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형편에 맞는 차례상 차리기
[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형편에 맞는 차례상 차리기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9.01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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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곧 추석이 다가온다. 특히 올해는 추석이 일찍 다가오기에 여러 문제가 제기 되고 있다. 햇곡으로 차례를 지낼 수도 없고 뛰는 물가가 차례를 큰 부담으로 여기게 되었다. 

차례에 격식(?)을 지켜서 차리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진다. 제례의 격식에 따라 이것저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고 배우면서 자란 세대이지만 과연 그렇게 격식에 얽매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제수의 진설법은 가가례(家家禮)라고 하여 집집마다 다르다. 그래서 도랑 만 건너도 제례를 지내는 법이 다 다르다고 했는데 아직도 옛 관습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것을 아름다운 전통이라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제례 예법이 ‘주자(朱子家禮)’에서 비롯된 것인데 조선의 유교가 성리학을 따라한 것으로 성리학을 창시한 것이 ‘주자(朱子)’이기 때문에 조선조의 모든 문화는 주자의 뜻에 따라 주자가 말한 게 곧 법이었으므로 그것이 기본 법칙이 되었다. 

정작 유교 발상 국인 중국에서는 ‘주자가례’를 지키지 않았다고 하는데 조선조 선비들이 무조건 맹신하고 따른 것이 큰 문제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대외적으로 과시하고 대내적으로도 자부심을 드러내는 방법 중의 한 가지로 자신들 집안은 제례를 지낼 때 전통 예법에 딱딱 맞춰서 지낸다고 과시하는 차원에서 몇몇 가지를 여기저기서 따와서 조합하여 일부러 복잡한 법칙들을 집어넣어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우리나라는 주자의 성리학이 크게 발달해서 정작 중국에서는 주자 사후에 얼마 가지 않은 송나라 때 성리학이 유행하다가 송나라가 망하면서 성리학의 유행도 점차 사라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 500년 동안 오로지 성리학을 붙들고 있다 보니까 중국보다 조선에서 성리학이 더 발전하게 되었다. 

주자의 성리학을 한 걸음 더 밀어붙인 해동(조선)의 ‘주자’가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다. 지금도 세계에서 유학(儒學) 공부하는 학자들이 모여서 ‘퇴계 이황 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퇴계 이황 선생도 당시 상황이 옛날과 달라졌기 때문에 예전과 똑같이 제례를 치를 수는 없다며 그때그때 달라진 상황을 반영해서 구하기 쉬운 제수로 제례를 지내야 한다고 갈파[喝破]한 바 있다. 

-퇴계 이황 종가의 간소한 차례상 (출처: 한국국학진흥원/중앙일보)-
-퇴계 이황 종가의 간소한 차례상 (출처: 한국국학진흥원/중앙일보)-

퇴계 이황 선생의 종손이 종택 사당에 차린 차례상은 설에는 떡국(추석에는 송편), 북어, 전(煎) 한 접시, 과일, 간장 등 다섯 가지에 술을 올리는 정도로 제례를 축소했다고 한다. 차례에는 식사를 올리는 것이 아니므로 나물, 탕, 국이 필요하지 않다. ​제례 문화 지침서인 ‘주자가례’의 가르침과 번거롭고 비싼 음식을 올리지 말라는 퇴계의 유훈에 따라 대대로 이렇게 차려왔다고 한다.

세상에 정해진 영구불변의 법칙은 없다. 요즘같이 지구온난화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여러 가지 음식물과 과일도 달라지고 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도 집안의 형편과 각자의 살림 형편에 맞춰서 그냥 그때그때 계절에 맞는 음식 몇 가지 올리면 된다고 했다. 

설 ‘차례’에는 떡국에 두어 가지 음식만 올리면 되고 추석‘차례’는 송편과 햇과일 몇 가지와 약간의 음식을 올리면 된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허례허식에 짓눌리며 살아 온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전(煎)을 부치다가 가족 간에 불화가 많이 일어나기도 한다. 전 없이 차례 지낸다고 무엇이 문제인가? 

설과 추석 명절 이후에 이혼율이 부쩍 늘어나는 현상은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과다한 음식 준비로 불신과 갈등이 빈발하게 발생하는 이러한 폐단은 과감히 없애 버려야 한다. 

이제는 복잡하게 제례를 지낼 필요가 없어졌다. 성리학에서 제례의 기본정신은 조상을 받드는 효(孝) 사상으로 조상을 추모하고 가족 화합의 기회로 삼으라는 의미이다. 

이번 기회에 허례와 허식을 타파하고 무조건 신봉했던 관습을 과감하게 바꾸는 결단을 내릴 때이다. 모든 가정의 전통과 가풍이 다르다는 방식을 이해하고 무엇을 놓던 그 집안의 가례(家禮)와 형편 맞게 제례 법을 만들어 새로운 전통으로 삼으면 좋을듯하다. 

올 추석부터는 간소하지만 정성스럽게 차례를 지내고 함께 모인 온 가족 간에 웃음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명절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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