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심상(心相)과 운명(運命)
[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심상(心相)과 운명(運命)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6.16 08: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미래학자 다니엘 벨은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이 말만 변하지 않고 모든 것은 다 변한다”라고 했다. 변화와 혁신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대단히 큰 울림을 주는 말이다.

새우가 성장하려면 껍질을 탈피(脫皮)해야 하듯 사람들도 혁신(革新)해야 한다. 혁신은 ‘가죽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뜻이지만 사람의 가죽을 벗길 수는 없다. 

그러면 무엇을 혁신하고 바꾸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 의식, 사고, 마음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변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옛날 삼베옷을 즐겨 입는 “마의선사(麻衣禪師)“가 살았는데 그는 천문, 지리, 주역, 기문, 둔갑, 명리 등에 달통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누구든 그의 앞에서 과거를 속일 수 없었고, 미래 예측 또한 족집게처럼 알아맞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주변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 존경했다고 한다. 그런 그도 자녀가 없어 애태우다가 쉰이 넘어서 늦둥이 아들 둘을 두게 되었는데 늦게 본 자식인지라 금지옥엽으로 키우며 세월 가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이들을 보니 열 살이 훌쩍 넘어 소년티가 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아이들의 미래(사주팔자)를 감정해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큰아들은 장래 재상상(宰相相)이고, 둘째는 거지 상으로 예측되는 것이었다. 큰아들이 재상이 된다고 하니 가문의 영광이라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둘째가 거지가 된다는 데는 마음이 몹시 언짢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사주팔자라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자신을 위로하며 아이들을 불러 사주팔자(四柱八子) 감정 결과를 알려주고 말았다.

“큰아들아, 너는 이다음에 나라의 재상이 될 사주팔자이니 열심히 공부 하거라. 그리고 둘째야, 너는 거지 팔자를 타고났으니 놀고먹을 팔자로구나. 이 아비가 틀린 적이 없으니 너희도 사주팔자대로 사는 수밖에 더 있겠느냐.”

거지 팔자라는 소리에 충격을 받은 둘째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밤을 지새우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거지라면 집에 있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날이 밝자마자 아버지인 ’마의선사‘에게 말했다.

“아버지! 밤새 생각해 내린 결론입니다. 집안 거지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나가서 거지가 되겠습니다. 노잣돈을 좀 주십시오. 돈 떨어지면 거지처럼 살렵니다.”하고 당돌하게 간청하는 것이었다.

‘마의선사’는 당황하여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니라. 집 떠난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간곡히 달랬다.” “아버지의 말이 틀렸다면 수많은 사람에게 거짓 감정을 해 주신 것이니 아버지의 명성이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요지부동인 둘째 아들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노자(路資)는 넉넉히 줄테니 세상 구경 많이 하고 돈 떨어지면 돌아오너라.”하고 당부하였다. 노잣돈을 넉넉히 챙겨 받은 둘째는 그렇게 세상 속으로 나가게 되었다.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떠돌던 어느 날 돈이 다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돈이 떨어진 것을 안 둘째는 그때부터 거지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배가 고파도 차마 밥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세 끼까지는 참아 보았으나 네 끼를 굶고 나니 눈이 뒤집힐 것 같았다. 그래서 얻어먹을 곳을 찾아다니다가 큰 부잣집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그 집에 뛰어들어“밥 좀 주세요. 이틀을 굶었어요”하고 애처로운 말로 구걸을 하니, 마음씨 좋아 보이는 부자집 주인이 밥 한 상을 차려 주는 것이었다. 밥상을 받자마자 게 눈 감추듯 밥 한 그릇과 주어진 반찬을 모두 비웠다. 밥맛이 이렇게 좋을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밥상을 물리고 나니 갑자기 다음 끼니 걱정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다음 끼니는 어디서 해결해야 할까 골똘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에 돌아보았더니, 들에 나가 일하던 머슴들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문득 잠자리, 먹거리 걱정이 없는 저들이 부러웠다. 나도 이 집에 머슴이 될 수 있다면 걱정할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부자집 주인에게 간청해 보기로 했다.

주인에게 무릎 꿇고 큰절을 하면서 “주인어른, 밥은 맛있게 먹었습니다만, 청이 하나 있습니다. 저를 이 집 머슴으로 써주십시오. 잠자리와 세끼 먹을 것만 주신다면 새경은 필요 없습니다.”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주인이 한참 생각하더니 (손해 볼일은 없으니)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그는 쉬지 않고 정말 열심히 일하였다. 다른 머슴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서 머슴들의 질시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고 또 일했다. 이태가 지났을 때 그의 성실성과 열성에 감동한 주인이 곳간 지기로 발탁(拔擢)하게 되었다. 그는 곳간을 깔끔히 청소하고 정리 정돈하고, 장부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관리하여 주인의 기대 이상으로 성실하게 일하여 더 큰 신뢰를 얻었다. 

마침 이 부자집은 아들이 없고 딸 하나만 있었다. 딸의 혼기가 다가온 주인은 양자를 들이기가 잘되지 않자 데릴사위를 구하고 있었다. 마침 잘 생기고 똑똑한 머슴을 눈여겨 지켜보던 주인이 그를 불러 넌지시 그의 생각을 묻는 것이었다. 예쁘고 고운 주인 딸을 흠모하던 그인지라 조심스레 대응했다. 마음속으로 좋았지만―거지에서 머슴으로, 머슴에서 부잣집 사위가 되는데― 그러나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아버지 ‘마의선사’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인어른, 제게 그런 영광을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게 보름만 시간을 주십시오.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오도록 하겠습니다.”하고 절하고 그립던 옛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집을 떠난 지 두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집 나간 이후 소식이 없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애태우던 자식이 훤칠한 키에 의젓하고 늠름한 청년이 되어 돌아오자 마의 선사는 기쁘기 한량이 없었다. 

아버지 ‘마의선사’는 소를 잡고 동네잔치를 열어 돌아온 아들의 귀환을 축하해 주었다. 그러면서 몰라보게 달라진 둘째 아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 이런 일이, 둘째의 상(相)이 재상상으로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 보았던 사주팔자와 관상 등을 새삼 조합해 본 결과 틀림없는 재상의 상으로 변해 있었다. ‘아니, 우리 집에 재상이 둘이나 나오다니…….’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잘못하면 화를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해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고개 넘어 초당에서 공부하는 큰아들을 불렀다.

다음날 아버지 ‘마의선사’ 앞에 나타난 큰아들은 아침나절인데도 불구하고 붉은 얼굴로 잔뜩 취한 채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이놈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아침부터 웬 술이냐.”하고 나무랐더니, 큰아들이 하는 말이 “아버지! 재상이 되면 술도 마실 줄 알아야 한다고 하기에 술을 배우고 있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큰아들의 관상은 영락없는 거지 상으로 변해 있었다. ‘아뿔싸, 사주팔자도 관상도 변하는구나. 이렇게 서로 다르게 변할 수가 있다니?’

‘마의선사’는 장탄식을 하며 내 공부가 헛되었다고 망연자실(茫然自失)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결국 둘째 아들은 재상까지 되었고, 그의 형은 그 아우 밑에 일하는 아전에 만족해야 했다고 한다.

사주팔자(四柱八字)로 미래를 감정하는 것보다 관상(觀相)으로 감정하는 것이 훨씬 잘 맞으며, 관상보다 심상(心相)이 미래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의선사’는 그가 지은 『마의상법(麻衣相法)』의 맨 뒷줄에 ‘사주불여상(四柱不如相)’이요, 상불여심상(相不如心相)‘이라는 열 글자를 마지막으로 써놓고 다른 내용을 다 지우더라도 이 열 글자는 절대 지우면 안 된다고 유언을 남기며 저술을 마쳤다고 한다. 오늘날 동양철학관에서 보는 관상법이 ’마의상법‘이다.

사주팔자는 관상을 보는 것만 못하고 관상은 심상(心相, 마음가짐)만 못하다는 이야기로 그 누구도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고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그렇다,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마음가짐 즉, 생각을 바꾸고 그대로 행동하면 다른 모든 것을 다 변화시킬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마음(心相)을 가꾸면 그것이 곧 운명이 되는 것이다.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世上萬事 一切唯心造)는 ’원효‘스님의 말씀이 새삼 다가온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