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1] 애국심(愛國心)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1] 애국심(愛國心)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09.27 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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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외국에 나가게 되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외국에서 시민권을 얻은 재외 교포이거나 일시적으로 머무는 재외 국민을 막론하고 외국에 나가서 살다 보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는 건 사실인 듯하다.

불혹을 넘긴 나이로 2000년을 며칠 앞둔 1999년 12월 말에 가족을 데리고 뉴질랜드로 이민 갔을 때 다시는 한국에 돌아올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뉴질랜드에 살면서 영주권을 얻은 다음 바로 시민권 신청을 했고 시민권이 승인되자 자동으로 한국 국적이 상실 처리가 되면서 명실상부하게 재외 국민에서 재외 교포(僑胞)로 신분이 바뀌게 되었다.

법적으로 그리고 신분상으로 뉴질랜드인이 되었지만, 주변 이웃들, 심지어는 뉴질랜드 친구들까지 나를 뉴질랜드 사람으로 봐주진 않았다. 내가 뉴질랜드 직장을 다니고 변호사가 됐어도 그들 눈에는 그저 뉴질랜드에 사는 동양인이었고, 좀 더 자세히 나를 아는 지인들에겐 한국인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뉴질랜드인으로 엘리자베스 여왕 이름으로 선서하고 시민권을 받아 수상과 국회의원을 뽑는 귀중한 투표 행사를 할 수 있더라도 내 겉모습이 그들과 다른 것은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꿔 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이 귀화해서 한국 국민이 됐다고 할지라도 많은 사람 눈에는 그저 한국에 사는 외국인으로 보일 뿐이다. 그들이 아무리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더라도 신기하고 대단할 뿐이지 그렇다고 그들이 우리와 같은 한국 민족으로 여겨지진 않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뉴질랜드 시민권을 받음으로써 외국인 신분이 되었지만, 생활권은 여전히 한국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일단 먹거리부터 한식을 주로 먹으니 당연히 한국 식품점을 찾게 되고, 자주 만나 어울리는 사람들도 대부분 한국 교민들이고, 방송이나 뉴스 또한 현지 사정보다 바다 건너 고국의 사건 사고 및 소식이 더 궁금해서 매주 발행되는 한국 소식 신문을 빠짐없이 챙겨 보게 된다. 

조금이라도 한국에 관한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한국 편에 서게 된다.

법적으로 엄밀히 따지면 한국 국민도 아니면서도 한인 학교에서 현지인들과 교민 자녀들에게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치고, 더 나아가 한인회 회장으로 봉사한 것도 국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벗어 버릴 수 없다는 방증(傍證)이기도 하다.  

모국 사랑이 가장 잘 표출되는 때가 아마 스포츠 경기일 것이다. 세계 최강인 뉴질랜드 럭비팀이 라이벌인 호주 팀과 경기하게 되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뉴질랜드 팀을 응원하지만, 한국 대표 팀이 뉴질랜드에 와서 친선 경기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을 외치게 된다. 모국에 대한 애국심이 신분 변화와 상관없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모국에 대한 애국심과 자부심을 가장 크게 느꼈던 경험도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였다. 우리나라가 16강을 넘어 8강 그리고 4강까지 진출했을 때 거리를 온통 붉은색으로 가득 메운 한국의 열기만큼은 아니더라도 뉴질랜드에서도 모국에 대한 애국심과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랑스러움을 내놓고 떨뜨렸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삼삼오오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축구 경기를 보며 응원하다가 한인회 주최로 단체 응원을 하게 되었고, 16강, 8강 그리고 4강으로 올라갈 때마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하며 단체 응원하는 장소가 점점 커졌다. 

마침내 4강 진출이 확정되었을 때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는 응원을 마치고 쏟아져 나온 한국 사람들로 인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차를 타고 다니며 경적을 울려대고, 내남없이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대한민국’을 외치며 시내를 돌아다니는 통에 여기저기서 ‘대한민국’ 구호와 박수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던 키위들도 이유를 알고는 게염이 나면서도 손뼉을 치며 축하와 성원을 보내주었다. 그 어느 때보다 모든 교민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봇물 터지듯 했다.

외국에 살게 되면 모국에 대한 애국심이 더 커지는 이유 중에는 거주하는 나라에 대한 주인 의식 부족이 한몫할 것이다.

시민권을 획득하여 거주국의 시민이 되어 당당히 권리와 신분 보장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익숙한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사용해아 하고, 외관도 다르기 때문에 늘 남의 나라에 사는 이방인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정착하여 그 나라 국민으로 사는 동포를 뜻하는 교포라는 단어의 교(僑)자에 ‘타관살이한다’, ‘임시 거주한다’란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주국에 대해서는 이방인이란 감정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반면에 모국은 여전히 내 나라라는 주인 의식을 털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잘할 때는 자랑스럽고, 못 할 때는 연민을 갖고 응원하게 된다. 

2010년에 개정된 국적법으로 국적을 회복하고 한국에 살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에 살 때보다 애국심이 덜 해지는 것 같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멀리서 바라볼 때와 가까이 부대끼며 살 때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내 나라에서 사는 것이 좋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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