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65]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65]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편집국
  • 승인 2022.03.29 08: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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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지은 시 ‘소군원’(昭君怨)의 한 구절이다. 

그는 중국 4대 미인 중의 하나로 알려지고 있는 전한(前漢) 시대 원제(元帝)의 궁녀였던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와의 화친 정책에 따라 흉노왕에게 시집가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느꼈을 슬픔과 외로운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자연의대완(自然衣帶緩) - 나도 모르게 옷 띠가 느슨해졌나니
비시위요신(非是爲腰身) -몸이 약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이 시에서 나오는 ‘춘래불사춘’이란 말을 1980년 신군부 등장 시절 JP(김종필)가 계절은 봄이 되었지만, 상황은 봄같이 좋지 않다는 비유로 인용하면서 유명해지게 되었고 좋은 시절이 왔지만, 여건이 좋지 못할 때를 표현하는 말로 많이 회자하고 있다.

나에게도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첫 번째 기억으로는 1970년대 대학 시절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우아하게 찻집에 앉아 좋아하는 팝송을 들으며 여학생들과 미팅도 하고 친구들과 엠티도 가는 등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기대했던 나의 작은 소망은 최루탄 연기로 덮여버렸다. 

지금 젊은이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그때는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장발 단속에 걸렸고, 여자들의 스커트 길이가 조금만 짧아도 풍기문란으로 잡혀서 구금을 당할 정도로 통제와 억압이 심했다. 

한 편으로는 통기타와 청바지가 젊은이들의 상징이었고 대학 가요제가 젊은이들의 가요계 진출 창구 역할을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며 대학마다 5월경에 대학 축제가 열려 친구들끼리 이 대학 저 대학 어울려 다니면서 젊음을 즐기기도 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대학생들이 폭압적인 군사독재와 맞서 저항의 선봉에 서서 잦은 데모와 시위를 주도하기도 하면서 온탕과 냉탕을 오가던 시절이었다.

대학교 신입생 때 과 수석 학생들의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는 그 모임에서 각 과 수석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일일이 일어나 자기소개를 한 후 모임 회장의 축하 인사와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격려 말씀을 듣고 인사를 나눈 그다음 날이었다. 

대학 진학 공부에 매달리느라 사회나 정치 문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교내에서 학생들이 데모해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진 않았었는데, 그날은 무엇에 씌웠는지 친구들과 어울려 어깨동무를 하고 독재 타도 구호를 외치며 교내를 한 바뀌 돈 후 한곳에 모였다. 

데모를 주동한 사람이 앞에 나와 우리가 침묵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외치고 있었다. 머리를 삭발하여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는데 자세히 보니 어제 참석한 과 수석자들 모임의 회장이었고, 그 바로 앞 자리에 앉아 역시 삭발한 모습으로 결의문을  작성하여 넘겨주는 사람은 그 모임 총무였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졌다. 나는 대학 시절의 낭만을 좇고 있었는데 그들은 삭발까지 해가며 현 시국과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고 있었다. 그들과 같은 모임의 일원으로서 나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졸업 때까지 나의 대학 시절에 매년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았다. 졸업 후에도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 있게 되면서 봄은 왔지만, 나에겐 여전히 봄 같지 않았다.

두 번째 경우는 뉴질랜드에서의 봄이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분명치 않은 뉴질랜드에서는 을씨년스러운 겨울이 지나고 낮이 길어져서 봄이 왔나 싶으면 어느새 여름이 되곤 했다. 가을도 마찬가지였다. 여름 끝자락에 찬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옷을 바꿔 입어서 가을인가 싶으면 두꺼운 겨울옷을 입어야 할 겨울이 벌써 나를 지나쳐 가고 있었다.

봄이 온 것 같아 두꺼운 옷을 벗고 봄가을에 입을 만한 얇은 긴 팔 셔츠라도 입을라치면 키위들은(뉴질랜드인들의 별명) 벌써 반 팔 반바지 옷차림으로 여름을 앞당긴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는 물리적으로 봄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뉴질랜드에서의 삶도 돌아보면 봄같이 좋은 때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 넷을 공부시키고 나 자신도 공부하느라 늘 허덕허덕거리며 바쁘게 지냈던 기억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도 네 아들이 모두 구김없이 잘 커서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도 낳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고, 지난 시절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봄 시절이 있었는데 내가 깨닫지 못하고 지냈을 수도 있다.

이제 또 2022년 봄이 왔다.
코로나로 인해 벌써 여러 해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게 보낸 사람들이 많다. 올해도 봄이 왔지만, 여전히 봄 같지 않은 봄을 맞이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겨울이 길어지고 끝나지 않을 것같이 보여도 반드시 봄이 오게 되어 있는 대자연의 법칙과 섭리에서 우리는 위안과 견딜 힘을 얻는다.

시인 이해인은 ‘봄의 연가’라는 시에서 “겨울에도 봄, 여름에도 봄, 가을에도 봄. 어디에나 봄이 있네, (중략) 우리 서로 사랑하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언제라도 봄”이라고 했다.

올해도 봄 같지 않은 봄을 보내게 되더라도 아쉬워하지 말자. 봄은 또 올 것이고, 마음만 바꿔 먹으면 일년 언제라도 우리 마음엔 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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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윤 2022-04-03 08:48:48
봄은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으니까요. 그 위안으로 엄동설안의 고통을 이겨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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