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산 원장의 아름다운 뒤태] 환갑기념 골프 싱글패 도전
[가재산 원장의 아름다운 뒤태] 환갑기념 골프 싱글패 도전
  • 편집국
  • 승인 2022.03.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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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매너나 에티켓이 나쁜 사람은 생활이나 사업에서도 믿을 수 없다."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는가 보다.
원하는 스코어를 위해서는 그립, 스탠스, 스윙, 습관까지 모두 바꿀 각오가 필요하다.
가재산ㆍ한류경영연구원 원장ㆍ피플스그룹 대표
가재산ㆍ한류경영연구원 원장ㆍ피플스그룹 대표

내가 골프를 시작한 지 40년이 되었다. 30대 초반에 일본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꽤 이른 나이에 골프를 시작한 셈이다. 일본과 한국의 골프 환경은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다. 한국에서는 골프 첫 필드에 나가기 전 최소 6개월 정도 레슨 받는 것은 기본이다. 연습도 많이 해서 폼도 예쁘게 만들고 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가야 첫 필드에 나간다. 그때를 머리 올린다고 말하며 흔히 고수 선배들이 초대 형식으로 동반 라운드를 하게 된다. 그런데 나는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채 연습장에서 고작 몇 번 채를 휘둘러보고 선배들을 따라 바로 라운딩을 나갔다.

다행히 일본에서는 처음 시작하는 새내기들도 운동 삼아 가벼운 마음으로 나가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동반해준 선배들도 120타 치는 정도라 좀 안심이 되었다. 겨우 대여섯 번 연습하고 바로 나갔으니 골프공이 산으로 가는지 강으로 가는지 알 턱이 없었고, 땀만 비 오듯 하며 끝날 때까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캐디가 적어준 스코어 카드에는 143타로 적혀있었다.

골프는 각 나라 국민성이 상당히 반영되는 운동인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은 매사에 꼼꼼하다. 캐디는 주로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이지만 그린의 잔디가 어느 방향으로 자랐는지 알려줄 정도로 친절하며 골프 매너도 확실하고 정확하다. 한국처럼 타수를 적당히 봐주는 일은 거의 없다. 멤버들 또한 홀컵에 가까이 볼이 붙어도 기부가 없다. "땡그렁" 소리 날 때까지 쳐야 하고 스코어도 친 사실대로 모두 다 기입한다. 그러다 보니 초보자일 경우 130타에서 150타를 치는 것이 예사다. "대강철저"라는 말로 대변되는 한국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나는 일본에서 4년 동안 골프를 쳐 초보자치고는 좀 친다는 말도 가끔 들었는데 100타를 깨지 못한 채 귀국했다. 그만큼 그들은 정직하게 스코어를 따진다. 일례로 일본 사람들은 영어 컴피티션(competition)을 ‘꼼페’라 해서 단체 시합을 자주 한다. 어느 날 나는 거래처에 초청받아 30여 명이 넘는 멤버들과 경기를 했다. 그때 103타를 쳐 졸지에 2등 상으로 준우승 트로피를 받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꼴지를 면치 못하는 최악의 스코어다. 아마도 100타 이상 기록한 경우도 보기 힘든 장면이다.

"골프 매너나 에티켓이 나쁜 사람은 생활이나 사업에서도 믿을 수 없다." 이건희 회장이 남긴 골프 명언이다. 이 회장은 ‘골프광’이라 불릴 만큼 생전에 골프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그는 아버지인 이병철 선대 회장의 추천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1953년 사대 부속 초등학교 5학년 때 유학길에 오르는 아들에게 "골프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배우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후 일본 와세다대 상학부 유학 시절에 선수 생활을 했을 만큼 상당한 기량을 갖췄다. 그의 스승은 일본 프로골퍼의 원조 고바리 씨였다. 국내로 돌아와서는 코리안투어 전설인 연덕춘과 한장상에게 레슨을 받을 정도였다. 첫 싱글은 1960년 후반에 기록했다고 한다.

골프에 미쳐있을 때 잠시는 싱글 핸디캡을 기록할 수 있지만, 그 수준을 늘상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연습과 실전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열정과 근면함이 있는 사람은 사회에서 주어진 임무와 역할 또한 훌륭히 소화해낼 역량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회장은 평소 골프 에티켓이 나쁜 사람은 생활이나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이므로 멀리해야 한다며 골프를 인생은 물론 회사 경영과도 자주 비교했다. 임직원들에게도 골프를 적극 권유했다. 이 회장이 골프 예찬론자인 덕분에 일본에서 돌아와 나는 과장시절에도 계속 골프를 칠 수 있었다. 당시에 젊은 사람들이 골프 치는 것은 직장은 물론 집에서도 눈치를 봐야 할 때였다.

내가 국내에서 처음 라운딩한 곳은 의정부에 있는 로얄CC였다. 멋진 골프장이었다. 골프장이 일본처럼 아름답게 꾸민 점은 상당히 유사했다. 일본에서 4년 동안 100타를 깨보지 못한 왕초보 실력으로 한국에 와서 처음 라운딩하는 것이라 100타 이내로 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라운딩이 끝나자 87타를 쳤다고 캐디는 예쁜 손 글씨로 쓴 스코어 카드를 건네주었다. 족히 20타 정도는 캐디가 쳐준 격이었다. 첫 홀은 물론 마지막 홀도 "올파"로 적었을 뿐만 아니라 오비가 나면 멀리건을 몇 차례나 주었다. 게다가 캐디 말이 걸작이다. "초등학교 때 제대로 공부를 못해 3 이상의 숫자를 모른다."며 트리플 보기 이상은 아예 적지도 않았다.

나는 골프를 즐겨 하진 않았지만, 임원이 되면서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퇴임 후에도 오비들 모임에 골프가 거의 연례행사로 들어있어서 자주 쳤다. 문제는, 30년 가까이 골프를 쳤는데 홀인원이야 하늘이 내려주는 거라니 어쩔 수 없지만 싱글패가 없는 것이 한이 되었다.

2012년 환갑이 된 나이에 싱글패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못 해보면 영원히 싱글을 해보지 못하고 골프를 마감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어림도 없는 소리"라며 시큰둥했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여길 정도로 주위에서도 그 말을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정식으로 레슨을 받아본 일이 없었다. 동네 지하에 있는 연습장으로 처음 레슨을 받으러 갔다.

골프 연습장 사장에게 싱글에 도전하러 왔다고 했더니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공을 몇 개 쳐보라고 했다. 곁에서 허허 웃으며 하는 말이 "엉성한 품에다 스윙 등 다 엉터리지만 임팩트 하나는 봐줄 만하니 불가능하지는 않다."며 몇 가지 방법을 알려줬다. 기본적으로 싱글이 되려면 지금 상태에서는 10타 이상을 줄여야만 했다. 그러려면 스윙 폼 한두 가지만 바꾸어서는 안 되고 사장이 이야기하는 세 가지를 동시에 시도해봐야 가능하니 한번 도전해보라고 권했다.

첫째가 싱글을 치려면 거리를 지금보다 15m 이상 늘려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30년 굳어진 폼을 이제 와서 바꾸기는 어려울 테니 기술을 배워 정확성을 높이고, 세 번째는 연습량을 두서너 배 늘려보라고 조언해주었다. 나는 그 코치가 시키는 대로 우선 체육관에 가서 근육운동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 레슨을 바로 등록하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연습장에 나갔다.

6개월쯤 지나 대학후배 중에 골프장에만 나가면 반 이상을 싱글 치는 후배와 같이 가게 되었다. 첫 홀부터 티샷이 장타인 그 친구와 거의 비슷하게 거리가 나갔고, 신기하게도 볼도 반듯하게 나갔다. 퍼팅도 그날따라 마음먹은 대로 홀에 쏙쏙 들어갔다. 특히 취약했던 어프로치 연습 효과도 기막히게 잘 먹혔다. 17홀까지 생각지도 못한 버디를 3개나 기록했다. 피나는 연습 효과였다. 마지막 홀에 다다랐다. 싱글 조건인 79타 안으로 치려면 이 홀에서 더블보기 이상으로 빗나가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순간이었다.

욕심이 은근히 났다.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드라이버로 친 볼이 산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뿔싸, 하늘이 도왔는지 그 공은 나무를 맞고 데굴데굴 굴러 페어웨이 근처까지 내려와 오비를 간신히 면했다. 남은 거리가 170m 정도였다. 내 골프채 중 유일한 비밀병기인 롱 아이언 3번을 빼들었다. "모가 아니면 도다." 싶어서 힘껏 휘둘렀다. 아이언 3번 치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날은 신들린 듯 귀신같이 그린으로 올라갔다. 드디어 마지막 홀을 보기로 막아서 78타를 쳤다.

환갑 나이에 무모하게 도전한 결과였다. 물론 후배가 나의 애처로운 도전을 돕기 위해 소위 접대 골프를 해준지도 모를 일이다. 그 후 내가 초청한 라운딩에서 큼지막하게 만든 싱글패를 동반자들이 내게 전해주었다. 그 후에도 우연히 그해에 두 번 더 싱글을 기록했다. 목표로 했던 싱글패를 받은 이후부터는 더 이상 타수에 연연하지 않고 즐기는 골프로 바꾸기로 했다.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는가 보다. 나는 연말이면 습관을 바꾸기 위해 다음 해에 꼭 해야 할 일과 그만두어야 할 세 가지를 적는 ‘습관과의 고스톱판’을 짜곤 한다. 2012년에 ‘싱글패 받기’로 적어놓고 수시로 보며 도전했기에 싱글패를 받는 쾌거를 이룬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 말은 내 골프 싱글패 도전에서도 유효했다.

원하는 스코어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그립, 스탠스, 스윙 그리고 습관까지 모두 바꿔야 할 각오가 필요하다. 지금도 무기력해지거나 망설여지는 일이 있을 때 책상 위에 놓여있는 그 패를 보며 "하면 된다."는 마음을 다져본다. 싱글패 도전 경험은 내 삶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가재산
ㆍ한류경영연구원 원장
ㆍ피플스그룹 대표
ㆍ핸드폰책쓰기코칭협회 회장
ㆍ청소년 빛과 나눔장학협회 회장
ㆍ책과 글쓰기대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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