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84] 가재는 게 편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84] 가재는 게 편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8.09 0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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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처남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로부터 해고당한 셈이다. ‘해고당했다’가 아니라 ‘해고당한 셈이다’라고 표현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처남이 다니던 회사는 아버지가 명목상 회사 대표로 되어 있고, 실질적인 경영은 아들이 총무이사를 맡아 하는 작은 규모의 대표적인 가족 회사이다. 처남은 근무한 지 2년째 되어 가는데 5톤 트럭을 운전할 수 있어 수당이 붙어서 다른 직원보다 월급을 조금 더 받고 있고 나이도 60을 넘었으니 앞에서 손꼽을 만큼 직원 중에 나이가 많은 편이다. 

처남이 들려준 회사의 운영 상태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회사 대표가 처남을 수시로 불러내어 함께 밥도 먹고 주변에 맛집이 있으면 처남을 데리고 가서 밥을 사주는 등 가깝게 지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처남이 가까이 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표가 처남을 좋게 봐서 그런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가끔 소문난 맛집에서 식사한 후 집에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께 갖다 드리라고 포장해서 선물로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회사에서 실질적인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아들과는 데면데면하더라도 대표인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 생활에서 불이익이나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처남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아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남이 급하게 목돈이 필요해서 총무이사에게 퇴직금을 미리 정산해줄 수 있는지 문의하자, 총무이사는 제일 빨리 처리하는 방법이 서류상 퇴직 처리를 하는 것이라고 제안하면서 서류상으로 퇴직 처리를 하더라도 그 다음 달 중순쯤에 다시 계약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사직서를 제출하여 서류상 퇴직 처리가 된 후에도 계속 일하다 3일째 되던 날 일하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복숭아뼈를 다친 것이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뼈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필요했고 재활을 위한 물리 치료 기간도 필요하여 산재 처리를 하고 몇 주 쉬는 시간을 가졌다. 

담당 의사로부터 일을 재개해도 좋다는 소견서를 첨부하여 복직을 요청했지만, 총무이사는 차일피일 미루고 변명을 늘어놓더니 결국 회사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했다. 총무이사가 월급도 많고 나이도 많은 처남을 내치기 위한 합법적인 꼼수를 부렸다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총무이사와는 말이 통하지 않자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 대표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그토록 잘 대해 주었던 태도를 냉정하게 바꾸면서 오히려 처남에게 핀잔을 주고 아들인 총무이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처남에게 끝까지 같이 가자고 하면서 그토록 살갑게 지냈기 때문에 혹시라도 처남 편에 서서 총무이사에게 재고하라고 말해 줄 것을 기대한 것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나도 뉴질랜드에 살 때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뉴질랜드 수도는 아니지만,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에서 차로 1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해밀톤이란 곳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오클랜드에서 유학생 대상으로 직업 교육을 전문적으로 시켜 취업 후 영주권을 받도록 해주는 사립 교육 기관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장 큰 사립 대학에서 법률 고문 및 운영관리 책임자로 일해 달라는 스카우트가 왔다. 

급여도 괜찮고 학장 및 강사진들은 모두 키위들이었지만, 대표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덜 받고 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수락했었다. 하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교육 커리큘럼 및 정부에 제출하는 학사 운영과 교육 평가 보고는 모두 학장 책임하에 이루어지지만, 돈과 연관된 유학생 마케팅 분야는 한국인 대표가 직접 관여하고 결정하는 데 여기에서 나와 부딪치는 부분이 많이 발생하게 되었다. 

운영관리 책임자로서 학교 운영을 살펴보니 유학생을 유치하는 거부터 시작하여 학교 출결 상황을 철저하게 관리할 것을 요구하는 뉴질랜드 정부의 규정을 변칙적으로 적용하여 무마하는 등등 여러 편법 및 부정 사항들을 접하게 되면서 대표와 마찰을 빚게 된 것이다. 

학교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대표였지만, 학교는 재단 소유로 되어 있고 호주에 사는 친형네 부부가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었다. 형 되는 사람이 1년에 한두 차례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학교 전반적인 운영 상태를 파악하는 모임을 했을 때 대표로 있는 동생보다는 좀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공정한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학장과 함께 현 대표에게 여러 차례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사항을 건의해도 통하지 않게 되자 학교에 관해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형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로 합의를 보았다. 

형이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총대를 메게 되었다. 학교 운영의 문제점과 장차 닥칠 리스크를 설명하면서 그 중심에 불법 및 편법을 일삼는 동생의 운영 방식이 있음을 밝히고, 해결책으로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장문의 이메일을 친형에게 보냈다. 

순수하게 학교를 위한 충정의 마음으로 현재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학교의 장래를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줄 것을 기대하고 현 대표 몰래 인비 사항으로 보냈다.

하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사실임을 간과한 게 실수였다. 인비 사항으로 받은 이메일을 그대로 대표로 있는 동생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 일로 당연히 나와 학장 및 부학장은 대표 눈 밖에 나게 되었고, 학교는 여전히 문제가 많은 대표 손에 운영되고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역시 ‘가재는 게 편’이란 말이 맞았다.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을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엄격히 따져 보면 ‘유유상종’은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귀고 어울리는 것이지만, ‘가재는 게 편’이란 말에는 동조하고 편을 드는 좀 더 적극적인 행태가 포함되어 있다. 

더 나아가 나와 처남이 겪은 경우에는 ‘가재는 게 편’이란 말보다 더 깊은 동질감을 갖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혈연관계가 있었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일반적인 우정, 의리, 우호 관계보다 우선이고, 때론 이성마저 마비시켜 불합리한 일도 눈을 감게 만드는 힘이 있음을 나는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형제 없이 외동아이로 자란 탓이다.

물보다 진한 피로 엮인 관계는 없더라도 찾아 보면 누구나 가재도 있고 게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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