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3] 진정한 선물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3] 진정한 선물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0.11 09: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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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장모님으로부터 두 번째 재촉 전화가 온 것은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였다. 
대천에서 점심 먹은 다음 생전 처음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를 외줄로 건너는 집라인이란 놀이 기구를 타고 나서 겨우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보령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미국에서 오랜만에 다니러 온 처형과 처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서로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그동안 함께 나들이하지 못하고 있다가 모처럼 시간을 맞춰 떠난 여행길이었다. 

그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재차 전화해서 집에 빨리 돌아오라는 소리에 세 자매는 슬몃슬몃 건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 남아 있는 노친네들 저녁 때문에 서두르는 여행길이다.

장모님이 2번이나 전화해서 빨리 돌아오라고 재촉하시는 주된 이유가 집에 택배가 왔다는 것이다. 얼마 전 뉴질랜드에 있는 막내가 한국에 사는 아는 사람 편으로 해산물을 보내려고 하는데 언제 엄마가 집에 있는지 물어보는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늘 집에 있으니 아무 때나 괜찮다고 했는데 아마 그 해산물이 온 모양이라고 아내가 설명했다. 

아내는 장모님에게 택배 포장을 뜯고 필요하면 냉장고에 넣어두면 된다고 했지만, 웬일인지 장모님은 우리들 올 때까지 손대지 않을 테니 무조건 빨리 오라는 말만 하신다.

아내는 일단 알았다고 전화를 끊은 후, 해산물이 택배로 오면 보통 얼음팩을 넣어 포장해서 보내기 때문에 오늘 내로 상할 염려는 없을 테니 예정대로 보령 개화예술공원을 들렀다 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순간의 스릴을 위해 지불한 집라인 비용과 견주어 보면 개화예술공원 입장료는 가성비가 훌륭했다. 야외에 전시해 놓은 석조 모형물뿐만 아니라 식물원도 볼 만 했기 때문이다. 카페와 연결해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여러 공간도 멋진 사진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어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을 것 같았고, 이미 알고 찾아온 아가씨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모두 이순을 넘긴 할머니 신분의 세 자매는 가는 곳마다 예쁘게 장식해 놓은 조형물로 인해 해낙낙하며 곱다시 소녀 감성으로 돌아가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정해진 시간만 없으면 밤을 새우고도 남을 기세의 세 자매를 재촉하여 귀갓길에 오르면서 막내네가 보냈다는 택배 선물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형들에 비해 늦게 직장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여유가 없을 텐데도 부모를 위한  마음 씀씀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도 드는 복잡한 심경을 느끼며 집에 도착하여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놀라움으로 제자리에 서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택배가 와 있는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에 있어야 할 막내네 가족이 와 있는 것이다. 막내와 막내며느리 그리고 7살, 3살짜리 두 손자까지 모두 네 식구가 환하게 웃으며 눈앞에 있었다.

3년 전 막내 손자가 태어날 때 우리 부부가 뉴질랜드에 가서 며느리 산후조리를 도와주었으니 우리는 3년 만에 본 것이지만,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거의 8년 만에 다시 보셨고, 미국에서 온 처형은 막내네와 처음으로 상봉하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뜻깊은 만남인데,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놀람이 더해져 더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우리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이 되기 위해 뉴질랜드에 있는 형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고조곤히 작전하듯 오면서 얼마나 즐거운 마음으로 왔을지를 생각하니 우리 또한 따뜻한 미소가 지어졌다.

예전에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인 에데카(EDEKA)에서 만든 1분 46초 분량의 크리스마스 광고가 잔잔한 감동을 주고 생각해볼 여운을 남겼다.

홀로 사는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해마다 크리스마스에 올 수 있는지 물어보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자녀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과 함께 장례 일정이 담긴 부고장을 받게 된다. 

자녀들은 그제야 만사를 제쳐두고 아버지에게 달려가 보니 아버지는 멀쩡히 살아서 만찬을 차려놓고 자녀들을 맞이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오지 않는 자녀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거짓 부고장을 보낸 것이다. 아버지의 거짓 부고장으로 인해 모처럼 가족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논어의 한씨외전(韓氏外傳)에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란 말이 있다. 즉,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를 다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나중에’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을 확실치도 않은 언젠가 ‘나중에’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종종 미룬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나중에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일 중에 결국 하지 못한 일들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 

미루지 않아야 할 일 중에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나중에’ 해서는 안 된다. 그 ‘나중에’까지 기다려 주는 부모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꿈에도 예상치 못한 막내네 가족의 깜짝 방문은 거짓 부고장 때문도 아니고 ‘나중에’가 아니기에 더 기쁘고 고맙기만 한 놀라운 선물이었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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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ha 2022-10-11 22:51:21
감동이네요 ~ 매일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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