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30] 유비필용(有備必用)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30] 유비필용(有備必用)
  • 편집국
  • 승인 2021.07.27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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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내가 존경하던 직장 대표님이 직원들에게 “준비가 되어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쓰일 때가 있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면서 미래를 위해 준비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자녀를 넷이나 두고 어머님까지 모시고 살았던 젊은 시절에 빠듯한 월급으로 아등바등 살면서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이 막연하기는 했어도 ‘준비가 되어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쓰일 때가 있다’는 말은 먼 터널 끝에 보이는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의 끈이었고 지금까지 내 인생에 굳건한 신조로 자리 잡고 있다.

준비가 되어 있으면 반드시 쓰인다는 말을 유비무환(有備無患)과 빗대어 유비필용(有備必用)이라고 붙여 보았다. 

미리 준비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다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은 다소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느낌이 있는 반면에 준비가 되어 있으면 반드시 쓰인다는 유비필용(有備必用)이란 말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미래 지향적이다. 

이 말에는 지금의 노력과 수고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위안과 확신이 담겨 있다. 이제 지난날을 돌아보니, 의도했거나 의도하지 않았거나 준비한 것이 인생길 곳곳에서 쓰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의 직장 생활 첫걸음은 영어 번역사였다. 아는 친구가 교회 자료 번역하는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영어를 더 배울 기회가 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과 다른 하나는 번역하기 위해 교회 자료를 읽다 보면 영적으로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을 받아들였다.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영어 공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번역 아르바이트를 통해 영어를 꼼꼼히 공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울 준비의 기회가 되었다. 그런 과정과 준비를 통해 번역사로 정식 채용되어 사회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리고 영어 실력이 늘고 경험이 쌓이면서 미국 교회 본부에서 4월과 10월에 개최되는 연차 대회에 거의 10년 가까이 번역 및 통역 일에 참여하게 되어 80년대부터 미국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또한, 뉴질랜드로 이민을 갈 때 영어 능력을 평가하는 IELTS 시험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고, 이민 초기에 낯선 외국에서 정착하는 데 영어 공부를 해 둔 것이 두고두고 요긴하게 쓰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연세 교육 대학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이라는 신설학과에 진학하여 졸업한 것도 돌아보면 유용하게 쓰이게 될 준비의 기간이었다. 

요즘에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많아서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학과를 개설하고 있지만 내가 공부할 때만 해도 생소하였고 전망도 불확실하고 막연했었다. 

나는 새로운 과정에 대한 호기심으로 공부를 했지만, 솔직히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는 그 당시에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대학원을 졸업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하게 됨으로써 직장에서 승진 평가에 도움이 되었고, 이민 자격 평가 시에도 석사 학위를 갖고 있어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어 교육을 공부했던 전공을 살려 뉴질랜드에서 교민 및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학교에서 교감으로 봉사하면서 키위(뉴질랜드 현지인들의 별명)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기회도 얻게 되었으니 이 또한 준비를 한 것이 쓰임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또 다른 경우로는 뉴질랜드에서 남들이 생각하기에 늦은 나이인 지천명이 넘은 나이에 법과 대학에 들어가 아들뻘이 되는 젊은이들과 함께 변호사 공부를 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53세의 나이에 법과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면서 늦은 나이에 공부해서 과연 앞으로 써먹을 일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졸업하여 뉴질랜드 변호사가 되므로 인해 뉴질랜드와 한국에서 변호사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또한 사회적으로 한인회장, 대양주총한인연합회 법률 고문, 바실련 부회장, 민주평화통일회의자문위원 등 여러 직책에서 봉사할 기회를 얻는 발판이 되었으니, 늦은 나이에 준비를 하더라도 언젠가는 쓰인다는 말이 이루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내 남은 인생에서 또 어떤 준비를 해서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호서대를 설립한 강석규 박사가 95세의 연세에 지난 30년을 돌아보면서 열심히 살고 65세에 은퇴한 후에 남은 인생을 덤이라 생각하며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을 30년이나 산 것에 대해 후회하며 95세의 나이에 어학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한 말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들린다.

나도 “이 나이에 뭘…”하는 생각으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뒤돌아보면서 후회하고 싶진 않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때가 가장 빠른 때이고, 오늘이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니까, 지금 내가 열의를 갖고 하는 일들은 언젠가 반드시 쓰일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오늘도 느즈러지는 심신을 곧추세워본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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