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약속과 신용
[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약속과 신용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8.11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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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국내에는 신용카드가 ‘20년 6월 말 기준으로 발급매수(누적)가 1억 1,253만 여장이나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양적으로는 이미 신용 사회에 깊숙이 들어선 셈이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신용 사회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한 자료에 따르면, ’20년 7월 말 현재 신용 불량자가 4백여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금전적 신용 불량자는 어려운 경제 여건이 발목을 잡는 경우이지만 인간적, 심리적 신용 불량자가 더 많다는데 우리 사회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켜지지 않는 신용의 결과는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두뇌도 좋고, 학교 성적도 우수하고,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는 등의 좋은 조건과 성공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저런 약속을 남발하고 지키지 않는 것이 큰 문제이다. 

정치인의 공약은 대부분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방향(방법)을 잘못 잡고 있음을 잊고 행동한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용을 얻어야 자신의 입지를 높일 수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다반사이다.
 
돈을 추구하는 사람이 무작정 일확천금이나 바랄 뿐 신용 있는 행동을 하지 않거나, 고위직을 얻어 뭔가 큰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윗사람에게 아부나 하고 말과 행동을 따로 하며, 신용과는 거리가 멀게 처세를 하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지는 자명해진다. 

재물을 많이 모으려면 우선 타인과의 물품 거래나 돈거래에서 신용을 확보해야 하고, 고위직에 진출을 원한다면 우선 업무의 능률성과 효과성, 공정성에서 신용을 획득해야 하는데 말이다.

신용 확보야말로 모든 분야에서 성공에 이르는 올바른 방향 잡기이다. 그것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하여 얼마나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했느냐에 따라 얻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조건이 좋다 해도, 신용이라는 방향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성공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영조 때 정승 ‘정 홍순’(1720-1784)은 호조판서로 10여 년을 재직하면서 국가 재정을 빈틈없이 처리한 올곧은 재정관이었다. 그는 한 번의 약속을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는데,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는 신용 없는 사람이라 하여 상대하기를 멀리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과거에 급제하기 전 어느 날이었다. 왕이 동구릉에 행차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가 구경을 갔다. 그는 비가 올 것에 대비하여 갓모자를 두 개나 준비했는데,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이 혹시 필요할지 몰라서 준비한 여벌의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매사에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때마침 임금님 행차 구경 도중에 비가 쏟아졌다. 그는 급히 갓모자를 썼고, 옆에서 함께 구경하던 낯모를 사람이 비를 맞고 쩔쩔매자 준비해 둔 여벌의 갓모자를 그에게 빌려주었다. 그 사람은 너무나 고마워서 몸 둘 바를 몰라했다.

구경이 끝나고 헤어질 때가 되었지만 그때까지 비가 그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정 홍순’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죄송합니다만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어르신 댁의 약도를 그려 주시면 집에 돌아갔다가 그것을 반드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정 홍순’은 그러라고 기꺼이 말하며 자기 집의 약도를 그려 주었다. 덧붙여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 사람의 집도 알아두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록 그 사람은 갓모자를 가져오지 않았다. 저녁때까지 기다려도 여전히 갓모자를 가져오지 않자, ‘정 홍순’이 해가 질 무렵에 직접 그 집으로 찾아가 갓모자를 되돌려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러 그가 호조판서로 재임하고 있었을 때, 새로 부임한 호조 좌랑이 신임인사차 방문을 왔다. ‘정 홍순’이 그 신임 좌랑(佐郞)을 접견해보니 옛날에 갓모자를 빌려 갔다가 약속 시간에 가져오지 않았던 그 사람이었다. 이에 ‘정 홍순’이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를 채용하지 않았다.

“여보시게 나를 기억하시겠나? 내가 자네에게 갓모자를 빌려주었던 사람일세, 그것이 한낱 갓모자라 해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자네의 신용은 충분히 알 수가 있었네, 그런 신용 없는 사람이 어찌 나라의 살림을 맡아 공정히 처리할 수 있겠나! 그냥 돌아가시게나” 신임 좌랑은 그대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신용이 자산’이라는 말은 누구나가 다 아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처럼 신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나아가 신용의 척도가 그 사람의 인격도 말해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정 홍순’ 대감이 그까짓 갓모자 하나 때문에 호조 좌랑의 직책을 맡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신용 없는 사람에게 나라 살림을 맡길 수 없었던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우리는 ‘언제 한 번’이라는 말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약속 이런 신용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언제 한 번’이란 시간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약속(約束) 한번 제대로 지켜보신 적이 있던가?

“언제 한번 저녁 식사 함께합시다. 언제 한 번 술이나 한잔합시다. 언제 한번 커피 한잔합시다. 언제 한번 만납시다. 언제 한번 모시겠습니다. 언제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언제 한번 연락드리겠습니다.” 등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입에 붙어버린 말, ‘언제 한 번’, 오늘은 또 몇 번이나 그런 인사를 하였나요? 손을 잡으면서, 전화를 끊으면서, 메일을 끝맺으면서, SNS 댓글을 달면서, 부모님께 선생님께 아내에게 아들딸에게 친구에게 선배에게 후배에게 직장 동료에게, 거래처 파트너에게 등등

‘언제 한번’은 오지 않는다. 오늘 저녁 약속이 있느냐고 물어보라. 이번 주말이 한가한지 알아보라. 아니 지금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라. 

사랑과 진심이 담긴 인사라면 절대로 ‘언제 한 번’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사랑과 진심은 결코 미루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여야 하는것이다.

이렇듯 ‘언제 한 번’이라는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남발하지 말고 ‘언제 한번’이 아닌 구체적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만나는 습성을 가져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지도자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지도자의 신용이 흐려지면 조직의 신용 또한 흐려질 수밖에 없다. 지도자의 신용은 모든 사람의 기준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면 아예 하지를 말고 약속한 것이라면 반드시 지키는 신용 사회를 우리 모두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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