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일한만큼 월급 달라는 노동자, 포괄임금제 앞에선 무용지물
[이슈] 일한만큼 월급 달라는 노동자, 포괄임금제 앞에선 무용지물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1.10.18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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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노비문서로 자리잡은 포괄임금제 논란 지속
국정 공약 내걸어놓고도 노사 눈치 보느라 미적지근 정부 입장
포괄임금 쟁의 두고 각급 법원 판결도 엇갈릴 때 많아 더욱 고민
야근을 한다 쳐도 포괄임금제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라면 야근 수당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야근을 한다 쳐도 포괄임금제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라면 야근 수당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야근이나 특근처럼 기본 노동시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별도의 근무 시 그에 해당하는 노임을 지급해야 함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상식이 무시되는 경우가 있다. 노동자가 회사와 포괄임금에 동의하는 임금협정을 맺었을 경우다. 이 경우 노동자들은 얼마를 더 일하건 이 노동에 대한 댓가를 요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노동자의 노동력을 언제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최근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포괄임금제 폐지에 나서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불리하기 그지 없는 제도지만 기업의 이해타산 앞에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이를 감내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노동계와 진보 진영에서는 끊임없이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창하고 있지만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운영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도이니만큼 포괄 임금제 운영엔 여러 제약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포괄임금제는 원칙적으로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게 그것. 그럼에도 개별 기업에서는 근로시간 및 임금 계산의 편리함을 이유로 근로시간 산정의 어려움 여부와 관계없이 다수의 분야에서 활용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포괄임금제가 임금수준의 저하, 장시간 근로 등의 문제를 발생시키므로 보다 엄격히 보아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사실 법조차도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포괄임금제는 노동관계법 어디에도 적시돼 있지 않은 제도인 것. 다만 법원 판례에 따라 관례처럼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 법조차 포광임금제를 둘러싼 해석이 다양하게 존재할 만큼 이에 대한 시선은 상황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명문화된 조항이 없는 탓에 해석에 따라 적법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제도인 셈이다. 현정부가 이의 폐지를 국정과제로 내건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 정부는 출범 공약으로 포괄임금제 폐지를 내걸고 이를 추진해왔다. 초창기 분위기만 봐서는 금세라도 폐지될 것 같았지만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지 않다.

말로만 가이드라인을 내놓니 마니 했을 뿐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에 노동계와 진보정당에서는 계속해서 이의 실행을 촉구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인 것은 매한가지다.

지난 6월, 참여연대가 관련 지침 발표 계획을 공개해 달라며 고용노동부에 질의서를 보낸 것도 한 예다. 참여연대는 질의서에서 “2017년 10월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던 ‘포괄임금제 규제 지침’이 3년 7개월 동안 수차례 발표 연기된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 달라”며 “사업주에게 노동시간을 정확히 측정하고 기록을 유지하며, 이를 임금대장에 반영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에 대한 노동부 입장을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참여연대의 질의서 공개 요청이 있은 얼마 후, 노동계는 한걸음 더 나아가 포괄임금제도 폐지를 촉구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지난 6월 3일,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차별철폐대행진단은 부산노동청 앞에서 저임금 유발제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연장 노동, 야간노동, 휴일 노동 등 각종 초과 노동에 대한 수당을 정확히 계산해 지급해야 함에도 포괄임금제를 명목으로 각종 수당을 누락시키고 노동시간을 허위로 계산해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각계각층에서 포괄임금제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의 행보는 달라질 줄 모른다. 이대로라면 현 정부가 임기 내에 포괄임금제를 손 볼 가능성은 극히 미미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노동계는 포괄임금제 폐지는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라 주장한다. 사진은 포괄임금제 폐지 기자회견중인 노동자들. 사진제공 민주노총
노동계는 포괄임금제 폐지는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일이라 주장한다. 사진은 포괄임금제 폐지 기자회견중인 노동자들. 사진제공 민주노총

■ 법조차도 갈팡질팡, 기업 입장에선 쉽게 포기 못해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포괄임금제 자체는 법이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 제도다. 명문화된 조항이 없는 탓에 이와 관련된 다툼이 일어날 때조차도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관련 쟁의 발생시 어디서 판결했느냐에 따라서 가부가 뒤바뀌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각급법원의 판단 기준이 될 대법원의 입장조차도 명확하지 않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임금지급방식은 기본임금 및 이를 기초로 한 수당을 가산하여 산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다만 예외적으로 기본임금을 미리 정하지 않고 법정 수당을 모두 합산하여 월급여 또는 일당임금을 정하거나, 기본임금은 미리 정해두고 법정 제 수당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일정액을 수당으로 보아 근로시간 수에 관계없이 지급하기로 하는 근로계약 또는 단체협약은 포괄임금제로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경우 근로시간, 근로형태, 근로형태와 업무의 성질, 임금산정의 단위,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의 내용, 동종사업장의 실태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다. 다만, 단체협약•취업규칙•급여규정 등에 기본급과 별도로 수당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지급하도록 명시되어 있다면 포괄임금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각 쟁점 발생 시마다 전후사정을 따져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인 셈이다. 대법원이 이런 자세를 견지하니 하급심들이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

그럼에도 공통된 의견은 있다. 원론적으로 판단컨대 포괄임금제 자체는 독소 조항이 많아 폐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그것이다. 스마트 법률 사무소 이찬영 변호사는 “근로계약서 작성 시 기본임금과 소정 근로시간을 명시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요소”라면서 “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포괄임금제는 사실상 근로기준법을 거스르는 제도”라고 꼬집고 있다.

원론적인 폐지 입장에도 쉬이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은 정부가 경영계의 반발을 두려워한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경영계 입장에서 포괄임금제는 포기하기 어려운 당근이기 때문이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2019년 조사한 ‘포괄임금제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포괄임금제 활용 기업 중 70.8%, 포괄임금제 원칙적 금지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7년 매출액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포괄임금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 195개 응답기업 중 113개사(57.9%)가 포괄임금제를 도입했을 만큼 포괄임금제 활용에 적극성을 띠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조사들도 비슷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업들이 포괄임금제 폐지에 나서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노동계가 이를 좌시할 리 만무하다. 민노총과 한노총 양대노총은 포괄임금제야말로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제도로 포괄임금제 폐지를 통해 장시간 노동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데 뜻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팽팽하게 맞선 양자의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의 태도는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아쉽기만 한 대목이다. 결국 이에 대한 결정은 정치권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두 차례나 포괄임금제 금지법안을 발의한 바 있는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성향과 포괄임금제 금지에 당론을 집중하고 있는 정의당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한가지 걸리는 점은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중소기업들이 포괄임금제 폐지를 수용할 수 있냐는 점이다. 딱히 답을 내놓기 어려운 이 상황이 길어질수록 노동자들의 고충만 깊어진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지를 주시해보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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