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미국산 골프용품 브랜드(Brand)
[전대길 CEO칼럼] 미국산 골프용품 브랜드(Brand)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9.14 08: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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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우리나라 골프인구가 6,000,000명이란 뉴스가 전한다.   
그런데 골프용품 이름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제대로 아는 골퍼가 없다. 그래서 호기심 충만해서 미국산, 일본산 골프 브랜드를 살펴보았다. 타이틀리스트 골프공과 테일러메이드 골프 브랜드가 대한민국 기업 제품임에 자긍심(自矜心)을 느낀다. 

캘러웨이(Callaway)​

1982년 미국에서 설립된 세계 최대 골프브랜드 중 하나다. ‘캘러웨이(Callaway)'는 창업자 '일리 캘러웨이(Ely Callaway)' 이름에서 왔다. 

일리 캘러웨이 (Ely Callaway)
일리 캘러웨이 (Ely Callaway)

​미국 조지아주 출신 일리 캘러웨이는 방직회사 회장에서 퇴임 후 64세이던 1982년에 골프사업에 투신했다. 1988년에 상호를 '캘러웨이 골프(Callaway Golf Company)'로 바꾸고 아이언과 우드를 출시, 돌풍을 일으켰다.

​1991년, 혁신적인 스테인리스 소재의 골프클럽 ‘빅 버사(Big Bertha)’가 캘러웨이의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캘러웨이는 골프계의 정상에 올랐다. ​1996년 골프공 사업에도 진출, 골프용품 종합 제조업자로서의 위상을 갖추었다. 1997년에는 세계 최대의 퍼터 메이커인 '오디세이'를 인수했다.

​​타이틀리스트(Titleist)

​세계 골프인구 4명 중 3명이 사용할 정도의 골프업계 1위의 골프공이다. 

지금은 골프공을 넘어 클럽, 액세서리, 어패럴까지 영역을 넓혔다. ‘Champion’이란 뜻의 ‘타이틀리스트(Titleist)’ 골프공이 탄생한 유래다. 

1930년, 고무(Rubber) 제조업체 CEO인 ‘필 영(Phil Young)’이 골프를 치다가 Green 위에서 퍼팅(Puttig)이 홀 컵을 돌고 비켜나갔다. 그러자 그는 골프공 성능에 문제점이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 

필 영
필 영 (Phil Young)

라운드 후 그 골프공을 X-레이로 촬영해 보았더니 치명적인 결함을 발견했다. 그 골프공 속에는 코어(core/核)의 크기와 위치가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그와 MIT 대학 동문인 '프레드 보머'에게 새로운 골프공 개발을 맡겼다. 1935년 드디어 그가 첫 타이틀 골프공을 탄생시켰다.

‘타이틀리스트(Titleist)’란 글씨체는 그의 비서인 '헬렌 로빈슨'의 작품이다. 그녀가 쓴 'Titleist'란 필기체는 타이틀리스트의 모든 상품의 상표가 되었다. 타이틀리스트 골프공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골프클럽 개발에도 착수하여 1990년대부터 웨지와 퍼트, 드라이버와 아이언 등을 순차적으로 출시했다.  

그런데 골프 브랜드 'Titleist'가 대한민국 상표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Titleist'란 상표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골프용품 브랜드다.  

2011년 한국의 휠라코리아와 미래에셋 PEF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타이틀리스트를 인수했다. 2016년 윤 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이 뉴욕 주식거래소(NYSE)에 성공적으로 상장시켰다. 그 후 주식 지분을 추가로 인수, 휠라코리아 자회사(子會社)가 되었다. ‘타이틀리스트(Titleist)’ 공은 우리나라 제품이다. ​

​테일러메이드

1979년 토털 골프용품 브랜드 테일러메이드가 설립되었다. 
설립 초기에는 재빠르게 신제품을 출시하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그러나 신모델 출시가 너무 빨라서 골퍼들로부터 외면받았다. 오랜 슬럼프를 거쳐 2016년 출시한 우드 M시리즈가 골퍼들로 호평을 받았다, 

1970년대 후반 어느 날, 골프광 '개리 아담스'에게 한 클럽 개발자가 찾아와서 '메탈헤드 드라이버'를 제작하자며 투자를 제안했다. 이에 개리 아담스는 일리노이주 멕 헨리에 공장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개발했다. 

그는 생산​제품을 골프 대회장마다 찾아다니며 프로 선수들에게 마케팅을 했으나 프로 선수들은 메탈 소재 클럽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메탈 우드를 개발한 ‘개리 아담스’와 최초의 메탈 우드
메탈 우드를 개발한 ‘개리 아담스’와 최초의 메탈 우드

그러던 중 일부 프로 선수들이 이 클럽을 사용해 보고서 메탈 헤드 클럽의 성능에 놀랐다. 그 이전의 클럽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이런 소식은 풍문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개리 아담스는 본격적인 클럽 생산에 몰입했다. 

클럽 디자인 작업을 도와주고 성원해준 일리노이州 프로 골프 선수인 '헤리 테일러'의 이름에서 ‘테일러 메이드’란 브랜드가 탄생했다. 

테일러메이드는 PGA투어의 간판스타인 미국의 '타이거우즈' '로리매킬로이' '톰 왓슨' '더스틴 존슨' 등의 선수가 테일러메이드 클럽을 사용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Burner시리즈'가 크게 유행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7년 아디다스가 테일러메이드를 인수했다가 2017년 미국 투자회사 KPS캐피털에 약 5,000억 원에 되팔았다. 

그리고, 2021년 우리나라의 사모펀드인 ‘센트로이드 인베스트먼트’가 약 2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해서 테일러메이드를 인수했다. ​우리나라에서 타이틀리스트에 이어 테일러메이드까지 인수하면서 골프용품 브랜드 빅3 중 2개를 보유하는 골프 강국으로 올라섰다.​

​핑(PING)

1911년 노르웨이에서 출생, 미국 뉴욕에 이민 온 '카스텐 솔하임'이 창립한 골프 브랜드다. 그는 전통을 중시하는 발명가였다. 아버지처럼 구두 수선공을 시작으로 세일즈맨, 항공사 직원, GE의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PING 회사를 설립했다. 골프계의 ‘트랜드 메이커’로 불리며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Ping Putter를 만든 '카스텐 솔하임(Karsten Solheim)'
Ping Putter를 만든 '카스텐 솔하임(Karsten Solheim)'

그런데 핑 골프의 탄생은 카스텐의 취미에서 시작됐다. 골프 마니아였던 그는 자신의 골프 실력 향상을 위해서 색다른 골프클럽 제작에 나섰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매일 밤마다 집 차고에서 설계도를 그리며 개발에 전념했다. 

1959년 첫 번째 퍼터(Putter)를 개발하였다. 이 퍼터는 볼을 칠 때, ‘핑(Ping)~!’하는 청명한 소리가 났다. 이를 토대로 Ping이란 골프 브랜드가 탄생했다. 1966년 출시한 퍼트(ANSER)는 잭니클라우스, 아놀드 파머 등 세계적인 골퍼가 사용했는데 PGA 투어 우승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따라서 핑 골프는 퍼터의 대명사가 됐다. 헤드의 양 끝에 무게를 분산시켜 임팩트 때 비틀림을 줄였다. 그리고 골퍼 개개인의 체형과 스윙에 맞는 '피팅 클럽'의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당시 수많은 프로 골퍼가 자신에게 적합한 피팅 클럽을 장착,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피팅의 중요성을 알렸다. 1982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아이언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

나이키 골프

미국 오레곤 대학의 육상선수인 '필 나이트(Phil Knight)'와 코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이 1964년에 만든 'BRS'(Blue Ribbon Sports)가 나이키의 전신이다. 

그리스 신화의 니케(Nike) 여신상
그리스 신화의 니케(Nike) 여신상

'BRS'는 일본의 스포츠화 메이커인 '오니츠카 타이거'의 제품 유통으로 돈을 번다. 오니츠카와 계약이 끝난 후 그들은 자신들만의 제품을 생산하기로 결심하고, 1971년 새로운 브랜드인 '나이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나이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

1984년에는 '나이키골프'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골프 사업을 시작한다. 1996년에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당시 아마추어였던 '타이거 우즈'와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타이거 우즈는 마스터스 경기에서 최연소 챔피언으로 등극하며 나이키골프를 전 세계에 알린다. 그때부터, 타이거 우즈는 나이키골프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2002년에는 골프클럽을 출시하여, 타이거 우즈가 승리를 거듭할수록 매출도 크게 증가했다. 미국 골프화 시장 2위(2003년)와, 골프의류 시장 1위(2006년)로 도약하며, 골프용품 시장에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다. 

그 후, 타이거 우즈를 비롯한 재미교포 '미쉘 위' '최 경주' '로리 맥킬로이' 등의 선수들과도 계약을 맺어 골프 시장의 판도를 흔들었다. 

그런데, 2016년 어느 날. 나이키는 성명을 통해 골프클럽과 골프볼, 골프백 등 골프 용품의 생산을 완전히 중단하고 의류와 신발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와 함께 했던 나이키 골프는 스타의 부진과 함께 결국 20년 만에 골프용품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PXG        

‘봅 파슨스(Bob Parsons)’ 출처 : PXG 공식 홈페이지

‘PXG’는 '파슨스 익스트림 골프(Parsons Extreme Golf)'의 약자(略字)다. 
억만장자 골프광인 ‘봅 파슨스(Bob Parsons)’는 기존 골프클럽에 불만이 컸다.  좀 더 뛰어난 클럽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2014년 9월, 미국 애리조나州 스코츠데일에 ’파슨스 익스트림 골프(PXG)‘를 설립했다.

봅은 개발자들을 영입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고, 개발자들은 비용과 시간 제한 없이 연구를 거듭하여 기존 클럽과는 차별화된 클럽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2년 만에 꿈에 그리던 클럽 개발에 성공했다. 

칼날처럼 샤프한 디자인은 젊은 골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PXG가 선보인 클럽 세트는 클럽에 대한 골퍼들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꿨으며 골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봅 파슨스는 PXG 클럽 론칭과 함께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했다. PGA투어의 잭 존슨, 제임스 한, 팻 페레즈, 찰스 하웰 3세, 찰 슈어젤, 그리고, LPGA투어의 리디아 고, 크리스티 커, 안나 노르드크비스트, 브리타니 랭, 제리나 필러 등이 PXG와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LPGA투어의 간판스타 '​리디아 고'는 PXG 클럽에 대해 “오랜 시간 골프를 하면서 내게 최적화된 클럽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며 “PXG 클럽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고, 우수한 부분이 많았다”고 만족해했다. 

골프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지만 골프용품 브랜드를 제대로 모르면서 공을 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래서 열심히 골프 관련 자료를 뒤적이고 인터넷 검색을 해서 파악한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내주에는 일본산과 한국산 골프 브랜드를 발표할 예정이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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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2022-09-18 20:42:19
밥파슨스 사진이 잘못된것 같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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