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51] 크리스마스 추억 두 조각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51] 크리스마스 추억 두 조각
  • 편집국
  • 승인 2021.12.21 0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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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학창 시절의 일이었다. 
해마다 이맘때쯤 교회에서 연극 대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연극을 이끌어 주던 사람이 있었다. 

평소에는 교회에 잘 나온 것 같지 않았지만, 연극 대회 준비를 위해 부탁을 하면 기꺼이 교회에 나와 도와주었다. 내 기억으로는 연극을 전공했거나 전문적으로 연기를 하진 않았던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각되는데 연극에 대해 아무런 지식과 경험이 없었던 우리에게는 전문 연출가 못지않은 능력자처럼 여겨졌다.

지금 생각하면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의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연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연극 경연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게 대본을 각색해야 하고 의상, 소품, 분장, 무대 장치 등 전문 스태프들이 해야 할 모든 역할을 혼자 다 소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출에다 직접 출연까지 했으니 일당백이고 그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덕분에 우리 교회는 매번 연극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 연극을 잘하는 전통 있는 교회가 되어 경연 대회 때마다 경계 대상이 되었다.군대 제대를 한 후 그 전통을 잇는 작업을 내가 맡게 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 일당백의 연출자와 연락이 끊기게 되자, 연극을 전공한다는 이유로 나에게 자연스럽게 책임을 줬기 때문이었다.

군대 제대 후 처음 맞이하는 연극 경연 대회에서 나는 연출을 맞게 되었고, 여러 궁리 끝에 ‘슈퍼스타’라는 제목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주제로 연극을 하기로 했다.

예수 그리스도 역할은 그 당시 장발이 유행하던 때라 머리를 길게 기르고 대학교에 다니던 회원에게 맡겼고, 예수의 고난과 희생을 상징하며 짊어지고 가야 할 대형 십자가는 이동하기 쉽게 조립식으로 직접 제작했다. 

의상과 소품, 무대 장치 등은 그럭저럭 준비할 수 있었는데 제일 문제 되는 게 예수 그리스도를 맡은 학생의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젊은 학생이다 보니까 긴 머리에 수염을 붙여 외형은 그리스도처럼 보였지만, 목소리가 젊어서 대사를 읊을 때마다 도저히 예수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자칫하면 웃음거리가 될 소지가 있었다.

할 수 없이 궁리 끝에 당시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던 김재화 선배에게(현재 김재화의 말글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스피치 코칭을 하고 있음)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를 녹음해 달라고 부탁했다. 

성우 못지않은 음성을 지니고 있고 거기다 약간의 에코를 넣으니 내가 원하던 예수의 분위기가 날 수 있었다. 그래서 극 중에서 예수의 대사가 나올 때는 녹음한 음성을 틀어 입을 맞추면서 어렵게 경연을 마쳤다. 

관객 호응도 제일 좋아서 당연히 우리가 우승하리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우수상에 그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님의 아들이고 거룩한 분인 예수 그리스도를 슈퍼스타라고 인격화한 것이 심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고 어이없는 평가지만, 그때는 전문가들이 아닌 교회 지도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그 후 다른 무대에서 앙코르 공연을 할 때 우승팀이 아닌 우리에게 부탁해서 내가 안 한다고 어깃장을 놓다가 결국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한동안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어렵게 준비했던 연극과 우승을 못 한 것에 대한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웃고 넘길 수 있는 크리스마스의 한 추억이 되었다.

또 다른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떠올리라고 하면 가족들과 함께 보냈던 뉴질랜드에서의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살 때 우리 아이들 넷에다 한국에 있던 조카들도 데려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늘 식구가 북적였다. 제일 식구가 많았을 때는 조카 네 명을 포함해서 모두 열 명이 함께 살았다. 

한국처럼 학교에서 급식하지 않기 때문에 아침마다 아내는 아이들과 내 것을 포함해서 9개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고 아이들이 좋아하던 양념치킨을 만들려면 치킨 조각이 10kg이나 필요했던 때였다. 식구가 모두 모이는 식탁은 늘 파티 같았지만, 크리스마스 때는 오븐에 통째로 구운 햄을 비롯한 여러 특별한 메뉴로 식탁이 더욱 풍성했다.

크리스마스 때 빼먹을 수 없는 선물은 ‘시크릿 산타’라는 게임을 통해 모두 주고받을 수 있게 했다. 각자 이름을 종이에 적고 통에 넣은 다음 뽑아서 나온 사람의 선물을 비밀리에 준비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용돈을 모으고 좀 큰 아이들은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자신이 뽑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은밀히 살펴보고 각자 성의껏 준비했다. 자신이 원하던 선물을 받기도 하고 돈에 맞춰 준비한 선물을 받기도 했지만, 선물 그 자체보다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하는 시간이 행복했었다.

풍성한 음식으로 배불리 먹고 선물도 나누어 가진 다음 가까운 비치로 나가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하거나 낮잠을 즐기는, 말 그대로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를 보냈다. 이 시간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은 것은 가족이 모두 함께했기 때문이다.

2015년에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인 에데카(EDEKA)가 “이젠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란 1분 46초 분량의 크리스마스 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다. 

매해 크리스마스 때마다 떨어져 사는 자식들은 홀로 사는 아버지를 방문하지 않고 올해는 바빠서 집에 가지 못하고 내년에는 꼭 가겠다는 카드를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장을 받고 죄책감을 느끼며 만사 제쳐놓고 모두 아버지 집으로 모여 보니 아버지는 풍성한 식탁을 차려 놓고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거짓 부고 덕분에 자녀들은 모처럼 모두 한자리에 모여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었다는 내용으로 무엇보다 가족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시간이 없는 건 바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선순위의 문제일 때가 많다. 우리는 때때로 잠시 자신을 돌아보면서 우선순위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 보고 말 그대로 즐거운 성탄절이(merry Christmas) 되어 또 한 조각의 아름다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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