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87] 글본새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87] 글본새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8.30 08: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예능 프로그램에도 시대에 따른 트랜드가 있는 모양이다. 
한동안 음식과 관련된 예능 프로그램이 유행했었다. 유명 연예인들 몇 명이 몰려다니며 외지에서 음식을 해 먹거나 음식을 팔고, 맛집 탐방을 한다든지 또는 음식 만들기 경연 프로그램 등등 텔레비전을 틀기만 하면 여기저기 음식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종류의 프로그램들이 죄다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아니 앞으로도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조건 중의 하나가 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먹거리와 관련된 예능이 정점을 지나더니만 요즘엔 만남과 연애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눈에 많이 띈다. 연예인과 일반인과의 만남이나 이혼하고 싱글이 된 돌싱들 간의 만남, 또는 일반인들끼리의 만남 등 다양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 세대를 넘어, 내 집 마련과 경력까지 포기했다는 오포 세대를 얘기하더니만 이젠 아예 N 가지를 포기했다는 N포 세대란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연애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시청률이 높다. 

아마 자신은 포기했더라도 남들은 어떤지 궁금해하거나 내가 하지 못하는 걸 다른 사람을 통해 대리 만족하려는 시청자 수요가 시청률을 높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여러 방송사에서 조금씩 변형하여 비슷한 프로그램을 생산해내고 있다. 

나도 얼마 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여성 연예인들과 일반인 남성들과의 만남을 통해 연애 상대를 선택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여성 연예인들은 시청자들이 알 만한 얼굴들이고, 남성 출연자들도 연예인 못지않게 준수하고 해사한 선남들이었다. 당연히 연예인과 걸맞은 대상을 섭외했을 것이다. 얼굴이나 외모만 호감이 가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밝혀진 그들의 직업 또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호감과 매력을 일순간 상쇄하는 실망스러운 장면이 있었다. 바로 남성 출연자들의 글본새였다.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주어진 질문에 출연자들이 직접 손글씨로 답변한 글씨체가 화면에 소개되었는데 엉성하고, 정돈되지 않아 심하게 말하면 괴발개발 쓴 것 같은 글씨를 보는 순간 그들에 대해 해낙낙했던 마음이 날큰해졌다. 

준수한 외모와 점잖은 말본새 그리고 내놓을 만한 직업 등으로 출연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호감이 갔지만, 글본새를 본 순간 미시감이 들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출연자 네 명의 글본새가 모두 어금지금하다는 것이다. 한 명은 외국에서 자라서 한국말에 서툴러서 그렇다고 쳐도 나머지 세 사람은 사회적 위치에 비해 글본새가 너무 형편없었다.

비단 여기에 언급한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성인의 글본새 문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해되는 면이 없진 않다. 워드 프로세스의 보급으로 모든 문서, 편지, 보고서 등을 컴퓨터를 통해 처리하다 보니 직접 손으로 글씨를 쓸 기회가 많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컴퓨터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대부분 글본새가 형편없고, 컴퓨터를 많이 다뤄보지 않은 나이 든 세대들은 상대적으로 글본새가 나은 편이다. 글본새 문제는 다만 글씨체뿐만 아니라 맞춤법도 포함되어 있다.

모 일간지 칼럼에서 한 결혼 정보 회사가 미혼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연인에게 정떨어지는 순간’을 조사한 결과를 밝혔다. 제일 많은 응답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로 43.4%였고 그다음으로 많은 응답이 ‘반복적으로 맞춤법을 틀릴 때’로 32.3%였다. 

이는 우리가 연인 사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념일을 잊었을 때’나 ‘시사 상식이 부족할 때’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라고 한다. 

예로 늘어놓은 ‘일해라 절해라(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에어컨 시래기(실외기)’, 미모가 일치얼짱(일취월장)’, ‘삶과(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괴자(계좌) 번호’ 또는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를 ‘심각한 일에 심심하다고 쓰다니’라고 한다면 나 같아도 정이 떨어질 것만 같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같은 교회에 아주 예쁜 여학생이 있었다. 남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던 것은 물론이고 내남없이 사귀고 싶어 했었다. 
하루는 공과 시간에 교사가 철학자 얘기를 하면서 칠판에 ‘니-체’라고 썼더니 이 여학생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 나체’라고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에 대한 환상이 깨졌던 기억이 있다.

맞춤법에 맞게 쓰면서 정리되고 일관된 글씨체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글본새를 갖추는 일은 비단 남세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투자이다.

글씨체를 연구하는 ‘필적학’(Graphology)이란 학문에서 글씨체는 뇌의 흔적이기 때문에 글씨의 크기, 필압 또는 모양 등을 분석해 보면 글 쓴 사람의 성격, 성향, 행동 패턴 및 심리 상태 등을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자신이 닮고 싶은 롤모델의 필체를 따라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성격과 습관을 교정하게 되어 결국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노력하면 말본새를 바꿀 수 있듯이 우리의 글본새도 바꿀 수 있고 그로 인해 우리 인생도 바꿀 수 있다고 하니 더 이상 컴퓨터 글꼴에 의지하지 말고 직접 글을 쓰면서 글본새를 바로 잡는 연습을 해야겠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