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ESG와 산업안전 사이에 끼인 '중소기업', 맞춤 지원없인 '등' 터진다
[초점] ESG와 산업안전 사이에 끼인 '중소기업', 맞춤 지원없인 '등' 터진다
  • 이윤희 기자
  • 승인 2022.09.22 0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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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안전조치 위반으로 인한 사망사고 4건 중 3건이 영세기업
산업안전 강화 의지 있어도...안전관리자 인건비 조차 불가능
'비용 부족→안전 미흡→계약 수주 실패→적자경영' 악순환
중기부, ESG 경영 어려운 중소기업 대상 맞춤형 컨설팅 지원
산업안전과 ESG 경영 등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확대되면서 공격적인 투자가 어려운 중소기업은 근로자 안전 위험과 소비자의 외면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처지에 놓였다.
산업안전과 ESG 경영 등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확대되면서 공격적인 투자가 어려운 중소기업은 근로자 안전 위험과 소비자의 외면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처지에 놓였다.

#과거 청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서사는 가난하지만 사회 공헌에 앞장서고 착한 주인공과 큰 기업을 관리하지만 인간미라고는 느껴볼 수 없는 재벌의 대립 구도였다. 대기업은 환경과 사회적 연민에 관심이 없는 냉혈적인 이미지로, 착한 주인공의 회사는 규모가 작고 가난하지만 언제나 사회적 문제에 앞장서고 약자를 돕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현실에서는 이와같은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자본과 기술력을 필두로 양질의 서비스를 저렴한 값으로 제공하거나 좋은 물건을 대량 생산해 유통하는 것으로 승부를 보던 대기업들이 이제 ESG 경영 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오늘 날 중소기업은 ESG 경영이나 근로자의 안전한 노동환경 구축 등 사회적 요구에 응답하고 싶어도 투자 조차 어려워 마땅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처지다. 

소비자 등 일반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적, 경제적 발전이 뒤따르면서 산업안전과 ESG 경영 등 기업에 사회 구성원으로써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사회 공헌에 앞장 서고 친환경 서비스를 제공하던 기업 일부가 박수를 받았다면 이제는 그렇지 못한 기업이 소비자와 대중들의 외면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환경이 됐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을 위해서 뿐 아니라 기업 스스로도 달라진 노동 시장에 부응하기 위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모든 기업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산업안전 강화 및 ESG 경영 모두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본과 투자가 필요한 까닭이다. 즉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은 의지만 있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셈이다. 

자본과 인프라, 기술력에서 뿐 아니라 기업의 이념적인 부분에서마저 대기업에 밀리게 될 처지에 놓인 중소기업을 위한 맞춤형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 사망 사고 최다는 영세기업...위험 속 노동자들
고용노동부는 10월을 앞두고 2017년부터 최근 5년간 건설업과 제조업의 추락, 끼임 등 3대 안전조치 관련 사망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경고했다. 해당 사고가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 1년 중 10월이라는 통계에 근거한 독려다. 

그런데 해당 자료를 살펴보면 관련 사고 대다수가 소규모 영세 사업장에서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대 안전조치는 추락·끼임 예방조치, 개인 안전 보호구 착용 등 기본적인 조치다. 관련 사고로 사망하게 되는 노동자는 매일 하루 평균 1명 내외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5년간 10월 평균 사망자 수는 165명이었는데 이중 76.4%에 해당하는 126명이 상시 근로자 50인 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중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명 중 3명이 영세기업 소속 근로자인 셈이다. 

기본적인 안전 조치를 이행하지 못해 사망까지 이르는 사고의 경우 안전 관리자 다수가 근무하고 있는 대기업의 근로 환경에서는 쉽게 발생하기 어렵다. 대기업의 인명사고는 기본 안전수칙보다는 중차대한 대형 사고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안전보호장치 착용 등 기본적인 주의만 기울려도 사고를 피할 수 있는 일을 왜 영세기업에선 해결하지 못한 것일까.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그 원인을 현실적인 비용 한계에서 찾는다. 이러한 안전 수칙을 이행하기 위해선 먼저 전문적인 안전관리자가 상시 배치되어있어야 하는데 영세기업 특성상 고급 인력에 대한 인건비를 상시로 지불하기 어렵다는데서 문제가 시작된다는 주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20일 개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마련을 위한 현장 의견수렴 간담회'에서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제도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며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강조했다. 

50인 규모 플라스틱 제조업체 A사는 “중소기업은 생산에 투입할 인력조차 뽑지 못해 안전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라며, “엄청난 서류 작업을 혼자서 다 해야 하는데 정말 막막하다”고 호소한 바 있다. 

또 다른 업체는 안전잔치 비용에 대한 부당함과 어려움을 호소했다.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인데 안전 투자 비용은 기하급수로 늘고 이에 대한 지원 대상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안전 담당 관리자를 채용하고자 해도 채용조차 어려운 일도 부지기수다. 조그만한 시설관리업을 영위하는 B씨는 "전기기사를 고용하고자해도 그러한 고급인력이 영세한 기업에서 근무하길 희망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안전 관리에 대한 필요와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도급이나 위탁 기회 조차 줄어들어 중소기업은 그야말로 도산 처지에 놓인 곳들이 비일비재하다. 고급 전문 인력 등 안전 역량을 갖춘 기업을 위주로 하도급이 이뤄지다보니 중소기업이나 창업기업은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처지다. 

여력이 부족한 영세 중소기업에서도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안전투자 비용과 전문인력 인건비 등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건의사항이 빗발치고 있다. 

이와 같은 요구에 대해 고용노동부 양현수 안전보건감독기획과장은 “우리나라의 중대재해는 중소기업 비중과 제조·건설업 비중이 높은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모든 구성원의 노력으로 상당 부분 감축되었으나, 이제는 지금과 같은 방식만으로는 사고를 줄이기 어려운 시점이다"는 의견을 밝히며  “대·중소기업간 안전보건 격차를 줄이고 중소기업이 안전보건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법령은 정비하여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자력으로 안전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건비, 기술, 제도적 불합리함 개선 등 다각적인 면에서 조치가 이뤄져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는 그 사이 대기업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사단법인 HR서비스산업협회 남창우 사무총장은 "도급 기회마저 앗아가는 안전보건관리 규제가 중소기업의 경영 위험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기업 규모에 맞는 차등 적용과 중소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발빠르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중기부, 설명회 가이드라인 제시로 급한 불 끈다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고 있는 ESG 경영 역시 중소기업에는 난제가 아닐 수 없다. 대기업이 ESG 경영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중소·중견기업에 ESG 경영은 넘보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예산, 인건비 부담 등 결국 '가지고 있는 패'가 한정적인 중소기업에 ESG 경영은 넘기 어려운 산과 같은 존재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중소기업의 ESG 경영 대응 동향 조사를 진행한 결과 중소기업 중 ESG 경영을 준비하고 있거나 준비를 했다는 비율은 단 25.7%에 그쳤다. 이보다 더 많은 34.6%는 준비할 계획이 없다는 답을 내놓았는데 그 가장큰 이유는 역시 비용과 전문인력의 부재였다.

환경오염 저감, 환경 법규를 준수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설비를 도입하고 전문 인력을 배치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과 투자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하는데 이를 회수할 가능성도 낮을 뿐더러 투자할 자본력 자체가 부족한 까닭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와 같은 중소기업의 고충을 해소하기 위해 중소기업과 ESG 경영에 대한 간담회를 갖고 중소기업의 의견을 청취했다.  이어 11월 초까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의 ESG 인식 제고와 경영 도입 지원을 위한 '중소기업 ESG 실천방안 설명회'를 개최할 방침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 맞춤형 ESG 설명회 일정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 맞춤형 ESG 설명회 일정

강사로는 법무법인 지평, 한국표준협회 등 현장에서 중소기업 ESG 컨설팅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해 기업 여건에 맞는 실천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공한다. 

경기, 부산, 대구, 광주, 청주 등 5개 지역에서 진행되며 업종별 중소기업에 대한 필요 내용과 정부 지원사업에 대한 소개도 병행할 것으로 예상돼 ESG 경영이 쉽지 않은 중소기업에는 실낱같은 희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설명회 참석을 희망하는 업체‧기관 담당자는 중기부에 29일까지 신청서를 접수하면 무료로 참여 가능하다.

오지영 중기부 미래산업전략팀장은 "ESG 경영 도입을 위해서는 ESG 경영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닌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ESG 경영이 중소기업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발판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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