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8] 불신 시대(不信 時代)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8] 불신 시대(不信 時代)
  • 편집국
  • 승인 2021.02.23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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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원판 불변의 법칙이지.”

자신이 나온 사진을 보고 불만족스러워하거나 잘 못 나왔다고 불평을 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농담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또는 “역시 원판 불변의 법칙이야, 대단해.”라고 사진이 멋지게 나온 사람을 칭찬할 때 쓰기도 한다. 우리는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 믿음도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며칠 전 증명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갔다. 요즘은 사진관이란 말보다는 사진 스튜디오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고, 내부도 내가 예전에 보았던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샤방샤방’했다.

테이블 위에 전시된 사진 중에서 원하는 크기를 선택하니, 큰 거울이 있는 곳에 가서 준비하고 정해진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겪는 거지만 사진사는 늘 내가 생각하는 각도와는 다른 얼굴 각도를 요구한다. 아마도 나에겐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실제 보이는 것은 다른 모양이다. 

사진사는 내 뜻과는 다르게 얼굴 각도를 요구해 가며 몇 차례 사진을 찍고 나서는 큰 화면의 모니터 앞에 앉으라고 하고 자신은 컴퓨터 앞으로 가서 뭔가 작업을 한다. 

모니터에는 “사진을 보고 놀라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의아해하면서 의자에 앉아보니 이 말이 뜻하는 바를 곧 알게 되었다. 사진을 찍고 나온 원판 사진과 일단 얼굴이 화사해진 사진을 before, after로 보여주었는데 한눈에 봐도 확연히 얼굴 색감이 달라져 있었다.

얼굴색이 환해진 모니터 속의 내 얼굴을 자세히 보니, 옅은 미소를 지은 입꼬리 왼쪽이 좀 내려와 있었다. 나도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한동안 오른쪽 이가 시리고 통증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왼쪽으로만 씹었더니 그 여파가 있었던 것 같다. 사진사가 한쪽으로만 씹으면 그럴 수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비슷한 현상이 있었던 모양이다. 

화면에 있는 내 사진의 입 주변으로 점들이 뜨더니 쳐져 있던 입꼬리를 올린다. 그리고는 얼굴 가운데 세로로 선이 보이면서 양쪽 균형이 맞는지 비교를 해준다. 

내가 신기해하고 있는 사이 화면상에 동그란 모양의 커서가 얼굴 위로 부지런히 다니면서 무언가 작업을 한다. 일단 얼굴의 잡티가 없어지고, 칙칙하던 얼굴색이 조금씩 밝아진다. 더 나아가 나이 들어 생긴 눈 밑 다크 서클도 없어지고, 깊게 패었던 팔자 주름도 조금씩 펴지기 시작한다. 

사진사는 통통하게 오른 얼굴 볼살도 깎아 날렵하게 만들고, 턱선도 살리면서 몇 번의 손질로 얼굴이 몇 년씩 동안(童顔)이 되어 가고 있다. 

그냥 계속하도록 놔두면 내 얼굴은 팽팽하게 젊음을 되찾은 30대로 돌아갈 것 같았다. 나는 적당한 선에서 그만 해달라고 했다. 법적으로 노인 신분인 사람의 얼굴이 더 젊어지는 건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았고, 화면 상에 변해가는 내 얼굴을 받아들일 뻔뻔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얼굴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고 나니, 벽에 걸려 있던 선남선녀들의 사진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모두 하나같이 잘 생기고 예쁜 얼굴들이라 잘 나온 사진들만 일부러 걸어 놓았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또 다른 종류의 불신이 싹트게 되었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끔 여자 연예인들의 화장하지 않은 민낯을 보여줄 때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놀라게 되고 심지어는 못 알아볼 때도 있다. 화장이 아니라 분장을 했다고 말하게 되는 경우다.  

어떤 사람이 화장은 가끔 보는 사람이 잘 못 알아보는 것이고, 분장은 잘 아는 사람이 잘 못 알아보는 거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여자의 얼굴 위에 무엇이 있느냐 보다는 얼굴 안에 무엇이 있는지가 더욱 더 중요하다.”고 한 프랑스 출신으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수상자이며, 많은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미국 배우 클로데트 콜베르(Claudette Colbert: 1903~1996)의 말이 머리로는 맞다고 하면서도, 예쁘게 보이고 싶은 연예인의 입장을 헤아리며 우리는 눈에 보이는 불편한 진실을 그냥 받아들인다.

예전에는 사진을 보면서 지나온 시간을 회상할 수 있었고, 사진 속의 변화가 인생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사였다. 하지만 이제 더는 사진이 역사가 아닌 시대가 되었다. 보정된 사진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진 속의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게 되었다.

화장을 넘어 분장하거나 사진 보정을 해서 순식간에 외모를 바꾸고 심지어 나이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듯이, 실제로 바로 젊어질 수 있는 기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헛된 꿈을 꿔본다. 

나이 들어 보니 이제야 다시 하고 싶은 일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사진 보정의 기술로 쉽게 더 예뻐지고 젊어지는 동안 우리 마음엔 불신이 깊게 쌓여가고 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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