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45] 국적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45] 국적
  • 편집국
  • 승인 2021.11.09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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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마침내 대한민국 국적이 회복되었다.
2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며 국적회복 신청을 했을 때 처리하는 데 6개월이 걸린다고 하여 설마 그렇게 오래 걸리겠나 싶었는데 정말 꼬박 6개월을 채우고 한국 국적이 회복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긴 시간 잊지 않고 처리해준 것이 고맙기는 하지만, 난 아직도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하는지 의문이다.

법무부 장관의 직인이 찍힌 대한민국 국적 회복 증서를 받아보니 기분이 묘했다. 뉴질랜드에서 시민권 증서를 받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사실 뉴질랜드 시민권을 받았을 때는 그 나라에 살기 위한 하나의 의례라는 생각만 들었지 국적이 변경되었다는 것이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다 국적이 바뀌어 내가 더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 일이 뉴질랜드 여권으로 처음 한국에 방문했을 때였다. 

한국에 도착해서 내국인 통로가 아닌 외국인 통로를 통해 입국 심사를 하면서 이제 내가 한국에서 외국인 취급을 받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반면에 뉴질랜드에 돌아가서 입국 심사를 받을 때 담당 직원이 “welcome home!”이라고 하는 말에 잠시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잠시 방문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돌아와 한국에 거주하려고 보니 외국인 신분으로는 불편한 점들이 많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우선 은행 계좌 개설이나 신용카드 발급받는 게 쉽지 않았다. 나의 경우엔 다행히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인의 추천으로 건축회사에 고문으로 일을 봐주게 되면서 은행 개설을 할 수 있었고 신용 카드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외국인으로 한국에 거주할 경우 주민등록증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거소증을 발급받는 데 외국인 등록 번호는 뒷자리가 5(남자)나 6(여자)으로 시작되어 어떤 앱에서는 주민등록번호가 틀린다고 아예 회원 가입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주민등록초본이나 기본증명서를 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름도 외국인이라 한글이 아닌 영어로(영어 스펠링) 되어 있어 이름을 댈 때마다 되묻거나 영어 스펠링을 불러줘야 하는 등 사소한 일이지만 한국 사람이면 당연하게 아무 문제없는 일들도 제한되고 불편했다.

이런 불편함도 있고 아무래도 한국에서 머물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서 한국 국적 회복을 고려하게 되었고, 한국 국적법이 개정되어 만 65세가 넘으면 외국 국적 포기 없이 한국 국적 회복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  외국 국적은 포기하는 대신 외국 국적 불이행 서약서를 제출하게 되어 있다. 

한국에 살 때는 철저하게 한국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다. 또한 외국 나갈 때도 외국 여권이 아니라 한국 여권을 사용해야 한다. 국적이 회복되어 이중 국적 소유자가 되면서 이 나이에 공직에 나설 일도 없으니 촌로(村老)가 이중 국적을 소유했다고 시비 걸 사람은 없겠지 하는 실없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국적 회복이 되었어도 온전한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우선 주민센터(내가 한국에서 살 때는 동사무소였음)에 가서 주민등록 신고부터 해야 했다. 이전에 쓰던 주민등록번호를 다시 회복하고 주민등록증도 신청했다. 

그런 다음 한 일이 은행 정리였다. 거래 은행이 여러 곳이고 전화상으로 처리할 수 없으니 은행마다 찾아가서 영어로 된 이름을 한글 이름으로 바꾸고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해야 했다. 계좌 번호는 바꿀 필요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보험 회사와 각 신용카드 회사에도 연락하여 개인 정보 변경을 요구해야 했다. 당연히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떼서 보내줬다. 그리고 회원 등록된 모든 소셜 미디어에서도 일일이 개인 정보를 변경했다.

또한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휴대폰 명의 변경을 했다. 영어로 된 것을 한글 이름으로 바꾸고 주민등록번호도 변경했다. 요즘엔 대부분 본인 인증을 휴대폰을 통해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증하려는 곳의 정보와 휴대폰 정보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면 본인 인증이 안돼 더 진행할 수가 없다.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이런 번거로운 일들을 처리하면서 괜한 일을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국적이 회복되어 처음으로 혜택 본 일도 있었다. 

얼마 전에 재난지원금을 받은 것이다. 한국에서 수입이 있을 때마다 세금은 꼬박꼬박 냈지만, 외국인 신분이라 재난지원금을 받지 못했는데 이제 국적이 회복되어 재난지원금을 받게 되니 비로소 대한민국 구성원의 일원이 되었음이 실감 났다.

국적을 갖는다는 것은 해당 국가의 구성원이 되는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국적이 회복되어 다시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보니 뉴스에서 접하는 한국 사회 세태와 현상들이 남의 일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외국인 신분이었을 때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흘려보냈던 일들도 이젠 내 일같이 생각되어 다시 보게 된다.

마뜩잖은 일들이 눈에 더 들어오면 내가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 사회에 곤쇠가 되지 않고 부모님께 안갚음 하듯이 뭔가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는 단지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국민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국적 회복을 하면서 했던 약속 때문이라기 보다는 잠시라도 한국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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