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산 원장의 아름다운 뒤태] 내 삶을 바꾸어준 한 권의 책
[가재산 원장의 아름다운 뒤태] 내 삶을 바꾸어준 한 권의 책
  • 편집국
  • 승인 2022.02.25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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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만져만 보아도 반은 읽은 것이다."
책을 쓴다는 것은 산고의 고통이 따른다. 그렇지만 책을 쓰면 여러 가지 강점이 있다.
100세 시대에 책을 쓰게 되면 시간 활용에도 좋고 그만두지 않는 한 "해고 없는 평생직업"이다.
때로는 도전이 힘들고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떠나보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다.
가재산ㆍ한류경영연구원 원장ㆍ피플스그룹 대표
가재산ㆍ한류경영연구원 원장ㆍ피플스그룹 대표

2020년 연말 인천에 있는 계양산 밑에 꿈에 그리던 미니 도서관을 만들어 서재 겸 사무실을 꾸몄다. 그동안 40여 년간 모은 5,000여 권의 책들이 서가에 예쁘게 꽂혀있다. 비록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더라도 서가에 꽂혀있는 책만 쳐다봐도 난 기분이 좋아진다. 왜냐하면 "책은 만져만 보아도 반은 읽은 것이다."라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그 많은 책 중에 내가 제일 아끼는 책 한 권이 서가에 꽂혀있다. 그 책은 88년에 받은 것이니 어느새 30여 년이 지났다.

《오사카에서 부산까지》라는 이 책은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내가 지금까지 30여 권의 책을 집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책의 저자 오기노 요시가즈(萩野吉和) 씨는 NHK 일본 국영방송 편집국장을 역임했으며, 지한파로 한국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50여 년 전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방송을 일본 최초로 기획했고, 〈일본 속의 한국〉 등 한국 관련 방송을 전파하려고 계속 노력한 분이다. 내가 그를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1983년 삼성 주재원으로 오사카에 부임해서 근무할 때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녹지공원이라는 조그만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그때 그가 바로 앞집에 단신 부임해 살고 있었다. 그는 워낙 한국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를 보자마자 스무 살 가까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지내자고 제안했을 정도였다. 그 후 가끔 만나면 같이 한국 식당에 가서 한식에다 한국에서 수입한 김치를 먹고 소주도 마셨고, 여행도 같이 가며 형제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러다 나는 1987년도에 서울 본사로 귀국했다. 그 후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88서울올림픽 때 그가 서울에 왔다.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나갔더니 책 한 권을 내밀며 지난달에 정년퇴임식을 출판 기념회로 대신했다고 전했다.

나는 그 책을 받아 보고 놀라움과 함께 진한 감동을 받았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대개 정년퇴임과 동시에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재취업을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손자 녀석들과 놀아줄 생각이나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퇴임 시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할 때였다. 그가 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무언가 해보자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만약 이런 내용 정도라면 나도 책을 쓰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 책에 등장하는 서른세 명은 공교롭게도 독립선언문 발기인과도 같은 의미 있는 숫자이기도 했다. 모두 직접 만났던 적이 있는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고 나와 같이 지냈던 이야기가 20여 폐이지 수록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충동적으로 "나도 평생 10권의 책을 쓰겠다."라는 언감생심 말도 안 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원래 글 쓰는 재주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학창 시절에 그 흔한 교내 백일장에 한 번도 나가본 일이 없고, 책을 한 페이지도 써보지 않은 데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책을 쓴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도 도전에 또 한 번 확신을 갖게 한 일이 생겼다. 삼성물산은 그 당시 일본의 종합상사인 마루베니 상사와 꽤 가깝게 지냈기에 삼성물산 직원들의 일본 연수를 받아줬다. 내가 일본에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20여 명의 간부들 해외연수 인솔책임자로 가게 되어 연수단장을 맡았다. 각 분야별로 나누어 연수가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대여섯 명의 통역자가 필요했다. 나는 법무심사 쪽 연수생의 통역을 맡았다.

그 당시 법무심사 연수생은 3명이었는데 우리 팀장은 서울법대를 나왔지만, 팀장이 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 업무에 썩 밝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 처지에 일본 측 과장이나 부장 앞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를 보다 못한 심사과장이 자기들이 집필한 책을 다섯 권 들고 나타났다. 과장이 두 권을 썼고, 부장은 세 권을 썼다며 책에 직접 사인해서 우리한테 보란 듯이 선물로 내밀었다. 그제서야 우리 팀장은 조용해졌다.

회사 근무를 하면서 책을 쓴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때였다. 우리 팀들은 놀라서 기가 팍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기가 맡고 있는 분야의 일을 정리해서 이렇게 책으로 내면 전문지식도 늘고 머리도 정리돼서 실제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원이 회사 일을 하면서 책을 쓰면 일을 소홀히 하며 놀았다는 인식 때문에 상당한 눈총깨나 받을 때였다. 내가 두 번째 책을 낼 때까지 친구 이름을 빌어 대신 낼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기도 했다. 그 연수가 끝나고 나는 열 권 쓰기로 한 무모한 도전이 헛된 꿈이 아니라 꼭 해내고 말겠다며 다시 한번 굳게 다짐했다.

10권 출간이라는 꿈의 실현을 위해 우선 업무 관련 서적을 사서 보기 시작했고, 일하면서 실무 내용을 계속 컴퓨터에 기록하고 자료도 차근차근 모으기 시작했다. 마침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이 ‘팀 제도’였다. 팀제는 지금이야 작은 벤처회사조차도 도입하여 쓰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1975년 삼성물산에서 처음 시작한 조직운영 방식이다. 내가 1989년 비서실 인사팀에 가서 처음 맡은 업무도 팀제를 삼성그룹 전체에 확산시키는 일이었다. 결국 팀 제도를 그룹 전체에 정착시키다 보니 노하우도 생기고 사례도 많이 확보되어 그 자료를 바탕으로 사례 중심의 책을 쓰기로 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일하면서 책을 쓴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고 게다가 책을 내본 경험도 없기에 도움을 받고자 친구인 홍익대 교수를 찾아갔다. 그 친구는 이미 책을 여러 권 낸 작가이기도 했다. 그 친구는 글을 아주 쉽고 부드럽게 쓰는 글재주가 있었다. 마침 인사관리 교수인지라 팀제에 대해 공감대가 있는 데다 워낙 글발이 있는 친구인지라 6개월 만에 《한국형 팀제》라는 책을 출간했다. 물론 내 이름을 그 책에 표기할 수가 없어서 추천사로 대신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대한민국을 강타하며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팀제가 삼성에서 출발해 LG그룹으로 전파되었고 전국적으로 확산될 즈음 《한국형 팀제》 책자가 하나의 팀제 지침서이자 매뉴얼로 뜨기 시작했다. 한편 팀제가 열화처럼 전국적으로 퍼지자 강의 요청이 쇄도했다. 당시 나는 삼성 비서실에 근무 중이었고 회사 정보의 외부 유출이라는 제약 때문에 외부 강의는 할 수 없어서 친구가 대신 했다. 절반씩 받기로 한 인세가 3천여 만 원이나 들어와 TV도 바꾸고 처음으로 자가용을 사기도 했다.

어렵사리 시작된 책쓰기가 삼성에 근무하는 동안은 거의 중단 상태였다. 퇴직 후부터 책쓰기에 탄력이 붙었다. 결국, 10여 년 만에 환갑기념집으로 목표했던 열 번째 책 《셈본인생경영》이란 책을 냈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나 보다. 당초 평생 10권으로 목표를 정했지만 20권으로 다시 목표를 올려 책쓰기를 계속했다.

나는 퇴직 이후 홀로서기를 시작하여 20년 동안 인사조직에 대한 컨설팅과 교육을 했다. 그간 낸 책들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주었다. 책이 한번 나오면 좀 과장해서 2년 동안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인세는 많이 받지 못했지만 강의로 연결되었고, 매달 세미나를 저자 직강으로 개최하면 물밀듯이 수강자가 몰려들었다. 책쓰기가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책 중에 가장 도움이 된 것은 《한국형 팀제》였지만, 그 후 《10년 후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삼성이 강한 진짜 이유》 등 삼성 인사조직에 대한 책을 쓰다 보니 삼성 인사조직에 관한 한 전문가 대우를 받았고, 삼성 관련 강의는 나한테 집중됐다. 2020년 11월 이건희 회장이 타계했을 때 여러 곳에서 방송 인터뷰 요청이 왔고, 〈강적들〉이라는 TV조선 유명 프로에 출연하게 된 것도 내가 쓴 삼성 관련 책을 보고 PD가 연락해서 성사된 일이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산고의 고통이 따른다. 그렇지만 책을 쓰면 여러 가지 강점이 있다.

첫 번째로는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한마디로 지난 과거를 회상해보면 삶의 해상도가 높아진다.

두 번째로 책을 쓰면 전문가가 되어 일로 연결되어 할 일이 생긴다. 실제로 나는 책 덕분에 지금까지 삼성 근무 시 못지않은 삶을 이어갈 수 있었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을 것이라 여겨진다.

세 번째는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폭넓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활기찬 삶을 살 수 있다. 더구나 100세 시대에 책을 쓰게 되면 시간 활용에도 좋고 자기가 그만두지 않는 한 "해고 없는 평생직업"이다.

이번에 발간하는 이 책은 나의 70주년 고희 기념이기도 하지만 서른 번째 도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 책이 끝이 아니라 50권까지 채워볼까 한다.

추사 김정희는 인생의 3락을 "一讀二好色三飮酒"라 했는데 그 첫 번째인 책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서재를 준비했고 계속해서 책을 쓸 맘을 먹었으니, 나는 "一讀"이라는 첫 번째 즐거움을 독차지하며 살 수 있는 행운아다. 때로는 도전이 힘들고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떠나보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다. 세상일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도전해나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40여 년 전 오기노 씨가 준 한 권의 책을 다시 꺼내 보며 50권 출간을 목표로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쳐본다.

가재산
ㆍ한류경영연구원 원장
ㆍ피플스그룹 대표
ㆍ핸드폰책쓰기코칭협회 회장
ㆍ청소년 빛과 나눔장학협회 회장
ㆍ책과 글쓰기대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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