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83] 개보다 못 한 사람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83] 개보다 못 한 사람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8.02 0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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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우리 집에서도 애완견을 키우고 있다. 
아들네 집에서 키우던 어미가 새끼를 낳아서 새끼 때부터 장인어른이 데려다 키웠다. 내가 처음 본 게 10년도 더 됐으니까 개와 사람 나이 비교표에 의하면 사람 나이로 아마 60세는 족히 넘었을 거다. 

하지만 내가 처음 볼 때나 지금이나 체형에 변화가 없는 말티즈 종(種)이라 나이 많은 노견(老犬) 대우를 받지 못하고 늘 귀염둥이 강아지 취급받는다.

주로 먹이를 장인어른이 주다 보니 개의 순번 1위 주인은 당연히 장인어른이다. 장인어른이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는 건 기본이고, 잠도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나니까 진정한 반려동물이라 할 수 있다. 반려(伴侶)란 말에는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아침 7시 이전에 거실로 나와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장인어른 아침 식사하실 때 같이 밥을 먹는다. 예전에 장인어른이 근처 산을 오르시거나 걸으실 때는 꼭 같이 따라갔었지만, 요즘은 장인어른이 바깥출입을 하지 않으시니까 종일 장인어른 곁에서 붙어 지낸다. 

저녁 9시에 연속극이 끝나 장인어른이 주무시러 들어가실 때가 되면 자러 가자고 앞장을 선다. 행여 조금이라도 장인어른이 꾸물거리고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으시면 빤히 쳐다보면서 무언의 재촉을 한다.

장인어른과 한방에서 잘 때는 충직한 보디가드 역할을 한다. 누가 방문을 열기라도 하면 으르렁거리며 경계심을 보인다. 장인어른 인생 황혼기에 이만한 짝이 되는 동무도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몇십 년을 동고동락하신 장모님보다도 현재로서는 더 가까운 사이이다. 그렇더라도 장인어른에겐 단지 충실한 애완동물일 뿐이지 자식처럼 대접을 받진 못한다.

요즘은 애완동물의 위치가 반려동물을 넘어 사람과 동등한 취급을 받다 보니 기꺼이 애완동물의 엄마 아빠를 자처하면서 같이 사는 반려동물을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 SNS(소셜미디어)에 지인이 올린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떤 기자가 언론에 “13년 키운 아이가 실종 후 건강원 보약으로...”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제목만 보고 13년 키운 아이가 건강원 보약 제물로 들어간 줄 알고 깜짝 놀랐다고 썼다. 

그러자 “아이: 1. 나이가 어린 사람 2. 남에게 자기 자식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 3.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라는 정의와 함께 ‘아이’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란 댓글이 올라왔다. 

애완동물에게 ‘아이’란 표현을 쓴 게 부적절하다는 간접적인 의사 표명이다. 또 다른 이는 기자가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꼼수라고 댓글을 달았다. 

나도 애완견을 넘어 반려견이란 표현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견(犬)은 견이지 인(人)이 될 수 없다고 댓글을 남겼다.

하지만 반려견(伴侶犬)을 반려자(伴侶者)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침에 근처 신정호를 걷다 보면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을 보게 된다. 

대부분 목줄을 하고 함께 걷지만, 아기를 태우는 유모차에 애완견을 태우고 다니거나 애완견을 안고 걷는다든지 심지어는 아기를 편하게 안도록 만든 천으로 된 보자기 모양의 띠에 강아지를 넣어 안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애완견의 건강을 위해 산책시키러 나온 게 아니라 애완견을 마치 아기 취급하여 애완견에게 바깥 구경시켜 주려고 데리고 나왔나 하는 의심을 품게 한다. 

그런데 나의 의심이 사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애완동물과 함께 여행하는 ‘팻트래블’(Pet travel)이 2년 새 월평균 2배나 늘었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이들이 국내 여행은 물론이고 일본, 동남아, 심지어는 미주와 유럽까지 반려동물을 데리고 여행한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 티웨이항공과 제주항공, 에어부산의 비행기를 탄 반려동물은 총 3만 3,000마리로 월평균 5,500마리에 달하고, 저비용 항공사들은 이 고객을 잡기 위해 반려동물 항공 요금을 할인해 주는 상품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22년 7월 30일 자)

코로나를 비롯한 여러 여건으로 사람도 가기 힘든 해외여행을 반려동물이 가고 있다니 이쯤 되면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누군가를 일컬으면서 “개보다 못 한 사람”(인간이라고 쓰면 더 강한 표현이 된다)이라고 하면 꽤 심한 욕설이 된다. 하지만 요즘은 개나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의 위치가 사람과 대등해지거나 사람보다 낫게 취급받으면서 욕설이 아니라 실제로 개보다 못 한 사람의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뉴질랜드에 살 때 우스갯소리로 뉴질랜드에서는 어린이와 노인들이 1순위이고, 여자들이 2순위, 반려동물들이 3순위이고 남자들이 4순위라는 말을 듣고 웃고 넘겼는데 이젠 한국도 반려동물이 반려자의 위치를 위협하고 있다.

서열상으로나 역할에서도 개보다 못 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애써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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