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생애설계 이야기28] 생애설계와 시니어의 리더십 (Ⅱ) 셀프리더십과 ‘가황 나훈아’
[최승훈 소장의 생애설계 이야기28] 생애설계와 시니어의 리더십 (Ⅱ) 셀프리더십과 ‘가황 나훈아’
  • 편집국
  • 승인 2020.10.13 0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주 42일을 나훈아와 함께 먹고 자고 훈련하면서 고락 같이해
군대 생활로 본 셀프리더십의 대가 ‘가황 나훈아’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사)시니어벤처협회 고문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1. 리더의 기본

리더십의 전통적 개념은 타고난 자질로 설명되기도 했으나 행동과학의 발전에 따라 크게 수정되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은 교육과 훈련을 통한 리더십의 개발로 가능하게 되었다.

Leadership에서 Lead는 앞장서다 선도하다는 말로 표현되는데, Leader는 앞장서는 사람 선도한 사람으로 먼저 자기 자신이 힘을 키우고 그 역량을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는 Self Leadership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Self leadership(修己治人)이란 구성원들에게 사명의 의미를 전달하고 학습경험을 자극하며 새로운 사고ㆍ방법을 고취하여 각자의 잠재능력을 발휘하게 함으로서 구성원들의 자발적 변화를 통해 기대 이상, 계획 이상의 것을 수행하도록 이끌어 주는 지도자의 힘으로 우선 자기 자신이 그러한 역량을 개발하여 구성원들에게 솔선수범(Modeling)할 때 자연스럽게 발휘될 수 있다.

셀프 리더십은 첫째, 자신의 올바른 이상과 가치를 선명하게 만드는 자기 확신의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이상과 가치관을 분명하게 확립하고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둘째, 자신의 삶의 바른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전력투구하는 능력이다. 
리더의 삶의 방향이 바르지 않고서는 남들 앞에 설 수 없다. 자신의 삶의 바른 방향이 명확히 설정되었다면 어떤 경우라고 굴하지 말고 그 방향으로 전심전력해야 한다.

셋째, 개인이나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명확하게 결단을 내리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리더는 환경변화에 능동적인 대응을 통해서 바람직한 미래를 예측하는 선견력을 가지고, 상황에 따라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리고 설정한 목표를 과감하게 추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2. Self leadership의 개발 

첫째, 긍정적 셀프 이미지의 개발.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함으로써 그 용맹을 떨치며 덕장으로 추앙받던 웰링턴 장군은 젊은 시절에 부하들로부터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행동하였다고 한다. 

그가 대령 시절 실수로 물(늪)에 빠진 적이 있는데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을 즈음 마침 그 곁을 지나던 병사가 그를 구해 내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병사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고 ‘어떤 상을 원하는가’를 물었다. 병사는 일순간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대령님을 제가 구해드렸다는 말씀만 안 하신다면 그것으로 만족한 상(賞)이 되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웰링턴이 그 대답의 진의를 몰라 어리둥절 해하자 병사는 다시 “ 만약에 물에 빠진 대령님을 제가 구했다는 사실이 전우들에게 알려진다면 그들은 저를 물에 처넣고 말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행동이 병사들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하였음은 물론 심지어 없어져 주길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웰링턴이 영국이 자랑하는 명장으로 남게 된 것은 그날 이후 긍정적 이미지의 개발 때문이었다고 한다.

리더는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에 어울리는 이미지 개발을 통하여 구성원에게 호감과 믿음을 주어야 한다.

둘째, 자발적 동기부여 능력개발
1066년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은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영국을 침공하려고 남해안에 상륙했다. 그는 곧 앵글로색슨족의 군대가 총집결해 자신의 소수병력을 격퇴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타고 온 배를 전부 불태워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는 스스로 죽기를 각오하고 그의 군사들이 온몸을 바쳐 싸워주기를 원했다. 그들은 싸우다 죽는 것과 전세에 밀려 바다에 빠져 죽는 것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웠고 결국 승리를 쟁취했다.

윌리엄 공 자신이 먼저 배수의 진을 치고 이길 수 있다는 신념과  자발적인 동기부여를 통해 병사들에게도 강한 동기부여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스스로 설정한 목표와 이상을 향해 스스로 동기부여하고 성과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개발이 요구 된다.

셋째, 결과에 책임지는 능력개발.
우리의 사회가 잘못되어 가는 것은 오늘의 시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신뢰상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약속을 지키고 식언하지 않고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내건 기본적인 원칙은 지켜야 하며, 그 원칙마저 지킬 수 없다면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버려야 한다.

리더가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리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겸허하게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태도를 보일 때 그는 리더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고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넷째, 내면의 자질개발
인간의 정신 능력을 무한대라 한다. 그 무한한 내면의 가능성을 개발 함으로서 자신의 삶과 조직사회에 더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재된 능력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자기인식을 통한 자아상을 개발하여 자발적 동기부여를 지속시킬 방법을 습득해서 목표설정을 생활화하는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인간다운 행동을 하기 위해서 내면의 자질을 개발하여야하는 것이다.

다섯째, 솔선과 수범을 선도하는 태도개발.
동로마ㆍ서로마 2200년간을 발전적으로 이끌었던 로마의 귀족들은 절제와 자기희생으로 국가건설의 의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평민들도 스스로 로마의 주인임을 깨닫고 자율성을 갖고 최선을 다하였다고 한다. 

당시 귀족들은 커다란 특권과 영예를 누렸으나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는 제일 먼저 나가 싸웠으며 자신의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버릴 수 있는 노블리스 오브리제(Noblesse Oblige) - 귀 한자답게 행동하는 의무 - 정신을 발휘하여 로마제국의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다.

따라서 리더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스스로 변하고 구성원을 변화시키고, 전체적으로 감성의 고양과 일체화를 이루어 커다란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자기변용(變容)의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을 구현하여야 한다. 

3. 셀프리더십과 ‘가황 나훈아’

1). 2020 ‘대한민국 어게인’

지난달 9월 23일 저녁 7시 30분에 우리 시대 최초로 비대면 초대형 공연이 공개 녹화로 개최되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마련된 콘서트로, 이 공연은 9월 30일 KBS 2TV 전파를 타고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로 전국으로 방영되면서 “가황 나훈아”가 15년 만에 TV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다. 

다시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다는 언급한 적도 있어서 그에게 있어서 큰 도전인 셈이며 게다가 KBS 측으로부터 출연료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큰 감동을 주었다.

'다시보기' 없는 한 번의 공연이기에 시청률도 폭주했다.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닐슨코리아 전국기준 29%를 기록했다. 공연 비하인드가 담긴 미니다큐 형식으로 3일 방송된 '나훈아 스페셜-15년만의 외출(이하 '나훈아 스페셜')' 역시 심야시간대 방송이었지만 18.7%를 기록했다. 

특히나 나훈아를 그냥 옛날 가수나 '5분 정도'로만 알고 있던 젊은 층 시청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으며 온라인상에서 엄청난 화제에 오르게 되었다. 

이처럼 예상을 초월한 반응을 얻자 KBS는 재방송은 없을 것이라는 기존의 방침을 뒤집고 10월 3일에 8개월간의 공연 준비 과정과 공연 이후 KBS 제2본부장의 나훈아와의 인터뷰를 추가로 담아 재방송하기도 했다.

콘서트에서 나훈아는 김동건 전 아나운서와의 토크에서 자신의 입으로, 자신에게 신비주의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고 밝혔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작사, 작곡을 하기 위해 꿈을 채우고 많은 책을 읽는 등 단단한 준비를 하므로 6개월 이상의 제법 긴 준비 기간을 갖게 되는데 이 사이에 언론이 떠들며 신비주의라 윤색한 것이고. 또 한 해당 인터뷰에서 언론들이 자기가 뇌경색에 걸려 걷기도 어렵고 말도 어눌하다던데 이리 멀쩡히 걸어 다니는 게 미안해 죽겠다며 익살스러운 농담을 섞어 언론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연 도중 IMF 외환위기, 코로나 사태 등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저력을 칭송하기도 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힘듭니다. 우리는 많이 지쳐있습니다. 저는 옛날의 역사책을 보든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유관순 누나, 또 진주의 논개, 윤봉길, 안중근 의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IMF 때도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지 않았습니까?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서 팔고 나라를 위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僞政者)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세계에서 제일 1등 국민입니다.”

그리고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동고동락했던 KBS와 관계자들에게 격려의 말도 남겼다.
“저는 이번 공연을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 많습니다. 특히 우리 KBS는 국민을 위한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정말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정말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여러분 기대하십시오. KBS 거듭날 겁니다.”는 커다란 메시지를 남겼다.

2) 가황 나훈아의 생애

가황 나훈아는(본명 최홍기.崔弘基) 아버지가 무역선 선원으로 당시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무역선을 탔으며 남미와 아프리카까지 다녀오곤 했다고 한다. 195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음에도 아버지가 외국에서 사온 축음기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덕에 형과 더불어 부산에서 서울로 유학을 올 수 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잘했던 그가 의사나 판검사 같은 엘리트 직업을 갖기를 바랐던 그의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 최영석(崔英錫. 73세 작고)씨와 어머니 홍성념(洪聖念. 98) 여사와의 사이에서 2男2女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산 초량초등학교와 대동중학교를 거쳐 서울로 올라와서 서라벌예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상당히 어렵고 고생하며 자랐다는 말은 와전된 것이고 아주 유복하게 자랐다.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때, 부산시 교육위원회에서 개최한 콩쿠르대회에서 연속으로 두 번 1등을 하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1967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작곡가 심형섭 선생이 학교 바로 옆 정릉에서 음악학원을 열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 학원에 친구 따라 놀러 가서 가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어찌나 잘하는지 친분이 있던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손진석 사장에게 소개하여 레코드 취입 제의를 받았다. 

노래 실력을 알아본 손진석 사장이 LP판을 무료로 녹음시켜주겠다고 하면서 대중가요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유명한 작곡가인 김영광 선생이 작곡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 「천리길」을 포함해서 네 곡을 받았는데 연습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마장동이란 녹음 실에서 취입을 했다고 한다. 
  
당시 가수들이 한 곡을 취입하려면 거의 하루가 걸렸는데 그는 네 곡을 연습 한 번 하고 취입하고, 연습 한 번 하고 취입하고 한 번도 안 틀리고 6분씩 네 곡을 했으니까, 앞뒤에 몇 분 더해서 딱 30분 만에 끝내고 나와 버렸다니 이미 그의 천재적인 소질이 발휘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노래가 히트되기 시작했고 많은 돈을 받았다고 한다. 나훈아의 데뷔로, 고등학생 최홍기(崔弘基)가 살판이 났을 뿐만 아니라, 오아시스 레코드사도 살판이 났다. 그때 오아시스 레코드사가 빚에 넘어갈 상황이었는데 그의 노래가 히트하면서 회사의 빚을 다 갚고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은 가히 전설로 남아 있다.

최고의 히트곡 120여 곡, 취입은 2600여 곡을 했고, 작사·작곡한 것이 900여 곡이나 되며, 음반 낸 양을 앨범으로 따지면 300여 장이 넘고 판매량은 2600여만 장이 넘는다고 한다. 걸어 다니는 기업을 창업한 셈이 되었다.

3) 수기(修己. 연습)는 프로의 핵심

“프로는 연습이 생명이다.” 그의 가수 생활신조이다. 그러면서 겸손한 한마디를 덧붙인다. “나는 노래를 못하니까 열심히 한다.” 지방에 공연을 가게되면 가수들이 거의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밴드가 거의 초죽음이 되도록 연습을 한단다. 

그러면 밴드들이 ‘다른 가수들은 악보만 갖다 주고 무대에 올라가 그냥 하는데’ 라고 푸념을 하는데 그는 ‘이 사람들아, 그런 가수들은 노래를 잘해서 그래도 되지만, 나는 노래를 못하니까 연습을 해야지!’ 그러면 아무  말도 못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 하는 건데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하니 프로는 역시 다름을 인정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폴 란드 출신의 미국의 피아니스트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1887~1982)’은 평소 여행 때 소리 나지 않는 작은 피아노를 가지고 다니며 연습하였는데 한 번은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피아노의 대가답지 않게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루빈스타인은 제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아내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 다네.”라고 했다. 연습의 중요성을 웅변하고 있다.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그만의 비결은 바로 연습 또 연습이라고 했다. 평범하지만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닌가 싶다.

4) 훈장을 사양한 가황의 일화

그에게 훈장 수여를 상신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취한 행동은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어렵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시절에 훈장을 수여 받게 된다는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사양하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자신보다 더 긴 세월을 몸 바쳐 노래해 오신 선배들이 많은데, 눈에 보이는 인기만 가지고 얘기하면 안 된다고 사양하면서 ‘그냥 나훈아’로 남겠다고 대답했다.
  
그냥 나훈아 란? ”그냥 노래하고, 힘들면 술도 한 잔 먹고, 실수도 하고…. 그런데 훈장 받으면 훈장값을 해야되지 않습니까? 받는 건 좋을지 몰라도 그러고 나선 난 어떡하란 말입니까? 그런 거 생각하면 그냥 뒷골이 땡겨요. 우리 선배님들은 참 고생 많이 하신 분들입니다. 지금 젊은 가수들 히트 하나 하면 수십억을 법니다. 우리 선배님들은 그렇게 히트곡을 많이 가지고 계신데도 밥도 못 먹고, 제대로 잘 곳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불러온 분들입니다. 그렇게 해 온 선배님들이 계셔서 오늘 우리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을 못 본 체하고 제가 훈장을 받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의 인간성과 품격을 보는 것 같아 절로 존경심이 생긴다.

5) 작사 작곡은 독서의 힘 
 
곡에는 꼭 詩(작사)가 있어야 하고 좋은 詩는 그 속에 멜로디가 들어 있다고 한다. 작곡가가 곡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詩 속에 있는 멜로디를 끄집어내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마음이 편하고 행복할 때는 생각이 안 나고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행복했던 생각, 아팠던 생각 등등이 착상을 떠오르게 한다.“ 그의 독서량은 엄청나게 많다고 하며 책벌레이기도 하단다. 

힘든 공연이 끝나고 귀가 길 차 속이나 집에서 여러 장르의 책을 읽는다. 40세 즈음해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읽고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스스로 참 똑똑한 줄 알았다는데 노자에게 그냥 뒤통수를 맞은 듯한 책이 도덕경이었다고 하면서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 뒤에 서자는 생각으로 앞에 서지 않고 한 발짝만 뒤로 서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의 책꽂이에는 경제원론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도서가 가득 채워져 있다. 

지난 80년대 초반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나훈아는 "아직도 내 책상에는 경영학 원론, 비즈니스 위크 같은 책들이 놓여 있다. 공부를 더 해서 세계를 다니며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유창한 영어 실력은 AFKN을 보면서 영어를 익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대중스타가 될 수 있지만 이를 유지시켜 나가는 능력까지 갖춘 연예인은 많지 않다. 근 55여 년을 스타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나훈아는 독서의 힘이라고 말한다. 

“독서를 통한 지식이 스스로 자신을 거르는 체가 되었고 세상을 사는 지혜가 담겨 있는 책에서 자기관리의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작사와 작곡 실력이나 자유로운 해외여행이나 공연 중 재기와 유머 넘치는 입담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더불어 서예와 미술에도 대단한 조예가 있어 작품전에 입선한 경력도 여러 번 있다고 한다.
  
6) 가황의 셀프 리더십의 핵심

그는“별(스타)은 별이어야 한다. 별은 구름이 조금만 끼어도 안 보여야 한다.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별은 별이 아니라 별은 하늘에서 반짝반짝 스스로 빛나야 한다. 예인(藝人)은 꿈을 파는 사람들이다.”라는 분명한 비전을 설정하고 빛을 내려면 항상 갈고 닦는 절차탁마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라고 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가수라면 관객들이 돈 주고 시간 버려 가면서 그런 공연을 공짜 표 줘도 안 올 것이다. TV에서도 잘 안 보이고, 보려고 해도 볼수 있는 방법이 없고, 보고는 싶은 방법이 공연뿐 이라면 보러 오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오라는 대로 다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야 할 자리를 골라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기 결정권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그의 장수 비결이기도 하다.

완벽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신의 공연에 대한 그의 집착과 노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2시간짜리 공연을 거의 혼자서 기획, 연출, 출연하면서 엄청난 물량과 피나는 연습을 거친다. 덕분에 그의 공연 스태프들은 매번 녹초가 된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스태프들을 잘 다독이고 격려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만든다. 그가 공연을 할때 마다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땀을 안 흘리고 노래하는 가수는 다 가짜 노래를 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단순히 목으로만 부르는 게 아니라 온몸을 다 써서 노래를 토해 내다보면 저절로 땀에 젖는다는 것이다. 나훈아의 공연관(公演觀)은 그의 성격처럼 화끈하게 느껴진다.

"다음 공연을 위해 아껴두지 않는다. 몽땅 쏟아붓는다. 비싼 요금을 내고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에게 최고의 무대를 보여 줘야 한다."는 그의 철학에 크게 공감 한다.

이런 일화도 있다. 1996년에 있었던 「KBS 설날 특집 나훈아 빅쇼」에선 다이아몬드 550개가 박힌 10억짜리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이에 호사가들이 너무 호화롭다는 반 비난에 그는 당당하게 “이건 꿈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짓을 해야 합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자랑을하게 해야 합니다. 야! 나훈아가 다이아몬드가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고 나왔어. 너 그거 봤냐? 야, 대단하더라! 이렇게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만일 가수도 라이선스가 필요하다면 나훈아에겐 '특급'을 줘야 한다는 게 많은사람들의 평가이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가수, 트로트에서 팝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가수, 현존하는 트로트 가수 중 가장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 모든 세대에게 먹힐 수 있는 유일한 가수, 트로트계의 슈퍼스타라는 수식어가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잘하는 리더(가수)가 멤버(관객)를 효과적으로 참여하게 한다. 그는 잘 조화된 셀프 리더십의 연구대상이며 아주 훌륭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월간 조선 2002, 2월호. 나무위키 참조)

7) 군대 생활로 본 SELF LEADER의 대가 ‘가황 나훈아’

1973년 7월 공군 현역으로 복무하던 필자가 공군 교육사령부 항공병학교 신병대대 내무반장으로 근무할 때이다. 제대를 3개월 앞둔 당시에 교육사령부 정문에서 훈련받으러 입대하는 최홍기 훈련병과 최초로 조우하게 되었다. 훈련을 마치면서 세상에 태어나 가장 근엄(?)한 얼굴을 마주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체력검정 신체검사 인성 등 훈련병으로 적격자인지 검정을 거의 단독으로 지원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정식 입교를 하면서 6주 42일을 한 훈련 병동에 서 먹고 자고 훈련하면서 고락을 같이하게 되었다.

나훈아와 함께(필자 최승훈 제공)

그가 나이에 비해 좀 늦게 입대한 터라 동료 전우와 함께 어울리면서 형처럼 선배처럼 매사에 수범을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남다른 인상을 받았다. 

훈련을 함께 하는 동안 “전설따라 삼천리”라는 특별한 비공식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때까지 그가 살아왔던 숱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의 입담과 재담이 얼마나 흥미 있고 재미있었는지 취침 시간을 줄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당시 부대 상황이 최홍기 훈련병의 노래를 공개적으로 시킬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의 노래를 한번 들을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와 필자는 최씨(?)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다른 훈련병보다 친근하게 지내는 터이기는 했다. 곧 제대하게 되는데 천하의 최홍기 노래를 못 듣고 제대한다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겨났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그에 물었다. ‘전역기념 음악회(?) 가 가능하겠느냐고?’ 그런데 그는 흔쾌히 대답했다. ‘가수가 노래하는 것이 뭐 어렵습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생의 소원을 풀 수 있는 순간이었다. 

7월 말 어느 토요일 빈 병동(兵棟)에 특별한 무대를 만들었다. 커텐을 이중으로 치고(보안) 선풍기 두 대를 가져다 놓고 악기는 기타를 준비했다. 관중은 다섯 명(많으면 곤란(?). 약 90여 분 동안 희망곡 “고향의 그 사람”외 20여 곡을 라이브로 듣는 행운을 누렸다. 

그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6주 훈련이 끝나고 헤어지면서 휴가비(?)까지 챙겨주던 자상함을 잊을 수 없다. 

-군예반 시절, 나무위키 참조-
-군예반 시절, 나무위키 참조-

그가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된 뒤 국방부에서 군예 반을 창설하게 되는데 군예반장을 맡아 많은 각 군부대에서 국군 위문 공연을 다양하게 펼치기도 했다. 국군의 방송의 ‘위문열차 여객전무’를 맡으며 그의 재기를 아낌없이 발휘하기도 하였다.

1977년 5월 필자가 친구이자 공군 선배 엄(嚴)모씨와 대전의 공군 교육사령부로 동원 훈련을 가던 길에 마침 제대를 하고 대전에서 ‘초원(草原)’이라는 식당을 경영하던 최홍기 사장을 만나 잠시라도 함께했던 기억은 두고두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어 한 번 만나게 되면 ‘가황 나훈아’의 왕팬으로 좋은 추억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셀프 리더십은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대학(大學)에 나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바탕으로 나를 닦는 수신(修身)을 선행하고 멤버들을 이끄는 치인(治人)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格物), 그 원리를 통달하고(致知) 뜻을 성실히 하면서(誠意),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心), 자신을 단련하는 것(修身)이 바로 명덕을 밝히는 것(明明德)이며 이는 한마디로 자신을 갈고닦는(修己) 것이다.”

셀프 리더십 개발이 선행되지 않은 개인이나 리더가 조직을 이끌게 되면 그 조직이 이나 사회는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 시니어의 셀프 리더십을 다시 생각하면서 꾸준한 자기관리를 통한 행복한 노후를 준비는 지혜로운 시니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승훈(kopax88 @hanmail.net)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18- )
•사)시니어벤처협회 고문(20- )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16- )
•한국산업교육협회 회장(17-18)
•생명보험협회 노후설계 전문강사(18- )
•평생교육사(91) •경영지도사(인사, 조직)(91)
•연세대 교육대학원 인적자원개발 석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