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28] 색다른 경험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28] 색다른 경험
  • 편집국
  • 승인 2021.07.13 0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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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학생 대상  ‘사이버 폭력’ 걍의 소감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학생들만 다니는 학교에 다녀왔다.
얼떨결에 고문이란 직함을 받게 된 안전교육지도자협회에서 교육청으로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버 폭력’ 강의를 의뢰받게 되자, 대표가 나에게도 강의해달라고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요청을 받았을 때는 잠시 주저되었다. ‘사이버 폭력’에 대한 강의는 얼마 전 협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경찰청 소속 강사들과 함께 진행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지만, 늘 중장년 또는 노인 대상으로 강의를 했었고, 한 번도 학생들 그것도 여중 학생들에게 강의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표의 간곡한 요청도 있고 요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중요한 교육이기도 하고, 여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으로 수락했다.

아들만 넷을 두었으니 여학생들만 다니는 학교에 갈 기회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여학교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도 졸업식 때 외에는 가 본 기억이 없다. 

대부분의 직장 생활을 하는 아버지들이 그렇겠지만, 학교 모임이나 학부모 상담이 주로 낮에 열리기 때문에 아내가 전적으로 참석을 하게 되고 나는 본의 아니게 무심한 아버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를 기르는 데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영향력도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주세붕은 오륜가(五倫歌)에서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신 은혜라는 부생모육지은(父生母育之恩)을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다가 뉴질랜드에 이민을 가서는 부육(父育)의 기회를 얻게 됐다. 
이민 초기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고2, 고1, 중2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니다 이민을 온 아이들을 일일이 뉴질랜드 해당 학교에 입학시키고 선생님과의 상담하는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내가 떠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는데, 선생님과 격의없이 대하고 너무 자연스러운 학습 분위기를 보면서 내가 학교 다닐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여학교 방문은 결이 다른 또 다른 느낌의 놀라움이었다. 

협회 강사 몇 분과 함께 학교에 도착하여 반에 들어가기 전에 담당 선생님하고 교감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지각생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냈다. 늦었다고 뛰어오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걸어오는 게 너무나 태연하다. 

교감 선생님이 좀 일찍 다니라고 한 마디하고 그냥 들여보낸다. 지각하면 엎드려뻗쳐를 하거나 머리만 땅에 박고 뒷짐 지고 버티는 원산폭격 기합을 받다가 궁둥이 한 대씩 맞고 반으로 들어갔던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여학교라서 그런지 아니면 학생 체벌이 금지되어서 그냥 보내는 건지 지각생들에게 관대한 조치가 낯설게 느껴졌다.  반으로 들어가는 학생의 뒷모습을 보니까 몸에 딱 맞게 입은 학교 유니폼이 눈에 띄었다. 

상의는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 있고 치마는 아슬아슬할 정도로 짧고 몸에 딱 달라붙어 있다. 정상적인 학교 교복은 아닐 테고 손을 본 것이 분명한데 그것에 대한 지적은 없다.

뒤이어 오는 학생은 상의는 교복을 입고 하의는 츄리닝 차림이다. 선생님이 지적하자 체육 시간이 있어 일부러 그렇게 입고 온 것이라 했지만 내가 봐도 그냥 편하게 입고 온 것이 확실하다. 

변명하는 데도 미안한 기색은 없다. 선생님이 다음에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보낸다. 내가 보기엔 학생들의 태도가 당돌한데 선생님은 우리가 지켜보고 있어서 그런지 참 아이들에게 너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준비를 하기 위해 수업 시작 5분 전에 반에 들어갔더니 인사를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 관심을 두지 않고 친구들과 수다 떨기에 정신이 없다. 반에는 천장에 장착형 에어컨이 달려 있고, 교탁 옆모서리 천장에는 60인치는 넘어 보이는 커다란 TV 모니터가 달려 있는 게 생소하다. 

아마 선생님들도 노트북에 자료를 준비하여 TV 모니터에 띄우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 같았다. 에어컨이 상시 작동을 하고 있어 덥지는 않았고 오히려 에어컨 바람을 직접 맞는 학생들은 추운지 담요를 준비해와서 덮고 있었다.

반원은 30명 안팎이었지만 교실이 좁아 앞자리 학생은 교탁과 책상이 바로 맞닿아 있다.   다행히 자리 배치는 두 달마다 뽑기로 정한다고 한다. 책상은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앉지 않고 모두 따로 떨어져 앉아 있다. 학창 시절 짝꿍에 대한 추억은 없을 것 같다. 

시작종이 울리자 그제야 비로소 자리에 앉아 조용해진다. 성인 대상 강의를 할 때는 대부분 진행자가 소개해주는데, 담임 선생님이 바쁜지 나에게 일임하고 보이질 않는다. 학생들이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선생님이 들어와도 인사 없이 바로 수업을 진행하는 모양이다. 나는 반장에게 지시하여 학생들에게 인사를 시키고 나도 인사를 하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내가 아이들 보기엔 꼰대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본예절은 필요한 것 같아 인사를 받고 시작했다. 

주제가 학생 자신에게 당면한 것이라 관심과 흥미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관심을 보이는 학생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냥 듣고 있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좋지만 이것도 교육받는 것이라 썩 내키지 않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가자 급기야는 머리를 책상에 묻고 아예 잠을 청하는 아이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당혹스러웠다. 내 강의가 재미가 없나 하는 의구심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름 학생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동영상도 곳곳에 집어넣고 강의 교안도 착실하게 준비를 해서 처음 하는 학생 대상 강의지만 자신만만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내색은 안 했지만, 순간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렵고 힘들다는 공무원과 노인대학 심지어 교도소 수감자 대상 강의도 몇 년씩이나 진행한 프로 강사라고 자부하던 나도 어린 학생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성인들은 졸음이 와도 나름 참으려고 노력도 하고 티 안 나게(물론 강사 눈에는 다 보이지만) 조는 모습을 보이지만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책상에 엎드린다. 

고등학교 수업에 들어가면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들은 아예 엎드려 자고 교사들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현직 교사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내가 그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깨워서 주의를 줄까 하다가 참았다.  45분짜리 강의에 시간도 부족하고 중2 아이들에게 억지로 듣게 할 만큼 사이버 폭력이 당장 그들에게 당면한 문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강의를 마치고 다른 아이들에게 슬쩍 물어보니 수업 시간에도 자는 친구들이 많단다. 학창 시절은 지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부하는 습관과 태도 그리고 사회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예절을 익히는 것도 중요한데 하는 우려하는 마음이 들었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지체 없이 아이들이 움직인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하며 마치던 절차도 없다. 완전히 외국식으로 변했다. 이런 건 따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교탁으로 나아와 “잘 들었습니다.”하고 인사하는 학생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그나마 무사히(?) 강의를 마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도 무서워 쳐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천방지축 중2가 아닌가. 집에 돌아와 협회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다. 힘이 떨어져 조금이나마 관대해지고 인내심이 생긴 나이에 아이들을 만난 게 다행이라고. 

아이들을 통해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도 힘듦을 알게 된다. 아직도 가야 할 학교가 다섯이나 남았는데,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내가 몸을 기울여 맞출 수밖에 없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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