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4] 회자정리(會者定離)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4] 회자정리(會者定離)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0.18 0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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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중략)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중략)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

학창 시절에 누구나가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시험 때문이라도 읽어보았을 만해(萬海) 한용운의 유명한 시 ‘님의 침묵’의 한 문장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다시 만나고 싶은 미련을 담아 보내는 편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고 승려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님’은 이성(異姓)을 언급한 것이라기보다는 언론 탄압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던 일제강점기에서 ‘조국’이나 ‘민족’을 은유적으로 상징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이 연인과의 이별을 담은 애절한 사랑의 시로 애송하고 있다.

시인은 승려이기 때문에 불교에서 얘기하는 윤회 사상을 담아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이 있으면 또 만남이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세상사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만남은 언젠가 헤어짐이라는 끝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인생의 여정 중간중간에 우린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하고 있다. 

학교에 입학하며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고 졸업하면서 헤어짐을 경험한다. 회사에 입사하며 동료들과 새로운 만남을 갖지만, 퇴사하면서 헤어지게 된다. 가족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늘 곁에 붙어 있을 것만 같은 가족들도 때가 되면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자녀들은 학업이나 입대 등으로 짧은 헤어짐을 겪기도 하다가 결혼하게 되면 부모의 곁을 떠나게 된다. 

간혹 사고로 다시는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뼈아픈 이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심지어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되도록 함께하기로 맹세한 부부도 이혼이나 사별로 헤어지는 날이 온다. 만난 사람은 언젠가 헤어지게 된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원리는 불변의 이치이다.

우리 집에서도 얼마 전 아쉬운 이별이 있었다. 미국에서 방문 온 처형과 처제가 한 달여를 보내고 미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받아놓은 날짜는 빨리 온다고 하더니만 오랜만의 한국 방문으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을 텐데, 막상 돌아보니 한 것 없이 빨리 지나간 시간으로 아쉬운 마음이 크다.

아내와 네 살 터울의 처형은 집안의 장녀로서 똑 부러지는 면이 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할 말은 하는 성격이다. 원래 타고난 성격에다 미국에서의 생활로 더 확고해진 거 같다. 그래서 아내가 부모님께 대놓고 하지 못하는 말도 서슴없이 해댄다.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들을 수밖에 없다. 

아내는 자기가 갖지 못한 점을 가진 언니를 좋아한다. 대학 전공을 살려 느지막하게 유화 그림을 그리며 노후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머리 스타일도 이전 외교부 장관처럼 은색 단발머리를 하고 나타나는 바람에 장모님은 당신보다 더 흰 머리를 한 딸내미를 마뜩잖아 하셨다.

아내보다 네 살 아래인 처제는 이순(耳順)이 넘은 나이에도 검은 생머리에 가냘픈 몸매 그리고 언니들과는 다른 동그랗고 작은 얼굴로 제 나이를 찾아 먹지 못한다. 얼마 전 처제와 함께 교회에 참석했더니 처제를 처음 본 지인이 내 막내딸이냐고 묻는 말에 한참 웃었다. 검은 생머리에 마스크도 쓰고 있었으니 영락없이 젊은 처자로 보였을 것이다. 

사실은 누가 봐도 할아버지 모습을 하고 있는 그 말의 주인공과는 불과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기에 그 일은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처제는 자주 그런 오해를 받기 때문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아마 내심 나이보다 어리게 보이는 것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제도 이순의 나이를 넘기고 손자녀들도 여럿 있지만, 아직도 우리 집안에선 막내 취급을 받는다. 본인도 나이를 잊고 살려는 듯이 등산과 트레킹 등 몸 쓰는 것을 즐기고, 다른 친구들과 그룹을 만들어 미국에서 한국 무용 공연을 다니며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 

처형과 처제가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부모님을 모시고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맛집 순방도 하고 했지만, 이번 방문길에는 부모님이 그새 쇠약해지셔서 함께 여행은 못 하고 가까운 곳에서 외식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답답했겠지만, 오랜만에 온 자식들을 본 부모 입장에선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서 좋았을지도 모른다.

이젠 후회해도 소용없는 시간이 지나고 텅 빈 방에는 아쉬움만 가득하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시가 난다는 말처럼 한동안 같이 먹고 자고 웃고 떠들고 하던 사람들이 없는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무언가를 함께할 때마다, 또는 맛있는 것을 함께 먹을 때마다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함께할 수 있겠나” 하며 농담처럼 했던 말들이 무게감 있게 남아 있다. 이제는 90을 갓 넘긴 장모님이나 90대 중반을 넘기신 장인어른을 생각해 볼 때 또 온다는 말도 다시 만나자는 기약도 쉽게 입에 담을 수가 없다.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하지만, 우리의 헤어짐은 다시 돌아와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없기에, 다시 만남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기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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