외국인들에게 택시요금의 바가지를 씌운다고 언론이 고발을 해도 개선되지 않고 부정부패가 만연한데도 법치는 자리 값을 못해내는 것이 현실이다.
 
수범을 보이는 지도자나 존경하고 싶은 지도자를 찾아보기가 어려워진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또한 부자를 우습게보거나 권력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권위주의에 빠져있는 사회가 되었는지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의 명예 같은 것은 아랑곳없이 마구잡이로 짓밟아 버리는 사회로 가는 것이 그게 과연 자유국가이며 문명국가라 할 수 있을까? 영화를 아무리 잘 만들고 한류가 기승을 부리고 올림픽에서 아무리 금메달을 딴다 해도 나라의 품격은 세워지지 않는다.

탈북자들이 그토록 위험과 고초를 겪으며 탈북을 했어도 얼마 후엔 행여 다시 돌아가도록 빌미를 주는 것은 우리가 아닌가 하고 냉정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2) 철면피와 파렴치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는 무엇일까? '철면피'라는 단어가 있다. 낯이 두껍다는 뜻이다. 즉,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밖으로 부끄러움이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철면피는 적어도 자신의 행위를 판단할 줄 알고, 그 행위의 주체를 인식하고 있다. 철면피의 얼굴에서 철판을 걷어내고 나면, 우리는 금세 빨갛게 상기된 그의 얼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철면피를 넘어서는 파렴치의 단계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판단이 중지된 상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염치라는 가치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날 00마트 앞에서 '주차 금지' 표시가 된 곳에 차를 세우는 엄마에게 아이가 물었다. "여기 '주차 금지'라고 되어 있는데 괜찮아?"  그 아이의 엄마는 "응, 우리는 괜찮아." 아이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가면서도 무언가 찜찜한 듯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이 아이에게는 아직 염치가 남아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것이 반복되면 점차 파렴치의 단계로 넘어가게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공통점은, '주차 금지' 표시가 된 곳에 주차된 차들은 거의 다 대형차들이고 소형차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행위에 대한 판단 중지의 상태를 넘어서는 '파(破)' 염치의 수준이 있다. 바로 유체 이탈의 경지에 이른 태도의 문제이다. 행위에 대한 분간을 못하는 수준을 넘어서, 주체의 인식에 실패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어렵지만 스스로 독경을 외어 무아지경에 빠지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

21세기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흔히 '주어가 없는 상황'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예와 의가 사라지면 지위와 이익만을 탐하게 된다고 했다. 개인적 이익만이 유일한 최고의 가치가 되면, 염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진다. 사회에서 '공공'의 개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김영란 법은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로 그 법의 취지는 우리 사회에서 뇌물이나 다름없는 과도한 접대문화를 없애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본말이 전도되어 이 제도를 어떻게 피해갈 것인가에만 골몰하는 생각을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는 것은 염치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 법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과도한 욕심에 대해 부끄러움을 갖는 사람들에게 작동하는 법이다. 실은 모든 제도가 그러하다. 부동산 투기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나 규제법이 작동하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기를 지속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그 법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터이다.
 
3) 개, 돼지란 말의 함의(含意)

몇 년 전에 어느 공직자가 국민을 개, 돼지에 비유해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필자 역시 한편으로, 이 나라 국민들이 정말 개, 돼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어 적지 않게 당황한 적이 있다. 

사람이 염치를 잃고 제 입에 들어가는 것만 생각하면, 이것이 개, 돼지와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식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끝내 돼지로 변해버린 모습이 오늘의 우리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개와 돼지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 도덕과, 윤리, 더불어 사는 삶, 그런 것들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곳에서는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음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사회가 바르게 작동하게 하려면, 그러한 행태를 버려야 한다. 

염치를 잃은 사람들이 사회와 조직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면이 벗겨진 후 부끄러움을 느끼는 철면피가, 염치를 아예 상실한 사람보다는 훨씬 나을 수도 있다. 

4) 약자 배려와 포용의 가치 있는 삶

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동경의 대상이 되고 특별한 존재로 대우받기를 원한다. 만약 사람들이 어디서든 나를 반가워하고 나에게 예의를 갖춰 대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들어주려고 한다면 존중 받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된다면 나는 꽤 좋은 사람이며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반면에 사람들이 내가 건네는 눈길을 피하고 나의 말에 반박하며 부탁을 묵살한다면 나는 좌절하거나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지속된다면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은 아닌지,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懷疑)하게 될 것이다. 이런 반응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반응을 상호성, 다시 말해 서로간의 관계와 소통의 과정을 통해 경험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타인에 대한 호의는 친절과 배려로 돌아오고 악의는 보복으로 돌아온다. 이런 관계 속에서 우리는 나의 욕구를 타인의 욕구와 조화시키며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

 이를 통해 자신의 의미와 매력을 발견하고 인간적으로 성숙해 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친절은 타인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나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상호성이 반드시 인간적인 관계나 진정성에 기반을 두고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열거나 상대를 배려하지 않아도 대접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내가 돈이나 권력의 힘을 갖고 있는 경우이다. 

이 때 나는 그 힘을 필요로 하는 '을'에 대해 소위 '갑'의 위치에 서게 되며 상대적 힘을 많이 가질수록 이를 이용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취하고 원치 않는 것은 타인이 하도록 조정할 수 있다. 

이런 위치에 있는 갑은 아무나 될 수 없기에 많은 사람들의 동경을 받는다. 그리고 그의 돈이나 권력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그런 힘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복종과 환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는 함정이 있다. 그 함정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환대가 자기 자신이 특별하고 훌륭해서 그런 것이라는 착각현상이다. 그러나 실상 그 대접은 그 사람 자체나 그의 인품과는 상관없이 그가 가진 돈과 권력에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그 힘이 사라지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환대가 되고 만다. 

이런 대접은 아무리 격식과 예의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진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통해 내면 깊숙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좋은 느낌을 갖기는 힘들다. 그저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할 수 착각의 자유일 뿐이다. 

결국 인간성을 담보하지 못 한 돈과 권력,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진정성 없는 일방적 관계는 타인 뿐 아니라 자신을 소외시킨다. 우리는 최근 거대 재벌을 이끄는 사주들의 비행기 회항 사건, 운전기사와 경비원 폭행사건들을 통해 이러한 민망한 장면들을 연달아 목격하고 있다. 

이런 사건들은 가진 자가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상대적 약자에게 악의적으로 고통을 준 행위라는 점에서는 분노를 느끼게 하지만, 소위 일부 최상류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타인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신이 가진 것과 자기 자신을 구분하지 못 하고 스스로 소외되어 버린 인간의 품격에 대한 서글픔이 느껴진다. 

2.품격의 제고 방법

1) 두 가지를 조심하라

우선 우리들의 언어문화를 살펴보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는데 설화와 필화가 판치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인생을 통해서도 조심해야 될 둘을 들라면 혀끝과 손끝이라 할 수 있다. 

첫째는 혀 끝(설화 舌禍) 이다. 
말이란 내 입속에 있을 때는 내가 지배하지만 입 밖으로 나간 후는 말에 지배를 당한다고 했다. 어떤 고검장이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다가 감옥에 갔고 어떤 장관이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다가 감옥에 갔다. 우리는 시장에 나가서 하찮은 물건도 골라서 사는데 왜 인격을 표현하는 말은 그렇게 막 해 댈까? 

그것을 우리는 막말이라 그런다. 아침에 신문을 보면 우리의 스트레스를 한껏 높이는 기사들로 꽉 차 있고 신문에는 우리를 격려하고,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우리의 자존심을 키우고, 우리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그런 내용을 찾을 수가 없다. 

둘째는 손끝이다. 
글 잘못 써서(필화 筆禍) 망신을 당하고 목숨을 잃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은 역사를 통해서 배워 왔다. A모라는 ㅇㅇ부 장관은 임명되고 나서  이틀인 만48시간도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43시간 만에 그 좋은 장관자리를 내려와야 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그를 지명을 해준 그 님을 위해서 이런 표현을 했다. 성은(聖恩)이 망극하여 견마지로를 다해서 정권을 재창출 하는데 이 한 몸을 던지겠다고 표현하고 그 문서를 ㅇㅇ대로 보낸다는 것이 기자실로 보내지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말이 글로 써 퍼지고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는 그 짧은 순간에 그 자리를 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한번만 더 생각해보고 골라서 말하고 골라서 글을 쓰면 그런 문화는 얼마든지 개선하고 고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고소, 고발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일본에 비해서는 세배로 많다고 하는데 100개의 고소, 고발이 있다면 우리나라가 70개고 일본이 30개라고 그런다. 우리 흔히 듣는 말이 뭐 한다고 서로 시비하다가 안 되면 법대로 하라고 한다. 모든 인간관계는 법으로만 풀어낼 수는 없는데도 말이다.

내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상사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아내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남편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입장 바꿔 생각하면 풀어질 일인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방법은 먼 곳에 잊지 않다. 
우리가 기본을 지키고 실천하면 인간답게 사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내가 좋으면 남도 좋아하고 내가 싫으면 남도 싫어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다른 나라 문화를 인정하고, 다른 가풍을 인정하고, 나의 가풍을 인정해 주길 바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관계의 황금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대접받고 싶으냐? 그러면 먼저 대접을 하고, 내가 하기 싫으면, 남도 싫어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요즘 고객만족에서, 고객감동으로, 고객감동에서 고객졸도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는지를 내가 먼저 상대방기대에 맞게 알아서 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개인의 품격과 나라의 품격도 풍선처럼 올라갈 것이다. 신호등 앞에서 빨간불, 파란불을 무시 한 채 건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지키려고 만든 신호등 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2002년 월드컵 때 서울시청 앞에서 수십만 인구를 보았고, 수십만의 붉은 악마를 보았다. 그들이 떠난 자리가 휴지 한 장 없는 깨끗한 자리였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도 충격을 받았다. 하면 된다. 왜 깨끗한 거리를 못 만드는가? 

그리고 지금은 인테넷 시대이다. WWW는 월드 와이드 웹이다. 세계는 네트워크 공간이 되었고 마우스만 클릭하면 세계의 정보를 언제든지 실시간으로 다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공간을 더럽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함께 놀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구 쓴 댓글 때문에 목숨마저 끊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수 없이 보아왔다. 안 보인다고 막말하고 마구 글을 쓴다. 사이버 테러라는 말도 있다. 왜 없는 말을 만들고 말도 안 되는 안티 공격으로 자살로 몰아가는 일은 반드시 사라지게 해야 될 것이다.

 2) 품격은 노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품격 있는 시니어가 되려면 돈과 명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품격이란 결코 돈과 명예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시니어의 품격은 남을 배려하고 그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하며 불우한 사람에게도 예의를 갖추고 남을 험담하지 않는 등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의 기본 도리’를 지키고 사는 것. 이 중에서도  ‘배려’를 최우선으로 꼽을 수 있다. 

주위 사람은 물론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까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지켜보면 그 사람의 본성과 품격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공명과 이익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정의감과 윤리관 같은 기준이 분명한, 품격 있는 시니어라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품격 있는 행동과 가치관을 가진 부모에게서 품격 있는 아이가 길러진다. 물론 학교에서도 도덕적인 행동 규범과 지혜로운 삶의 방식을 가르치지만, 인간은 가르침이 있어도 좋은 일 대신 나쁜 일을 먼저 하고 마는 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경험과 연륜 있는 시니어라도 스스로 끊임없는 계발과 학습, 성찰과 교정이 필요한 것이다.
 
3) TPO에 맞는 외모와 복장 
        
<TPO: time, place, occasion의 머리글자.>
용모를 가꾸고  복장과 행동을 TPO에 따라서 다르게 해야 한다.

외모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되는 품격의 조건이다. 여기서 말하는 외모란 예쁜 얼굴이 아니다. 깔끔한 피부와 메이크업, TPO에 맞는 옷차림이다. 헤어는 단정하게, 피부는 청결히 한 다음 보습을 유지하고 베이스 메이크업을 옅게 하는 것이 깔끔해 보인다. 

시니어 들이 집에서도 긴장감을 유지하며 아름답게 지내야 한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품격을 포기한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깔끔하게 머리를 빗고 수염을 깎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품위가 살아날 수 있다. 여성이라면 머리띠를 하거나 핀으로 머리를 묶고 은은한 립스틱을 살짝 바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이런 사소한 행동으로 아내나 남편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고, 갑자기 누군가가 찾아와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옷차림도 중요한데 추리닝 대신 디자인이 조금 단정한 셔츠나 여성은 불라우스나 스웨터 착용을 권한다. 또 집에 전신거울을 두어 모습이 흉하지는 않은지 수시로 체크하며 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품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며 길러지는 것이다. 품격 있는 여성, 품격 있는 남편과 아이, 품격 있는 가정, 품격 있는 기업, 품격 있는 사회로 가는 길은 멀거나 어렵지 않음을 새길 필요가 있다.

3. 나눔과 공유의 품격 (무재팔시無財八施)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 시련은 시련일 뿐 끝장이거나 막장에 다다랐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세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최소한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고 단지 그것을 끄집어내고 제대로 활용하는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주변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잠재된 변화의 불씨를 다시금 피우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단지 그것을 표출시키고 스스로에게 피팅 시키는 마인드컨트롤이 부족했던 까닭이다.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의 일원으로 지치고 좌절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영혼들에게 지금의 자신이 빈 털털이고 황량한 광야에 내팽개쳐졌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노력부터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떤가? 가슴깊이 아로 새겨 용기를 북돋을 수 있는 불교의 가르침을 공유해 보자고 한다.

옛 이야기에 보면 어떤 사람이 석가모니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호소를 하였다고 한다. "석가님. 저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이 무슨 이유입니까?"

그러자 석가가 이르길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품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이에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빈 털털이로 남에게 줄 것이 없는데 남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되묻자, 석가는 다시 이르길 "그렇지 않느니라 아무리 재산이 없다 하더라도 네가 남에게 줄 수 있는 일곱 가지가 있느리라" 말하며, "다음 일곱 가지를 진실하게 행하면 하는 모든 일이 순조로워지리라" 일렀다고 한다.

바로 그 일곱 가지 베품이 무재칠시(無財七施)로 비록 가진 게 없지만 누구나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무형의 재산인 것이다.

첫째는 화안시(和顔施)이다.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띠고 부드럽고 정답게 남을 대하는 것으로 밝은 표정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다.

둘째는 언시(言施)이다.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대하는 것으로 사랑의 말, 칭찬의 말, 격려의 말, 양보의 말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짓는 열 가지 업 가운데 입으로 짓는 업이 네 가지로 가장 많다고 하였다. 상대를 속이는 허망한 말, 서로 이간시키는 말, 성나게 하는 말, 진실이 아닌 것을 교묘하게 꾸며대는 교언이 그것이다.  이밖에 몸으로 짓는 업과 마음으로 짓는 업이 각각 세 가지 이다.

셋째는 심시(心施)이다. 
착하고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으로 따뜻한 마음이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넷째는 안시(眼施)이다. 
호의를 담은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며, 동시에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눈으로도 말한다고 하지 않은가?

다섯째는 신시(身施)이다. 
힘으로 남을 도와주는 것이다. 약한 사람의 짐을 들어주거나 일손을 거들고, 고개 숙여 인사를 나눈 것으로 신시를 통해 몸가짐을 바르게 할 수 있다.

여섯째는 좌시(座施)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으로 지치고 힘든 이에게 편안한 자리를 내어주어 감동을 주고 스스로 베품의 기쁨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일곱째는 방사시(房舍施)이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하게 쉴 공간을 주는 것으로 이는 찰시라고도 한다. 굳이 묻지 않고도 상대의 속을 헤아려서 도와주는 행동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주로 찰시(察施)로 쓰여 진다. 두루 살펴서 베풀 수 있다는 뜻이다.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굳이 묻지 않고도 상대의 속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것으로 베풀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무재칠시(無財七施)는 보시의 본래 원리이다. 이것이 바로 잡보장경(雜寶藏經)이라는 불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즉 가진 게 없는(無財) 사람일지라도 남에게 베풀 일곱 가지(七施)는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여서 필자의 주창인데 지혜와 지식과 정보를 나눌 때 그 가치가 더 크다고 여겨진다.  나눔의 여덟 번째 지시(智施)를 추가하면 팔시(八施)가 된다.

무엇인가 변화를 도모하고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은 희망차지만 쉬운 일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특권이고 그것을 묵묵히 해 나갈 때 변화의 성과가 드러나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듯 베푸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선각자들이 이르시길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진다고 했지 않은가? 
비록 지금은 남들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행운들이 부럽고 스스로 좌절감에 빠져들게 할 지 모르지만 멀지 않은 시간에 그 행운이 바로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희망 속에 무재팔시를 통해 스스로를 강하고 한없이 큰 사람으로 변화시켜 함께 세상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시니어가 되어야 한다. 

돈 한 푼 안들이고 나눌 수 있는 8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나 없어도 실천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것은 시니어의 인격을 높이는 행동이 될 것이고 나라의 품격 제고(提高)로 연결 될 수 있을 것이다.

최승훈(kopax88 @hanmail.net)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18- )
•사)시니어벤처협회 고문(20- )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16- )
•한국산업교육협회 회장(17-18)
•생명보험협회 노후설계 전문강사(18- )
•평생교육사(91) •경영지도사(인사, 조직)(91)
•연세대 교육대학원 인적자원개발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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