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직장내 괴롭힘에 두 손 놓아야 하는 영세기업 근로자
[초점] 직장내 괴롭힘에 두 손 놓아야 하는 영세기업 근로자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1.09.15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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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의 거듭된 촉구에도 별무신통
사회적 약자 지켜야 할 법이 외려 약자들 무시하는 꼴
5인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은 근로기준법 우산도 못 써
5인미만 근로자를 향한 직장갑질의 칼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지만 이를 막을 방패를 막는 일은 감감무소식인 상황이 하염없이 이어지고 있다.
5인미만 근로자를 향한 직장갑질의 칼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지만 이를 막을 방패를 막는 일은 감감무소식인 상황이 하염없이 이어지고 있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지난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후,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이라면 참고 넘어갔을 근로자들도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에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두 손 놓고 불이익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근로자들이 있다. 바로 5인미만 기업에 속해있는 근로자들이 그들이다.

분명히 근로자지만 그들에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조차 나 몰라라 하니 그들을 향한 폭언과 폭력은 도무지 시정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국가 기관을 위시해 다양한 사회 단체들이 5인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위한 개선책을 내놓으라 항변하지만 오늘도 소 귀에 경 읽기는 이어지고 있다.

■ 전체 평균보다 더 높은 5인 미만 사업장 직장 내 괴롭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직장 내 괴롭힘의 비율이 줄고 있다는 조사는 여러 경로를 통해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4월, 직장 갑질 타파를 모토로 내건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의 조사는 그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법 적용 예외 대상인 5인 미만 사업장의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응답률은 전체의 36%로 평균(32.5%)보다 높았다. 이들 사업장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대답의 비율도 43.4%로 평균(31.9%)보다 높았다.

권두섭 직장갑질119 대표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해서 노동자에 대한 괴롭힘이 용인될 이유가 없고 이 조항이 적용돼도 사업주에게 어떤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며 “직장갑질 금지법을 개정하고, 법 시행령을 개정해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갑질 119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을 주장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차례에 걸쳐 이와 관련된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별무신통이기 때문이다. 

2019년 처음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근로기준법조차도 명시적으로 괴롭힘을 금지했을 뿐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는 주장이 이어지자 정부는 지난 3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고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방관한 사용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게 하는 등 구체적인 보호 의무를 부과하기에 이르른다. 

이번에 통과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은 사용자 괴롭힘에 대한 제재 규정, 사용자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 규정 등이 신설되고, 사용자 조치 의무를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용자 또는 사용자의 친인척이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일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사용자가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객관적인 조사를 하도록 조사 의무를 구체화했으며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도록 비밀유지 조항을 신설했다. 피해자가 안심하고 사내신고 및 조사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는데도 사용자가 사건 조사,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비밀 유지 등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산업안전보건법도 개정돼 폭언 등에 의한 건강 보호 범위를 확대했다.

현행법은 고객 응대 노동자가 고객의 폭언 등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길 현저한 우려가 있으면 사업주가 업무 일시 중단·전환 등 보호 조치를 하고 불리한 처우를 금지하게 되어있는데, 이 적용대상을 ‘업무와 관련하여 고객 등 제3자의 폭언 등에 노출될 우려가 있는 모든 노동자’로 확대했다.

또한, 현행법은 콜센터 상담사와 같은 ‘고객응대근로자’에 한하여 보호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으나 개정법은 고객 등 제3자의 폭언 등에 노출되는 노동자를 보호 대상에 포함했다. 개정된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10월 초에 시행될 예정이다.

미흡하긴 해도 의미있는 시도라고 여겨질 수 있는 개정안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에도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을 위한 배려는 없다는 점이다.

■ 영세한 사업구조 탓 경영난 심화 핑계로 제도 도입 반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대상은 사용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다. 따라서 특수고용노동자와 프리랜서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것이 현행법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378만명(통계청 추산)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의 조사에 따르면 법 적용 예외 대상인 5인 미만 사업장의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응답률은 전체의 36%로 평균(32.5%)보다 높았다. 자료제공 직장갑질 119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의 조사에 따르면 법 적용 예외 대상인 5인 미만 사업장의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응답률은 전체의 36%로 평균(32.5%)보다 높았다. 자료제공 직장갑질 119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엄연히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따른 대가를 받는 근로자임에도 여전히 근로기준법이 외면하는 불합리함에 대해 개선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앞서 본 것처럼 법이 개정되어도 상황이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까지 현 상황의 불합리함을 지적하고 나섰다. 인권위는 올 초 “직장갑질 금지법이 도입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해 있고 법제도의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며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괴롭힘 행위 처벌 규정 마련 ▲예방교육 의무화 ▲가해자 범위 확대 ▲사업장 외부 제3자(고객 등)의 괴롭힘으로부터 노동자 보호 등을 권고하고 나선 것. 

인권위는 지난해 7월에도 같은 내용의 권고안을 전달한 바 있다. 고용부는 예방교육 의무화는 수용했지만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확대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인권위에 회신했다. 제3자의 괴롭힘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추진해 사업주가 고객 응대 근로자 외에도 모든 근로자를 보호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해자 처벌 규정은 죄형법정주의 위반 가능성이 있고 가해자의 고의성 입증 책임이 커져 오히려 피해자 권리구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인권위 권고를 거부했다.

인권위는 “일부 권고를 수용해 향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고용부의 입장은 바람직하다”면서도 “괴롭힘 행위자 범위를 ‘고객’에만 한정하고 있어 원청업체 관계자, 회사 대표의 가족 등 고객 이외의 제3자에 의한 괴롭힘의 경우 보호의 사각지대 문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처벌 규정 도입과 관련해선 “적절한 제재 규정이 없는 한 규범의 실효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고용부가 유보 입장을 밝힌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가해자와 피해자 간 접촉이 빈번해 괴롭힘 문제는 더 심각하다”며 권고안 수용을 촉구했다.

현재 고용부는 이와 관련된 실태조사를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구 용역은 괴롭힘 금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할 수 있는지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하는 게 주요 목적으로 연구원은 사업장과 근로자의 직장 내 괴롭힘 인식 수준부터 적용 단계, 감독 행정 비용 등 정책 도입에 필요한 제반 사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검토에 따라 최종적으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안이 마련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역시 검토하겠다는 것에 불과한 상황이라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다.

사단법인 직업상담협회 신의수 이사는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5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해야 한다”며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위시해 간접고용,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근로자들이 대접받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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