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問答(Q&A)으로 알아보는 선비의 고향, 안동(安東) 문학기행
[전대길 CEO칼럼] 問答(Q&A)으로 알아보는 선비의 고향, 안동(安東) 문학기행
  • 편집국
  • 승인 2021.11.24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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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2021년 10월21일~22일(1박2일) 경북 안동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 초청, 국제PEN한국본부(김 용재 이사장)의 이사장단과 시인. 수필가, 소설가, 평론가, 국제PEN 번역가와 문학사업 위원장 등 국제PEN 회원(27명)으로 결성된 <국제PEN 안동 문학기행단>이 예향(禮鄕) 안동(安東)을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지키면서 찾았다. 

안동을 두 번째 찾은 필자도 안동 하회마을, 도산서원, 봉정사, 한국국학진흥원 등을 두루 찾았다. 가는 곳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독자들을 위해 알기 쉽게 문답(Q&A) 형식으로 적는다. 
                     
Q. 안동에서 맨 처음에 무엇을 느꼈나?
A. 안동에 도착, <황소곳간>이란 식당 <부네실(室)>에서 오찬을 했다. 그런데 <부네>란 이름이 생소했다. <안동 하회탈춤 놀이>에 나오는 선비와 양반이 좋아하는 ‘젊은 여인’이 바로 <부네>임을 처음 알았다. 필자의 무지(無知)가 부끄럽다.  

Q. ‘낙동강이 마을을 돌아나간다’는 하회(河回)마을을 방문하기 전에 하회마을 전경(全景)이 잘 내려다보이는 화천서원 뒷산의 ‘부용대(芙蓉臺)’에 올라 본 느낌은?               

 <해발 64M의 깎아지른 절벽, 부용대(芙蓉臺)> <해발 64M의 깎아지른 절벽, 부용대(芙蓉臺)>
 <해발 64M의 깎아지른 절벽, 부용대(芙蓉臺)> <해발 64M의 깎아지른 절벽, 부용대(芙蓉臺)>

A.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의 서북쪽 강 건너 광덕리 소나무 숲 옆에 있다. 
태백산맥의 맨 끝 부분에 해당한다. 오른쪽 안동에서 흘러나와서 하회마을을 S자 모양으로 끼고 도는 낙동강 건너편 깎아지른 절벽 꼭대기가 <부용대(芙蓉臺)>다. 

부용대(芙蓉臺)란 중국 고사에서 따온 이름이다.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한다. 처음에는 ‘하회의 북쪽에 있는 언덕‘란 뜻의 ’북녘 북(北)+벼랑 애(崖)‘자의 ’북애(北崖)라고 불렀다.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절벽아래에는 옥연정사,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있다.  

이곳에서 하회마을을 내려다 보니 ‘다리미 금두형‘ 또는 ‘항해하는 배’처럼 보였다. 하회마을을 둘러보기 전에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 풍광을 즐기길 권한다.

<부용대(芙蓉臺) 정상(頂上)에서 내려다본 하회마을 전경(全景)>

Q. 하회마을에 대해서 설명해 주길 바란다. 
A. 1984년 1월 중요민속자료 122호로 지정되었다. 민속적 전통과 건축물이 잘 보존된 ‘풍산 류씨(柳氏)’ 가문이 600여 년간 살아 온 씨족마을이다. 

하회마을 지형은 태극형(太極形),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다. 와가(瓦家:기와집)와 초가(草家)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 된 곳이다.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을 뒤에 태백산 자락인 화산(花山)의 지맥이 충무공 이 순신 제독의 조력자인 ‘서애 류 성용(柳成龍)’의 고택인 충효당(忠孝堂..1551년 건축)에서 멈춘다. 임진왜란의 피해가 없는 양반고을이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 구상나무를 기념 식수했다는데 잘 자라고 있다. 풍산 류씨가 살기 이전에 ‘하회 류씨’가 살다가 타지로 이주했다. 2010년 8월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으로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충효당에는 유학자인 서애 류성용 역사기념관이 있다. 
하회마을 인근에는 풍산 류씨, 풍산 김씨, 풍산 심씨, 풍산 홍씨 가문이 많이 산다.                

 <‘서애 류 성용 (柳成龍)’의 고택, 충효당(忠孝堂)에서>

이밖에 하회마을의 특징에 관한 문화 해설사의 설명이다.  돌담이 없다. 배에 구멍을 내는 격이라서 우물을 파지 않았다. 모든 집은 강(江)을 향해 집을 지었다.            

<풍산 류씨 종가집, ‘양진당(養眞堂...보물306호)’은 정남향 집이다>
<풍산 류씨 종가집, ‘양진당(養眞堂...보물306호)’은 정남향 집이다>

하회마을 강변에 예전에는 배(梨)나무가 많았다. 지금은 벚나무로 바뀌었다. 탈 종류도 하회탈과 병산 탈이 있다. 하회마을에 국보 2가지, 보물 5가지가 있다. 

9가지의 국가 민속 문화재가 있으며 하화마을에는 약 20여개의 문화재가 있다. 세계 문화유산이 3가지다. 무형 문화유산인 하회별신굿 놀이가 있다. 

나라에 큰 공훈을 세운 사람을 영원히 사당에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제사인 불천위제사(不遷位祭祀)를 끊어짐 없이 계속해서 지내고 있다.                                       

<하회탈>
<하회탈>

Q. 하회마을의 전래 놀이는?
A. 서민들을 위한 놀이와 선비들을 위한 놀이가 병존했다.   굿을 겸한 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인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시회(詩會)를 겸한 선유(船遊) 놀이인 ‘하회선유줄불놀이’ 등이 있다. 

Q. 안동 도산서원(安東陶山書院)을 둘러보고 느낀 소감은? 
A.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서원이다. 이 황 선생이 은퇴해서 안동 토계리로 귀향했다고 해서 퇴계(退溪)라는 호를 지었다고 한다. 참고로 율곡(栗谷) 이 이 선생은 어릴 적에 아버지 고향인 파주의 밤 나무 골(栗谷)에서 자랐다고 해서 아호가 율곡(栗谷)이다. 

조선 선조 7년(1574)에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문인과 유림이 중심이 되어 창건했다. 1575년 선조에게서 편액(扁額)을 받아 사액 서원이 되었다. 조선후기에 영남 유림의 정신의 요람이었다. 도산 서원의 가장 뒤편에 자리한 상덕사는 이황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2019년에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다.                    

<안동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시사단(試士壇)’>
<안동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시사단(試士壇)’>

Q. 도산서원 입구 안동댐 건너편 강 가운데 섬처럼 생긴 아름다운 저 곳은 무엇인가? 
A. 조선 정조대왕이 퇴계 이황을 흠모하는 마음을 표하기 위한 ‘시사단(試士壇)’이다. 
영남 인재를 선발하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이 시사단에서 한 차례 있었다. 이때 과거시험에 7,000 여명이 응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단을 쌓고 비와 비각을 세웠다. 허 목 선생이 과거시험 시제(詩題)를 내 걸었던 시사단(詩士壇)이 비각 왼편에 있다. 

안동댐 수몰(水沒)을 막기 위해 섬을 부양시킨 인공 섬이라고 설명한다. 참가자 모두가 금시초문이라고 이구동성이다.                      

<안동 도산서원을 찾은 국제PEN 문학기행단>

Q. 질그릇 도(陶)자로 시작하는 도산서원(위 사진 상단)이란 현판은 누가 썼는가?
A. ‘석봉(石峯) 한 호(韓 濩)’가 썼다. 뭇 사람들이 한 석봉이라고 부르는데 호가 석봉이고 이름은 호자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온도, 습도를 자동 조절하면서 원본을 잘 보존하고 있다.  도산서원에 걸려있는 현판은 사본(寫本/Copy)임을 밝힌다. 

Q. 퇴계 이 황의 좌우명(座右銘) 4가지는 무엇인가? 
A. 사무사(思無邪), 무자기(母自欺), 신기독(愼基獨), 무불경(母不敬)이다. 한자(漢字)로 ‘어미 모(母)‘자와 ’말(勿) 무(母)‘자는 똑같은 글자다. 비슷한 사례다. ‘일 사(事)’자와 ‘섬길 사(事)’자도 동일한 한자(漢字)다.                             

 <퇴계 이 황의 좌우명(座右銘)>

Q.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안동 봉정사(鳳停寺)에 관해서 말해 달라. 
A. 경북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목조 전각(殿閣)인 ‘봉정사(국보 15호) 극락전’은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물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13년 전에 지어졌다. 

따라서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라고 역사 교과서를 수정 중이다. 봉정사는 고려시대에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했으며 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따랐다. 

부석사를 창건했던 의상대사가 도력(道力)으로 종이를 봉(鳳)을 만들어 날렸다. 그런데 이 종이 봉(鳳)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황이 머무는 곳’이란 뜻의 ‘봉정사(鳳停寺)’라고 이름 지었다. 

참고로 불교(佛敎)의 4대 보물은 ‘목어(木魚), 법고(法鼓), 운판(雲板), 범종(범종(梵鐘)’을 말한다.        

  <안동 천등산 봉정사 극락전에서 국제PEN 문학기행단>

<‘3000년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꽃)이 봉정사 대웅전 우측 불상 다리에 피어났다>

<‘3000년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꽃)이 봉정사 대웅전 우측 불상 다리에 피어났다>

Q. 안동의 유교문화박물관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20016년 5월에 ‘한국의 유교책판(儒敎冊版)이 UNESCO기록문화에 등재되고 동시에 ‘한국의 편액’이 UNESCO 아·태지역 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Q. 경북 구미의 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에서 하는 일은? 국외로 반출된 문화재는 몇 점인가?
A. 세계 총 22개국에 204,693점이 국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운동을 펼치는 국가기관이다. 일본과 미국에만 143,669점(약70%)이 반출되었다.  

반출된 우리 문화재 현황

Q.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에 관해서도 알려 달라. 
A. 1572년 서애 류 성룡 선생이 풍산읍에 있던 풍악서당을 현재의 장소로 옮겨와서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다. 1863년(철종 4년)에 ‘병산(屛山)’이란 사액(賜額)을 받은 서원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헐리지 않은 조선시대 47개 서원 중 한 곳이다. UNESCO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원이다. 3년 전에 고교 동문들과 함께 답사했다. 
                 

<병산서원 입교당에 친구들과 앉아있는 필자(우측)>
<병산서원 입교당에 친구들과 앉아있는 필자(우측)>

Q. 한국국학진흥원(韓國國學振興院..The Korean Studies Institute)은?
A. 2001년 10월,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에 한국학 자료의 수집·보존과 연구 및 보급을 통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학 전문 연구기관으로 유교문화박물관과 장판각과 생활관 등의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2003년 10월 '목판 10만 점 수집 운동'을 선포하여 추진하고 있으며, 2004년 4월에는 10만 점의 국학 자료 수집을 달성하였다. 2005년 광복 60주년을 기념하여 '일본의 역사 왜곡과 대응 방안'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내외 학술대회와 학술교류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간행물로는 《한국 유학사상 대계》를 비롯하여 국학교양총서, 퇴계학파의 인물 시리즈, 유교민속연구총서 등을 펴내고 있다. 

끝으로 독자들이 가족과 함께 선비의 고향, 안동을 많이 찾길 권한다. 어린 학생들의  역사문화 공부에 유익(有益)하다.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향기에 흠뻑 취하길 바란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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