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도마 위 오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산재 막는 흑기사 될까
[초점] 도마 위 오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산재 막는 흑기사 될까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0.12.21 0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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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통과 노동계, 절대 불가 경영계 이해관계 첨예하게 대립
산재 사망사고 주타겟 비정규직 입장에선 반드시 통과돼야
현재 유사한 내용 담은 법안만 6개 발의.. 연내 통과에 촉각
기존 산안법만으로도 충분히 방지 가능.. 엄벌주의가 능사는 아냐
산재사망 사고를 줄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둘러싸고 노사의 공방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잇다. 사진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노동단체 시위 현장. 사진제공 민노총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서울의 아침기온이 영하 10도까지 치달은 지난 14일, 흰색 상복을 입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살얼음 낀 길바닥에 이마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닿도록 엎드렸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오체투지를 행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이달 10일부터 내년 1월 8일까지 한달간 진행되는 임시국회를 관통하는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코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여야와 노사의 힘겨루기에 있다. 국회 통과와 저지를 놓고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중이다. 

노동계와 여당은 무조건적인 연내 처리를 공언하며 앞서 언급한 오체투지를 비롯해 전방위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야당과 경영계 역시 ‘중대재해법’의 논리적 흠결을 무기 삼아 통과 불허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앞세우고 있다. 양측이 전면전을 불사하는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확연히 다른 만큼 법안을 둘러싼 대결에서 패하는 쪽의 내상은 쉽게 다스리기 힘들 것이 분명한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수적 우세를 지닌 여당과 노동계의 승산이 높아보이지만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만은 자명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여론은 끊이지 않는 산재사망사고가 주로 비정규직 등 약자의 몫이었던 만큼 이의 통과를 기대하는 쪽에 무게가 실려있다. 20여일 남은 국회 임시 회의에 국민의 시선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오체투지로 결의 보인 노동계, 여당도 연내 처리 공언

여당과 노동계는 이번만은 반드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겠다는 각오다. 

고용부 발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산재 사망자가 1101명에 달한다. 지난해 산재 사망자 수는 2020명, 2018년은 2142명이다. 최근 10년 동안 산재 사망 노동자는 2만 2000여 명에 달한다. 매년 2200여 명 꼴로 일하다 숨졌다.

하루에 7명의 노동자가 작업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하고 잇는 셈이다. 자타공인 선진국으로 여겨지는 한국에서 발생한 일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지만 이는 엄염한 사실이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이 최고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하철 선로에서, 화력 발전소에서 꽃다운 청년들이 스러지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무색하게도 오늘도 전국의 산업 현장은 위험이 상존하는 형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이 존재하지만 별무신통인 것이 사실이다.  

현행법은 산재 사망 법정형을 7년 이하의 징역으로 규정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노동계가 중대재해법의 제정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법무법인 이기윤 변호사는 “하루 평균 7명의 노동자가 자신들의 작업 공간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는다”면서 “그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져야 할 당사자는 벌어들이는 이윤에 비해 훨씬 적은 부담, 즉 하급 관리자의 처벌이나 값싼 벌금으로 모든 것을 갈무리한다. 죽음의 책임도 하급 관리자나 턱없이 적은 벌금이 전부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중대재해법은 반드시 필요하디”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의 말처럼 노동계 역시 현행법보다 훨씬 더 강력한 책임자 처벌을 담보하는 중대재해법만이 사망사고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정의당 등 진보정당은 그간 노동계의 숙원이 담긴 중중대재해법 제정을 위해 꾸준히 법안을 발의해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은 사정이 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현재 국회에는 총 6건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발의돼 있을 정도로 이에 대한 공감대가 폭넗게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 그 근거다. 발의 시기와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실질적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사망사고 근절을 위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자 하는 것은 비슷하다. 

그간 당 법의 제정을 한 목소리로 외쳐왔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학자들까지 이 대열에 합류해 힘을 싣고 있다. 지난 17일, 중대재해법 제정 운동본부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수 734명, 의사 304명, 연구원 296명, 변호사 167명, 노무사 146명 등 총 2164명이 참여한 학계·전문가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중대재해법 제정 운동본부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수 734명, 의사 304명, 연구원 296명, 변호사 167명, 노무사 146명 등 총 2164명이 참여한 학계·전문가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사진제공 민노총

선언에 참여한 학자와 전문가들은 "기업은 위험을 외주화하고 위험관리의 커다란 공백을 만들어 비용을 절감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며 "안전에 관한 법을 위반하고도 책임을 지지 않고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는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임시 회기 중 조속한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이외에도 각종 단체들이 중대재해법 통과를 촉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형편. 이에 이낙연 민주당 대표 역시 이번 임시 회기 중 반드시 통과를 주장하고 있지만 제정법인 만큼 공청회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아 연내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론으로 밀고 나가고는 있지만 경영계의 반발이 워낙 거센 것도 문제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위헌 소지 역시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이대로라면 법을 만들어놓고도 후폭풍이 거셀 게 분명해 이래저래 정부와 여당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 소 잡는 칼로 닭 잡을 수는 없는 일
상대적 수세에 몰린 경영계지만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은 분명하다. 연일 이어지는 노동계의 공세에 반격의 칼날을 내밀고 있는 경영계다. 경영계의 논리는 현재의 법과 제도만으로도 충분히 산업재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히려 중대재해법이 기업의 경영 환경을 악화시켜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라는 입장이다.

국내 기업 654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기업 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9곳은 정치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나왔다. 자료제공 경총

코로나19로 그로기 상태에 몰린 기업들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16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국내 기업 654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기업 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9곳은 정치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나왔다.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것으로 중대재해 예방에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이 84.3%에 달했다. 또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상 사업주, 경영책임자, 법인에 대한 처벌수준에 대해서는 기업의 95.2%가 ‘과도’하다고 응답했다.

경총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경우 사업주가 경영활동을 직접적으로 관장하고 있고, 평균 매출액도 4억112만원 정도인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상 과도한 처벌로 인해 사업을 지속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산재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법의 제정이 아니라 '업종 특성과 기업 규모를 고려한 안전제도 개편' 및 '불합리한 중복규제 개선'을 우선 꼽아 현재의 법만으로도 충분하며 오히려 정부의 실질적 의지가 더 필요한 것으로 불만을 대신했다.

새로운 법의 제정보다는 '업종 특성과 기업 규모를 고려한 안전제도 개편' 및 '불합리한 중복규제 개선'이 산재 예방에 더 효율적일 것이란 게 기업들의 입장이다. 자료제공 경총

재계 역시 이 대열에 동참하고 나선 상황. 지난 16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30개 경제 단체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중대재해법 입법 추진과 관련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과 형법을 중대하게 위배해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가혹한 중벌을 부과하는 중대재해법의 제정에 반대한다"면서 "입법 추진을 중단하라"고 밝혔다.

이들 30개 단체는 법의 의무, 처벌대상의 범위가 사업주, 대표이사뿐만 아니라, 이사 및 의사결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로서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비판했다. 또 유해·위험방지의무 내용도 모호하고 광범위하다는 입장이다.

이들 단체는 이어 "사실상 과실범에 대해 징역형과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까지 부과해 산업규제 대응이 어려운 중소기업은 문을 닫는 경우가 속출할 것"이라며 "헌법상의 과잉금지 원칙과 형법상의 책임주의, 명확성의 원칙을 중대하게 위배한다"고 덧붙였다.

재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 역시 속속 등장하고 있다. 17일, 한국경제연구원은 타 선진국의 사례를 예로 들며 한국의 산업재해 처벌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도 이미 주요국 대비 강력한 수준이며, 처벌 강화로 인한 산업재해 예방효과도 불확실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발표에 따르면 산안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한국은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아울러, 근로자 사망이 5년 이내에 반복해 발생할 경우 형량의 50%를 가중하는데 이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강력한 처벌 조항이라는 것. 

한경연 추광호 실장은 “한국의 산안법은 주요국보다 처벌 규정이 이미 강력하고, 처벌 강화의 산업재해 예방 효과도 불확실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활동 위축, 일자리 감소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법 제정을 지양하되, 산업현장의 효과적인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강력한 처벌이 범죄율을 떨어뜨리지 못한다는 형법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입장이다. 단순한 엄벌주의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발상은 그래서 참으로 손쉬운 해결책에 불과함을 정부 역시 곱씹을 필요가 있다. 사후처벌보다는 사전예방이 더 중요하다는 단순한 진리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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