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35]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원하는가?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35]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원하는가?
  • 편집국
  • 승인 2021.08.31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우물쭈물 살다가 내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

유명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명이라고 알려진 문장이다. 그는 조그만 나라 아일랜드 출신으로 많은 평론가로부터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라는 평을 받기도 하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극작가이며 소설가이고 수필도 쓰고 평론도 썼으며, 화가이기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그가 남겼다는 이 독특하고 해학적인 묘비명은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이 문장의 영어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다. 직역하면 ‘너무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죽음)이 일어날 줄 알았지.’라고 할 수 있다. 

버나드 쇼는 95살에 죽었으니까 ‘더 오래 이 세상에 머물게 되면, 이렇게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라는 말을 하려 했으리라는 추정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기존 번역이 완벽하진 않더라도 오히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번역의 잘잘못을 따지려고 이 문장을 인용한 것은 아니다. 널리 알려진 그 문장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 보기 위함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명제가 있는데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몇 살에 죽을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60년 우리나라 전체 평균수명은 52.4세였으며 1970년에는 62.3세였다. 그래서 그때는 환갑(60세)까지 살면 장수했다고 환갑잔치를 해주었던 시절이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점점 늘어나 2020년에는 82.7세가 되었다. 더 나아가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2030년 출생자의 평균 기대수명을 남자는 84.1세, 여자는 90.8세로 보고 있다.

2015년 5월 23일 자 ‘타임’지에는 흥미로운 기삿거리가 실렸다. 예쁜 어린아이의 얼굴을 표제지에 싣고는 ‘이 아이는 아마도 142살까지 살지도 모른다’(This baby could live to be 142 years old)라고 했다. 

그보다 앞선 2011년 2월 21일 자 타임지에는 ‘2045년, 인간이 불멸이 되는 해’(2045, the year man becomes immortal)라고 주장했다. 

황당해 보이지만 누군가에는 기대를 하게 해줄 이 기사가 언젠가는 현실이 되어 죽음에서 벗어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아직까지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명제가 절대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 외에도 그 시기가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안다면 ‘우물쭈물’ 살진 않을 것이다. 

그때가 언제가 되든지 우리가 죽게 되면 장례식에 가족, 친지, 친구, 직장 동료와 지인들이 참석하여 고인을 추모할 것이다. 고인과의 추억을 나누며 고인이 남긴 족적을 떠올리면서 그들의 추억 속에 남은 그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다.

장인어른이 95세의 연세로 코로나에 걸리셔서 병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계실 때, 증상이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악화하셔서 생명까지 위협을 받으셨던 때가 있었다. 

평소에 입버릇처럼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까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하시며 죽음에 대해 초연하셨던 분이셨지만, 코로나로 인해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당신의 삶이 너무 억울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것은 더 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몹쓸 전염병인 코로나로 인해 목숨을 마감하게 되면, 남은 자녀들의 기억 속에 좋지 않은 인상과 모습으로 남겨질 것이 염려되셨기 때문이다.

신앙을 갖고 계셔서 죽더라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시므로 죽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죽은 후 자녀들과 손자 그리고 증손자(현재 증손자만 16명이 있음)들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 줄 것인가가 우려되셨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 온 과정을 통해 우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추구해 가는 시간으로 이뤄진다. 

삶에서 우선순위를 두고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향하는 목표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주기 원하는 바와 일치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사과 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배가 열릴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기억되고 싶은 모습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잘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는 웰빙(Well-being)이 유행하더니 이제는 웰다잉(Well dying)을 얘기한다. 웰다잉은 아름답고 후회 없이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오늘 하루하루를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해 의미 있고 후회 없이 산다면 우리는 언제 오게 될지 모르는 죽음의 순간을 미련 없이 맞이할 수 있고, “우물쭈물 살다가 내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하는 아쉬움 가운데 숨을 거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기억되고 싶은 바로 그 사람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