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43] 팔불출(八不出)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43] 팔불출(八不出)
  • 편집국
  • 승인 2021.10.26 0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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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동희 씨가 학교에서 오퍼를 받았어요.”
연하의 남편을 늘 존칭을 붙여가며 말하는 막내며느리가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뉴질랜드 중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막내아들이 마침내 정규직 교사직에 오퍼를 받았다는 것이다. 

막내아들은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듯이 제일 마음이 많이 가는 아들이다. 바로 위 형을 낳고 사 년이나 뚝 떨어져 태어나 애착이 가는 점도 있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외국에 데려와 공부하고 적응하도록 한 것이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나이에 선택의 여지도 없이 외국에 따라와 영어 알파벳도 모른 채로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했다. 위 형들은 모두 같은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고 어울릴 수도 있었지만, 막내는 혼자 아무 도움 없이 학교에 다녀야 했다. 

전혀 영어를 모르기 때문에 적응하는 동안 부모가 함께 있어도 된다는 교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혼자 이겨내야 할 과정이라 생각하고 나는 매정하게 막내를 혼자 학교에 떼어놓고 나왔다. 

학교 문을 나서면서 낯선 환경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견디기 위해 애면글면할 아이 생각에 마음이 애잔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아들만 넷을 두고 있다. 지금은 저출산 문제로 자녀가 많을수록 애국자 소리를 듣고 지자체마다 다양한 혜택을 주면서 자녀들을 많이 낳으라고 권장하고 있지만, 내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 아래 정부에서 주는 공식적인 세금 혜택과 건강 보험 지원도 두 자녀까지 해당되던 때였다. 

그런 시대에 아이들을 넷이나 두었으니 어딜 가나 눈총을 받았다. 그 당시 모 코미디언의 “지구를 떠나거라~~”는 유행어가 한창 회자하던 때라 자녀 넷을 둔 나는 주위로부터 지구를 떠나라는 말을 농담으로 자주 들었다. 지구를 떠날 수 없어 내가 택한 것이 뉴질랜드 행이었다.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에 각각 다니던 아이들은 부모의 결정에 본인의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고국을 떠나 뉴질랜드라는 이국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통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며 생소한 문화에 적응해야만 했지만, 고맙게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성장해 주었다.
 
내 성격을 많이 닮은 큰아들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뉴질랜드 은행에서 퍼스널 뱅커로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다가 30이 넘은 나이에 치과 의사가 되기 위해 치대에 도전하였다. 

엉덩이가 짓무를 정도로 끈기 있게 앉아 공부한 끝에 현지인들도 어렵다는 치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치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만난 아내는 친정어머니보다 시어머니인 우리 아내와 더 닮은 점이 많아 딸이 없는 아내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나보다 아내 성격을 더 닮은 둘째는 끼가 많아서 뉴질랜드 고등학교에 다닐 때 ‘Wings’(윙스)라는 댄스 그룹을 만들어 학교 축제 때마다 팬들을 몰고 다닐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방 대학에서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에 건너가 앱 개발 업체에 취직하여 다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인 교회 재단의 미국 본부 사무실에 취업하여 앱 개발 업무를 하고 있다. 

나와 호형호제하는 사람의 딸을 소개받고 (처음엔 싫다고 하는 걸 억지로 소개함) 인터넷으로 교제하다가 대학 졸업을 하면서 직접 만나보고 오겠다고 미국에 가더니만 처가 식구들과 결혼하기로 합의를 보는 바람에 부랴부랴 우리 식구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아무 준비 없이 결혼식을 치르게 만든 엉뚱한 면이 있는 아이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군인, 경찰과 같이 정복을 입는 직업을 좋아하던 셋째는 뉴질랜드에서 경찰이 되었다. 뉴질랜드에서는 필기시험뿐만 아니라 엄격하고 힘든 체력 시험을 통과하고 경찰 아카데미의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시험을 거쳐서 졸업해야만 경찰이 될 수 있다. 신장 187cm, 체중이 100kg이 넘어 현지인들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체격으로 일선에서 뛰다가 최근에 한 단계 위인 형사가 되었다.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는 막내가 음대에 입학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 모두 놀랐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걸 할 때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 때까지 제대로 음악 공부를 한 적도 없었지만, 막내는 대학에서 작곡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프로듀싱한 음악으로 학교 축제 때나 다른 이벤트 행사에 초청받아 큰 인기를 끌고 인정을 받는 걸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평소에도 아이들을 좋아했던 막내는 자신이 원하는 학교 선생이 되기 위해 음대를 졸업한 후 사범 대학에 편입하여 교사 자격증을 땄다. 그런 후 경험을 쌓기 위해 휴가나 병가 등으로 교사 결원이 생길 때마다 대리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번에 정식 교사 오퍼를 받은 것이다.

자식 자랑을 하는 사람을 흔히 팔불출이라고 한다. 
제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여덟 달 만에 낳은 아이를 일컫는 팔삭동(八朔童)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팔불출에는 스스로 잘난 체하는 사람, 마누라 자랑하는 사람, 자식 자랑하는 사람, 부모나 조상 자랑하는 사람, 형제 자랑하는 사람, 어느 학교 선후배라고 자랑하는 사람, 그리고 고향 및 출신 자랑하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즉, 이런 자랑을 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나 덜떨어진 사람 취급하며 일컬을 때 팔불출이란 말을 사용한다.

뉴질랜드라는 낯선 곳에서 사춘기를 보내면서 잘 견뎌주고 크게 내세울 것은 없더라도 이젠 떳떳한 사회 일원으로 제 앞가림을 해가고 있고, 부모 걱정하지 않도록 스스로 알아서 제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고, 공평하게 모두 자녀를 둘 씩 낳아 졸지에 여덟 손자녀를 둔 할아버지로 격상시켜 준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버지로서 제대로 뒷바라지도 못 한 내가 팔불출 소리를 듣더라도 자랑하고 싶은 대견한 아들들이 아닐 수 없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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