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6] 잘 산다는 것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6] 잘 산다는 것
  • 편집국
  • 승인 2021.04.20 0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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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에 이민을 갔을 때 아무 준비 없이 갔기 때문에 뭘 해야 할지도 몰랐고,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컴퓨터 사설 학원을 운영하는 키위(뉴질랜드인들을 부르는 애칭)를 소개받아 조언을 구하러 갔었다. 

그 키위는 내 이력서를 보더니, 자신이 운영하는 컴퓨터 학원에서 교육받을 것을 제안했다. 교육비는 장학금으로 처리해 주고, 교육받는 동안 생활비 보조도 해주겠다고 하고, 교육 후에는 그곳에서 강의하던지 아니면 다른 곳에 취직해도 된다고 하는 전혀 손해 볼 것 없는 제안이었다. 

당연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기본 컴퓨터 교육을 이수한 후 그곳에서 컴퓨터 교육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 분위기에 익숙하기도 했고, 컴퓨터 강사라는 직분이 직접 강의를 하는 것은 아니라 내가 배웠던 교재를 갖고 똑같은 공부를 하는 교육생들이 스스로 컴퓨터를 통해 공부하다가 질문이 있다고 하면 답해주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컴퓨터 교육 학원이 내가 뉴질랜드에 이민을 가서 처음으로 근무한 곳이라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배우고 있었던 교육생들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그곳을 잊을 수가 없다. 

뉴질랜드는 성인들이 풀타임으로 교육을 받고자 할 때 원하면 교육비 전액과 생활비를 보조해준다. 교육비는 대출 형식으로 융자를 해주고 교육을 마친 후 일정 수입 이상을 벌게 되면 아주 낮은 이자로 조금씩 갚게 되어 있지만, 교육을 받는 동안 주어지는 생활비는 갚지 않아도 된다. 이 생활비는 배우자 여부, 자녀 여부 등 형편에 따라 다르게 주어진다.

그래서 교육생 중에는 취업을 하지 않고 생활비 보조를 받기 위해 학교나 학원에 등록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근무하던 학원은 이런 목적으로 등록한 학생들이 많았다. 이들 대부분은 제대로 정규 교육을 이수하지 못했고, 따라서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 수준도 낮았다. 

내가 강사로서 이들을 대했을 때 가졌던 첫 감정은 암담함과 걱정이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들이(물론 뉴질랜드는 취업 시 연령 제한은 없지만) 가장 기초적인 컴퓨터 지식을 배워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염려와 우려가 있었다. 

아마도 늦은 나이에 이민을 간 내 경우가 대비되면서 갖게 된 우려도 있었겠지만,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도태되는 사회 환경에 익숙한 나에겐 그들의 처지가 너무 불안하고 가련해 보였다.

점심시간에 나는 아내가 싸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반면에 그들은 초콜릿 바나 사과 하나로 때우고 있는 모습을 볼 때나, 데리고 온 아이가 철없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아이의 미래까지 그려져서 더욱 그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걱정이 괜한 기우라는 듯이 그들의 표정은 늘 밝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얘기는 늘 즐겁고 신나는 주제였다.  영화관에서 얼마 전 개봉한 영화가 참 재밌다는 등, 주말에 어디로 여행 갈 거라는 등등 조금이라도 불안과 걱정거리를 털어놓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즐기는 얘깃거리를 나누고 있었고, 그들의 대화엔 활력이 넘치고 행복이 묻어났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습득한 기준에 의해 그들은 잘 못 살았다고 단정 지었고, 앞으로도 잘 살지 못할 것 같아 걱정했었는데, 그들의 삶을 즐기는 모습은 나에겐 생경하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돈 잘 벌고 떵떵거리며 부유하게 사는 사람을 잘 산다고 표현하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을 보면 잘 못 산다고 했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의 기준을 물질적인 부유함에 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부유해지기 위해 지금 치르는 희생과 견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내일 부유하게 되면 잘 살게 될 거라고 믿고 살았다.

하지만 잘 산다는 의미는 행복이 근간(根幹)이 되어야 하고, 오늘 하루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근원적이고 실질적인 본보기를 그들을 통해 보았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2020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작년보다 7단계 하락한 61위를 기록했는데, 이것은 2016년부터 5년간 유지했던 50위권에서 60위권으로 밀려난 것이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람들의 행복 지수는 오히려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질적인 부유함이 행복한 삶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수치상으로 입증해 주고 있다.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소득의 증가가 무한대로 우리의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부유해지면 잘 살게 될 거라는 환상을 좇으며 산다.

내가 15년 만에 한국에 다시 돌아와 전철을 탔을 때 보았던 사람들의 굳고 무표정한 얼굴 모습은 나에겐 충격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볼 때마다 되풀이해서 말하곤 했다. 

늘 미소를 짓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던 뉴질랜드 사람들의 모습이 무겁고 화난 듯한 얼굴로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에 투영되면서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자꾸 머리에 맴돌았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는 이유도, 대우 좋은 직장에 들어가 돈 많이 벌려고 하는 이유도, 이쁘고 멋진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려는 이유도 모두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한 삶을 살려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삶이란 한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가 보여주고 있는 부채 없는 30평대 아파트를 소유하고, 월급은 500만 원 이상을 받으며, 2,000cc급 중형차를 소유하고, 통장잔고는 1억 이상 보유하면서, 일 년에 서너 차례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조건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비록 덜 가졌어도 마음이 넉넉해서 행복하던 키위들이 말해주고 있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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