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82] 노년의 시간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82] 노년의 시간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7.26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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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몇 년 전에 얼떨결에 쓰게 된 감투가 하나 있다. 지인이 회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안전지도자협회의 고문을 맡은 것이다. 협회에서 학생들에게 학교 폭력의 위험성과 나날이 커지는 사이버 폭력 예방에 관한 교육을 하게 되는 강사들 대상 강의를 부탁하여 2시간 강의를 해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 

그 후 학교를 방문해서 하는 교육도 직접 해달라고 부탁하더니만, 차제에 협회 고문 역할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협회 자체가 비영리 단체이고 협회 임원 모두 무보수로 봉사하는 사람들이라 당연히 고문이란 자리도 무보수 명예직이다. 

아마도 안전지도자협회라는 단체 특성상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연륜도 있는 사람이 고문 역할을 맡는다면 좀 더 구색을 갖출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나 믿을 만하고 쓸 만한(?) 인력 확보 차원으로 부탁했는지도 모른다.

보수를 받게 되면 부담과 책임 그리고 의무감이 따르지만, 무보수로 봉사하는 자리라 큰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고 보람 있는 일을 하는 협회 취지가 마음에 들어 받아들였다.

협회는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대면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달부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안전 교육을 하기로 했고 나도 몇 개의 교육을 부탁받아 맡게 됐다. 

어르신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내게 낯설지는 않다. 여러 해 전에(코로나 이전) 노인회 요청으로 아산을 비롯한 주변 여러 도시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교육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인원을 강당에 모아놓고 했던 이전의 강의와는 달리 이번 안전 교육은 각 노인정이나 마을 회관을 방문하여 소규모로 진행되는 것이라 좀 더 자세히 어르신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60이 넘어 노인이라고 노인정에 갔다가는 심부름이나 하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일단 노인정에 나오는 어르신들의 연령대가 높다. 그리고 노인정마다 공통으로 갖추고 있는 시설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텔레비전, 냉장고, 냉난방기 그리고 주방 시설들이다. 

그중에서도 텔레비전은 어르신들이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다. 여름에 에어컨이 더위를 식혀주고 겨울에는 난방 장치가 쉴 새 없이 작동하여 몸을 녹여줄 수 있어야 어르신들이 홀로 집에 있는 거보다 낫다고 생각하여 노인정을 찾으신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주방 시설이다. 대부분의 노인정은 주방 시설을 갖추고 있어 어르신들이 점심, 저녁을 함께 해결하신다. 어떤 곳에서는 점심은 복지관과 같은 시설에서 무료 또는 천 원을 내고 해결하고 저녁만 노인정에서 함께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리고 요즘 효도품이라고도 불리는 안마의자가 설치된 노인정들이 늘고 있는 것도 사회 추세를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어르신들의 남녀 구별이 유별스럽다는 것이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 연세라면 남녀 구별 없이 서로 어울릴 만도 한데 오히려 노인정은 할아버지, 할머니 방이 따로 있을 정도로 훨씬 보수적이다.

대부분의 노인정에서 제일 선호하는 오락은 단연 화투이다. 때론 돈내기도 하지만, 오가는 돈의 규모가 푼돈 수준이라 누가 따고 잃든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물론 노인정에라도 나와 함께 어울리는 것이 집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는 것보다 정신 건강에 좋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노인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텔레비전을 보거나 화투를 치면서 보내는 어르신들의 일과를 보며 자연스럽게 비슷한 연배인 뉴질랜드의 셀리 할머니 생각이 났다. 

셀리 할머니는 우리와 가족처럼 지내던 사이로 남편과 사별하고 딸자식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이었다. 연로한 나이 탓도 있지만, 건강이 썩 좋지 않아 오래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 가족이 일요일이면 교회에 모셔 가기도 하고 자주 집을 방문했었다. 우리가 집을 방문할 때마다 셀리 할머니는 항상 뜨개질하고 있었다. 멀리 가난한 나라의 알지도 못하는 갓난 아기들에게 씌어줄 앙증맞은 모자를 만들어 기증하는 일을 여러 해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은 버스를 타고 인근 사회봉사 단체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고 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주변에 있는 홀로 사는 노인들을 방문하여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하고, 집 뒷마당에는 조그만 텃밭을 만들어 손수 채소를 재배하고 사람들이 드나드는 집 앞에는 예쁜 꽃들을 철마다 심어 방문객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등 매일 바쁜 일과를 보냈다.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교수는 우스갯소리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세 가지 ‘껄껄껄’(걸걸걸)이 있다고 했다. 좀 더 즐길 껄(걸), 좀 더 베풀 껄(걸), 좀 더 사랑할 껄(걸)이라고 한다. 

노인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텔레비전을 보거나 화투치면서 보내는 하루는 즐거울 수는 있어도 베풀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반면에 셀리 할머니는 노년의 시간을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베풀고 사랑하며 즐기고 살았다.

요즘 한국에서 존엄사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고 과반수가 넘는 국민이 존엄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존엄사란 의사의 조력을 받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감하는 것을 말하지만, 단지 죽음의 순간에만 국한하지 말고 노년에 어떤 삶을 살면서 자신의 생을 마무리할지도 고민하는 존엄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죽음을 앞두고 ‘껄껄껄’하며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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