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탕수육(糖水肉)과 돈가스(とんかつ) 
[전대길의 CEO칼럼] 탕수육(糖水肉)과 돈가스(とんかつ) 
  • 편집국
  • 승인 2021.06.3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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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인이 좋아하는 중국음식을 들라면 자장면과 탕수육<엿 당(糖)+물 수(水)+고기 육(肉)>이다. 이러한 탕수육이 아편전쟁과 관련이 있음을 아는 이가 드물다. 

‘탕수육의 탕’자가 ‘갈비탕(湯), 설렁탕(湯), 대구탕(湯)’의 ‘끓을 탕(湯)‘자가 아닌 ’엿 당(糖), ’사탕 탕(糖)’자임을 이제야 알았음을 실토한다. ‘탕수육(糖水肉)’의 ‘물 수(水)‘자를 중국에서는 ’식초 초(醋)‘란 글자로 쓴다. 

달달한 탕수육 맛 보다는 새콤달콤한 ’탕초육(糖醋肉)‘의 중국어 발음은 ’탕추로우‘이다. 애시당초 우리말로 번역할 때 뜬금없는 번역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아편전쟁은 영국이 중국에 아편(阿片) 수출을 위해 일으킨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다. 
아편(阿片)은 덜 익은 양귀비(楊貴妃) 열매의 껍질을 칼로 에어서 흘러나오는 진액(津液)을 모아 말린 갈색 물질이다. 아편은 설사, 이질 등에 쓰이는 마취제로 코데인(codeine), 모르핀 등 마약(痲藥)의 원료이다.  

19세기에 벌어졌던 영국과 중국의 아편전쟁 결과 청나라는 홍콩을 150년간 영국에 넘겨주고 상하이 등 5개 항구도시를 개항, 영국과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는 협약을 맺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의 전쟁 비용과 몰수해서 폐기된 아편 배상금을 영국에 지불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그 후 중국에서 새로운 터전을 잡은 영국인들은 음식 문제로 큰 불편을 겪었다. 중국 땅에 살려면 자연히 중국음식을 먹어야만 했다. Pork, Knife, Spoon 사용에 익숙한 영국인들로서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게 무척 힘들었다. 

이에 중국인들은 고심 끝에 영국인들 입맛에 맞고 영국인들이 서툰 젓가락질로도 쉽게 집어 먹을 수 있는 새로운 요리를 개발했다.           

<탕 수 육(糖水肉)>

먼저 육식(肉食)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식성을 고려해서 돼지고기를 선택했다. 돼지고기를 한 입 크기로 썰어 간장, 생강, 후추 등으로 간을 하고, 계란 흰자와 녹말가루를 풀은 물을 넣어 버무린 후 튀겨냈다. 

그리고 그 위에 소스를 부었다. 소스는 녹말가루를 풀은 물에 버섯, 당근, 오이 등을 볶아 놓은 채소와 식초를 넣어 끓여서 만들었다. 

중국인들은 새롭게 개발한 음식을 '달고 신맛 나는 고기'라는 뜻의 ‘탕초육(糖醋肉)’이라고 명명(命名)했다. 탕초육을 맛본 영국인들은 탄성을 연발하며 입에 짝짝 달라붙는 듯한 기막힌 맛을 격찬했다. 

그 무엇보다도 영국인들이 젓가락질을 어렵게 하지 않고 포크(Fork)로 대충 찍어서 탕초육을 쉽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탕초육은 중국에 거주하는 영국인과 외국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중국도 이에 만족하여 중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탕초육을 중국의 대표 음식으로 홍보했다.

이렇게 생겨난 탕초육은 조선 고종19년(1882년)에 일어난 임오군란(壬午軍亂) 이후 청(淸/1616~1912)나라에서 조선으로 이주해 온 화교(華僑)들이 중국요리 집을 운영하면서 전래했다. 우리나라에 탕수육(糖水肉)이란 이름으로 들어 온 게 140년 전이다. 

일본요리 ‘돈까스(とんかつ)’는 1929년 일본 궁내청 요리사였던 ‘시마다 신지로’가 자신의 요리 집에서 돼지고기를 2~3cm 크기로 잘라 기름에 튀겨서 판데서 시작되었다.

돈까스

1932년 도쿄 우에노의 ‘기타하치’가 돈가스를 팔기 시작했는데 도쿄 근방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원래 일본인들은 7세기 후반 ‘덴무 천왕‘의 육식금지령 이후 1,000년 간 고기를 먹지 않았다. 1872년 ’메이지 천왕‘의 근대화 계획으로 육식(肉食)이 가능했다. 

‘돈까스’란 이름의 유래다. 돼지고기나 양고기를 뼈가 붙은 채로 두툼한 고기토막을 동그랗고 납작하게 만들어 튀김옷을 입혀 튀긴 것이 서양요리, 커틀렛(Cutlet)이다. 

1929년, 이러한 '포크 커틀렛(Pork Cutlet)‘이 일본으로 전해지면서 그 어원이 바뀐 것이다. 일본인들은 ‘카츠레츠’, ‘카츠’라고 불렀다. 그 이름 앞에 ‘돼지 돈(豚)’자를  붙여서 ‘돈카츠’가 된 것이다. 

표준 일본어 표기법에 따르면 ‘까’발음이 잘못된 것으로 ‘가’를 써서 ‘돈가스’로 표준화가 되었다. 

이런 ‘돈카츠‘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까‘발음에 무리가 없는 우리 한국인들은 ’돈까스‘라고 불렀다. 

1960~1970년대에는 서울시내 경양식 집에서 젊은이들이 왼 손에 포크(Folk), 오른 손에 칼(Knife)을 들고 돈까스와 함께 매콤한 ’멕시칸 샐러드(Mexican Salad)‘를 즐겨 먹었다. 

돈까스를 먹고는 친구들에게 “나 오늘 점심 때 칼질 했다!”면서 어깨를 으쓱했던 시절이 있었다. 

최근 50대  퇴직공무원이 문을 연 ‘문래동 돈가스(1인분 8,000원)’가 맛있고 가성비가 높다고 인기를 끈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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