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37]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이긴다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37]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이긴다 
  • 편집국
  • 승인 2021.09.14 0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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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엉덩이가 무거워야 이긴다.” 
우리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려면 궁둥이를 붙이고 진득하게 앉아 끈기 있게 공부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고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늘 해주셨던 말씀이다. 

그 당시에는 ‘스마트하게’라는 말보다 ‘열심히’라는 말이 통용되던 때였다. 공부도 열심히, 일도 열심히, 운동도 무식하리만큼 죽어라 열심히 해야 경쟁에서 이긴다고 생각했다. 

꾸준하고 끈기 있게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고 믿었고, ‘끈기’ ‘인내’가 성공의 키워드였다. 궁둥이를 붙이고 오래 앉아있는 것은 끈기가 있다는 것이고 끈기가 있으면 결국 성공한다는 공식이다.

국문학자인 조윤제 교수가 한국 문학에 나타난 특질을 통해 한민족의 특성을 ‘은근’과 ‘끈기’로 규정한 것도 이 공식을 이루는 데 한몫을 했다. 

‘은근’을 한국의 미(美)이며, ‘끈기’는 한국의 힘이라고 표현하면서, ‘은근’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학창 시절 입시 준비하면서 외웠던 고려 때 시가(詩歌)인 가시리 이별가를 예로 들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마난/ 선하면 아니 올세라/ 설온  님 보내옵노니/ 가시는 듯 도셔 오쇼서”

그리운 임을 보내는 애끊는 심정은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하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마음을 은근히 나타내는 것이 한국인의 심정이라고 했다.

또한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는 정몽주의 단심가에서 한국인의 끈기를 단편적으로 나타낸다고 했다. 

일백 번을 죽더라도 그리고 백골이 진토가 되어 넋이 있던 없던지 간에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결의이며 끈기인가.

이러한 민족의 특성은 우리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단군 신화에 나오는 웅녀(곰)가 마늘과 쑥만 먹으며 삼칠일을 견뎌 마침내 인간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은근’과 ‘끈기’였다. 

엉덩이를 무겁게 유지하며 은근과 끈기의 정신을 살려 목표를 달성했던 때를떠올려 보면 뉴질랜드에서 법 공부할 때가 생각난다.

50이 넘어 법과 대학에 입학해서 교재를 받아 본 순간 입학한 걸 후회했다. 책의 두께도 만만치가 않았지만, 영어로 빽빽이 적혀 있는 내용으로 기가 질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아내와 자녀들에게 법과 대학 입학 소식을 전했기 때문에 도전도 해보기 전에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젊은 원어민 학생들을 따라갈 방법은 그들이 두세 시간 공부한다면 나는 대여섯 시간 공부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생애 처음으로 도서관이 문을 열 때를 기다려 들어가서 문을 닫는다고 쫓아낼 때까지 공부해보았고, 볼펜 심이 다 닳을 때까지 써본 적도 그때였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이긴다”라는 말씀이 나를 견디게 해주었고 마침내 낙오 없이 졸업할 수 있었다.

엉덩이가 무거운 것으로 치면 우리 첫째 아들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뉴질랜드에서 퍼스널 뱅커로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다가 30이 넘은 나이에 들어가기 어렵고 졸업하긴 더 어렵다는 치대에 도전했다. 

그러더니 엉덩이가 짓무를 정도로 버티고 공부해서 결국 무사히 졸업하고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엉덩이가 무거워 목표를 성취한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최근에 끈기 있게 이어온 작업 하나를 끝맺었다. 매일 아침 ‘함께 나누는 성구’라는 제목으로 경전 한 구절을 적고 그에 대한 해석과 개인적인 생각을 첨부하여 교회 회원들에게 보내주던 작업을 지난주에 마무리를 지었던 것이다. 

횟수로 1,525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적어 보냈으니, 날수로 따지면 4년 하고도 65일이 되는 기간이다.

교회 회원들의 부탁을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오래 지속하리라고는 예견하지 못했고, 만약에 미리 계산됐더라면 아마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기간에 자녀들이 있는 뉴질랜드에 두 번이나 다녀오고, 코로나 감염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는 등 계속하지 못할 뻔한 사정과 핑계거리도 있었다.

외국에 나갈 때는 노트북과 자료를 챙겨가고, 오랜 비행시간과 시차로 한국아침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서는 예약을 걸어 놓았다.

또한 코로나로 격리되어 병원에 입원할 때도 무엇보다 먼저 노트북을 챙겼다. 코로나 증상으로 고열과 근육통이 심할 때는 해열제를 먹고 링거를 맞아가며 매일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4년 65일이나 걸려 끝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엉덩이가 무거운 끈기의 정신이었기에 가능했다.

초스피드를 즐기며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세대에게는 ‘은근’과 ‘끈기’라는 성품이 고리타분한 구시대적 가치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이긴다”라는 말을 아직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그리고 ‘은근’과 ‘끈기’는 내남없이 가슴 속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필요할 때에는 슬몃슬몃 나타나는 우리 민족의 성정(性情)이기에 누구나 엉덩이가 무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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