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천하길지(天下吉地) 용산대길(龍山大吉)
[전대길 CEO칼럼] 천하길지(天下吉地) 용산대길(龍山大吉)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5.2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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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용(龍)이란 음(陰)과 양(陽)이 호흡하는 것이다. 즉 자연의 기운이 합하여 그 몸을 이루고 그 기운이 흩어져서 찬란한 문채(文彩)를 이루어 구름 기운을 타고 논다”라고 송(宋)나라 장자(莊子)가 말했다. ‘용(龍)’이란 ‘복되고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의 상서(祥瑞)로운 영물(靈物)이다.

역사상 ‘용산(龍山)’이란 지명은 백제 기루왕 21년(AD 97)에 “한강에 두 마리 용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그 효시(嚆矢)다. 하늘을 나는 비룡(飛龍)의 산세(山勢)라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용산고교 교정에 세워진 용상(龍像)>

우리말 ‘미르’는 ‘용(龍)’, ‘뫼’는 ‘산(山)’이다. 따라서 ‘용산(龍山)’은 순수한 우리말로 ‘미르 뫼’이다. 

단기4355년 5월10일 새벽0시, 조선 태조 때부터 이어 온 우리나라 정치 중심이 북악산 아래 청와대에서 용산 삼각지로 옮겨왔다. 봉황(鳳凰)이 용산 벌에 나래를 활짝 펴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다. 뒤늦게나마 천하길지(天下吉地)에 터를 알아 본 천도(遷都)이지 싶다. 

지난 3월9일, 대한민국 국민은 윤 석열 제 20대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청와대를 공원으로 만들어서 국민에게 되돌려주고 광화문 시대를 활짝 열겠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서 용산 국방부 자리에 대통령실을 마련, ‘새로운 용산시대(龍山時代)’를 활짝 열었다.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국방부와 국군합동참모본부와 나란히 대통령 집무실을 둔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 국토방위(國土防衛),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한 상책(上策)으로 보인다.

  <관악산 연주대에서 바라본 북한산, 북악산, 용산의 대통령실(중앙)>
  <백두대간-북한산-북악산-청와대-용산 대통령실-현충원>이 관악산과 일직선상에 있다> 
    <북한산과 관악산을 연결하는 일직선상 중간에 용산 대통령실이 있다>   

서울 용산(龍山)은 남산에서 한강으로 날아가는 비룡(飛龍)의 모습을 닮은 야트막한 야산(90M)의 이름이다. 지금의 용산구와 마포구의 경계선 근방이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후 4355년 동안 우리 민족은 임진외란, 병자호란, 6.25 전쟁 등으로 인해서 1,000여 번의 국난(國難)을 극복했다. 역사상 용산(龍山)은 청나라, 일본군, 미군 등이 진(陳)을 치거나 병영(兵營)을 차렸던 ‘질곡(桎梏)의 터‘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침략군들이 용산이 명당(明堂)이고 길지(吉地)이기 때문에 용산 땅에 병영(兵營)을 설치했을 것이란 역발상에 공감한다. 

최근 용산이 ’Hot Place'로 떠올랐다. 용산 전쟁기념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까운 대통령실 주변에 '미국의 Central Park'와 같은 ‘용산공원’이 생겨난단다. 

한강변 너른 터를 재개발, 마천루(摩天樓)같은 고층아파트가 용산 땅에 즐비하게 들어 설 것이다. 최근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들이 ‘천시(天時), 지리(地理), 인화(人和)’를 바탕으로 하늘의 뜻에 따른 천지개벽(天地開闢)처럼 느껴진다. 

부국강병(富國强兵)과 경제발전(經濟發展)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굳건히 다지는 것은 대한만국 국민의 바람이다.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 찢겨진 이념갈등을 국민화합과 국민통합으로 승화(昇華)시켜내야 한다. 

평화와 통일로 향해 전진하는 대한국인(大韓國人)의 선봉장(先鋒將)으로 나서야 한다. 

미합중국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이 5월20일~23일(2박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하기 전에 앞서 대한민국을 방문한 것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 등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도산 안 창호 선생의 가르침처럼 ‘국제사회에서 경제강국’이기 때문이다. 힘이 없으면 거들떠보지 않는다. 힘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용산(龍山) 땅에는 슬픈 역사가 담긴 지명이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이태원 황학골 운종사(雲鐘寺) 비구니 여승들과 아녀자들을 겁탈(劫奪), 윤간(輪姦)하는 천벌을 받을 만행(蠻行)을 저질렀다. 

이렇게 생겨난 아이들 때문에 ‘다를 이(異)+아이밸 태(胎)+집 원(院)’자의 ‘이태원(異胎院)’이란 지명이 생겨났다. 그 후 주렁주렁 달린 배 밭이 많다고 해서 ‘이태원(梨泰院)’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조선시대 말죽거리(지금의 양재동)를 지나 조선왕실과 인접한 파발마(擺撥馬) 관리소가 용산고 정문 앞 미군부대 터란 주장도 있다. 그리고 우리 용산고 인근의 후암동(厚岩洞)이란 지명은 두텁바위에서 왔다. 

용산 땅의 침략군 진영(陣營)의 남쪽이라서 남영동(南營洞)이란 지명이 생겨났다.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유래한 남해 ‘통영(統營)’이란 지명처럼 말이다.  

끝으로 외침으로 인한 외국 군대가 주둔하던 용산의 시대가 종막을 내렸다. 앞으로 대한민국 국운(國運)은 크게 번성할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용산 땅을 만드는 위대한 일에 우리 함께 주춧돌이 되자. 마중물이 되자. 

나아가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을 바탕으로 자라나는 후손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민족의 횃불이 되자. 한 줌의 소금이 되자. 천하길지(天下吉地) 용산(龍山)의 지기(地氣)를 만방에 떨치자. 용산대길(龍山大吉) 시대가 활짝 열렸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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