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미나리(芹/Minari) 
 [전대길의 CEO칼럼] 미나리(芹/Minari) 
  • 편집국
  • 승인 2021.04.2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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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지난 50년 동안 성실하게 활동해 온 윤 여정(74) 배우가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최고 권위의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주최로 엊그제(4월25일)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에서 자랑스러운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이다. 한국어 영화가 아카데미 영화상(映畵賞)을 받은 것은 2020년 봉 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2년 연속 이룬 쾌거다. 

이 영화는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작 정’감독(한국명 정 이삭)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미국 영화사가 제작한 미국 영화다. 하지만 대화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한국어라서 외국어 영화로 분류됐다. 

1980년대 미국 이민을 가서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던 제이컵(스티븐 연)은 비옥한 땅을 일구겠다는 꿈을 꾸며 아내 모니카(한 예리)와 딸 앤(노엘 케이트 조), 아들 데이빗(앨런 김)을 데리고 남부 아칸소로 이주한다. 

아직 어리고 심장이 좋지 않은 데이빗과 앤을 돌보기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 여정)가 한국에서 건너온다. 푸른 숲이 우거진 시냇가에서 어린 손자 데이빗이 미국에 다니러온 외할머니와 함께 걷는다. 외할머니가 한국에서 가져와 뿌린 미나리 씨가 발아하여 잘 자라서 시냇가는 온통 초록빛 미나리 밭이다. 봄바람이 알맞게 불어오고 따뜻한 햇살이 할머니와 외손자의 발걸음을 포근하게 비춘다.  

외할머니가 손자에게 말한다. “데이빗아, 미나리는 잡초처럼 막 자라니까 누구든지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미나리를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김치에도 넣어 먹고 찌개에도 넣어 먹고 아플 땐 약도 되는 미나리는 원더풀 이란다. 아이고~ 바람 분다. 미나리가 고맙습니다. 땡큐 베리머치, 절하네”란 장면이 눈길을 끈다.   

그래서 ‘미나리(芹/Minari)’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미나리는 물을 뜻하는 옛말 ‘미’와 나물을 뜻하는 ‘나리’의 합성어이다. 이름 자체가 ‘물에서 나는 나물’이란 뜻이다.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미나리는 줄기 높이가 30cm 정도이며 털이 없으며 기는줄기가 뻗어서 번식한다. 잎은 어긋나고 긴 잎자루가 있으며 깃 모양으로 갈라진다. 작은 잎은 달걀모양이고 가장자리에 톱니바퀴가 있다. 7~9월에 희고 작은 꽃이 복산형 화서로 피어난다. 잎과 줄기에 독특한 항기가 나며 줄기를 끊어 심거나 모를 옮겨 논에 심어 키운다.   

조선 성종 때 명(明)나라 사신(使臣), 동월(董越..1431~1502)이 조선 땅을 둘러보고 ‘조선부(朝鮮賦)’란 견문록(見聞錄)을 썼다. 이 책 속에 “왕도인 개성 사람들 집의 작은 연못에 모두들 미나리를 심는다(王都及開城人家 小池皆植芹)”란 기록이 나온다. 집집마다 미나리를 연못에 키우는 모습을 보며 동월은 신기함을 느꼈지 싶다.                            

 <미나리(芹/Minari)꽝>
 <미나리(芹/Minari)꽝>

그럼 왜 조선 사람들은 미나리를 이렇게 많이 키웠을까? 성종 때는 배추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십자화과에 속하는 초본식물인 ‘조선 무(Radish)’가 나오는 가을철엔 무김치를, 봄에는 미나리 김치를 담가 먹었다. 

1432년(세종14년), 제사(祭祀)에 관한 기록이다. 부추김치가 앞에 있고, 젓갈 혜해(醯醢)· 무김치· 사슴 고기젓이 그 다음이요, 미나리 김치가 앞에 있다.(第一行 韮菹在前 醓醢菁菹鹿醢次之 第二行 芹菹在前).

여기에서 보듯이 미나리 김치는 두 번째로 진열할 만큼 비중이 크며 그 당시 미나리 김치가 대중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흔한 미나리기에 ‘미나리를 바친다’는 ‘헌근(獻芹)’이란 말은 변변치 조품(粗品)이란 뜻이다. ‘헌근(獻芹)’은 작은 정성(微誠)의 선물이지만 신실(信實)한 마음을 낮춘 겸양의 뜻이다. 

미나리를 많이 키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미나리의 상징성 때문이다. 조선시대 유생(儒生)을 교육하던 성균관을 ‘芹宮(근궁)’이라 했다. 바로 ‘미나리 밭’이다. ‘미나리를 캔다’는 ‘채근(采芹)’은 유생들의 공부 과정을 말한다. 훌륭한 인재를 발굴하여 키워낸다는 뜻이다. 

이는 『詩經』(魯頌)의 “즐거운 반수(泮水)에서 잠깐 미나리를 뜯도다(思樂泮水 薄采其芹)”에서 유래했다. ‘반수(泮水)’는 중국 周(주)나라 인재 양성 교육기관인 ‘반궁(泮宮)’옆을 흐르는 개천 이름이다. ‘인재를 널리 발굴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집에서 키우는 미나리는 나라의 동량(棟梁)을 바라는 자식의 화신(化身)이었다. 

그리고 봄철 입맛을 돋우는 채소인 미나리는 그 으뜸이다. 특히 비타민 B군이 풍부해서 춘곤증 예방에 좋다. 막 씻은 미나리 한 줄기를 씹으면 사각사각 경쾌하게 끊긴다. 미나리 특유의 상큼한 내음이 코끝을 진동한다. 

미나리는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미나리는 ‘수근(水芹)’ 또는 ‘수영(水英)’이라고 부른다. 달면서도 맵고 서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각종 비타민이나 몸에 좋은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한 알카리성 식물이다. 그래서 해독과 혈액을 맑게 해주는 데는 아주 좋은 식품이다. 

미나리는 갈증을 해소해 준다. 특히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주독(酒毒)을 없애주고 황달이나 부인병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미나리는 비타민 A, B1, B2, C가 많다. 단백질이나 철분, 칼슘, 인(燐) 등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해서 피를 맑게 해 준다.  

서울 충무로 우리 회사 사무실 근처에 있는 ‘부산복집’에서 복탕을 먹을 때 미나리를 듬뿍 넣어 준다.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인 인심 좋은 주인장은 “복탕에는 미나리를 많이 넣어야 한다. 미나리는 복어의 독성분을 해독시켜 줄 뿐 아니라 간(肝)이 나쁘거나 고혈압 환자에게 쑥갓과 함께 최고의 야채이니 많이 드시라”며 권한다. 요즘엔 미나리 값이 올라서인지 미나리를 더 넣어 달라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바람 부는 언덕’으로 유명한 Chicago에서 ‘시카고 한국방송 K라디오’의 <문화산책>과 <교양 Insight> 프로그램을 명 계웅 평론가(교수)와 함께 진행하는 김 영숙 시인(시카고 문인회장)의 <미나리 이야기>를 적는다. 그녀의 심경을 담은 아래 메시지가 우리 동심(童心)을 일깨워 준다.   

“어릴 적에 시골 집 앞에 하수(下水)가 흘러드는 진흙탕 무논인 ‘미나리꽝’이 있었어요. 미나리꽝에서 자란 미나리를 낫으로 베어서 ‘미나리회’와 ‘미나리 비빔밥’을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어요. 미나리를 곱게 다듬어 쌀뜨물로 씻어서 뜨거운 물에 데친 후 돌돌 감아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그 향과 맛이 일품(一品)이예요. 지금도 두 눈을 감고서 미나리 향기를 한바가지 푹 떠서 코끝에 가져다 대면 태평양 건너 충청도 내 고향의 향수(鄕愁)가 물씬 묻어나요. 어머니께서는 미나리 전(煎)도 부쳐 주시고 미나리 비빔밥도 만들어 주셨어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입안에 침이 듬뿍 고여요” 

“미나리는 독특한 향(香)으로 "나, 여기에 있어요~!"라고 외치기도 해요. 그런 미나리가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을 신나게 해 주었어요. 요즘처럼 Asian에 대한 증오범죄가 심각한 미국 땅에서 한국 영화계의 쾌거를 이룬 배우 윤 여정 씨의 삶이 참으로 신실(信實)한 삶인지를 잘 보여 주었어요. 나와 우리 가족은 대한국인(大韓國人)임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끝으로 은근과 끈기의 상징인 인동초(忍冬草)처럼 미나리를 주제로 한 영화가 세계 영화계 정상에 우뚝 선 것을 기뻐한다. 오늘은 충무로 부산복집에서 미나리를 듬뿍 넣은 복탕으로 점심식사를 해야겠다. 

그런데 갑자기 어릴 적에 정강이에 달라붙어 내 피를 빨아먹던 통통한 거머리가 떠오른다. 복국에 넣는 미나리에 거머리가 붙어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야겠다. 미나리 이야기로 중언부언(重言復言)해 보았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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