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6] 어느 짧은 가을 나들이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6] 어느 짧은 가을 나들이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1.01 07: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지난주에는 청송에 다녀왔다.
가족들이 함께하는 모임이라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우리 집에서 청송까지는 고속도로를 타면 3시간 30분이 걸리고 국도로 가면 4시간 40분이 걸린다고 네비게이션(이하 ‘네비’)이 알려줬다.

편리한 세상이다. 전에는 모르는 곳에 가려면 지도책을 보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미리 표시해 놓고 옆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지도에 표시된 길을 알려주면서 갔었다. 보통 지도책을 한번 사면 자주 바꾸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길이 생기게 되면 오래된 지도책과 맞지 않아서 종종 길이 헷갈려서 당혹스러웠던 경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웬만한 차에는 모두 네비가 장착되어 있거나, 휴대폰을 통해 네비 앱을 설치하여 네비가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가면 되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특히 나같이 길치인 사람은 네비의 출현이 어둠에 빛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아서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하나님 말씀처럼 무조건 충실히 따른다.

나와는 대조적으로 길눈이 밝은 아내는 한 번 간 길은 귀신같이 찾아간다. 그래서 함께 차를 타고 한 번이라도 갔던 길을 가다 보면 종종 다툼이 생긴다. 세상 편히 살려면 네비 아가씨와 마누라 두 여자 말만 잘 들으면 된다고 했는데, 두 여자의 의견(?)이 달라 부딪칠 때는 난감하기 그지없다. 

경처가(驚妻家)나 애처가들은 당연히 마누라 말을 따를 테니 분란이 없겠지만, 나처럼 길 안내에 관해선 네비 아가씨가 앞서간다고 굳게 믿는 사람은 마누라의 화를 자초하게 된다. 그래서 길을 나설 때마다 운전으로 인한 긴장이 아니라 두 여자가 부딪칠까 봐 더 긴장된다.  

마누라의 투정과 시샘(?)에도 불구하고 내가 꿋꿋하게 네비 아가씨 말을 따르니까 아내도 이젠 네비 아가씨와의 경쟁을 포기하고 말을 아끼며 평화를 유지하려는 듯하다. 그래서 이번 청송 여행길은 시종일관 네비 아가씨의 안내를 받으면서 평화롭게 다녀왔다. 

고속도로를 타면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길이니까 뉴질랜드에서 대여섯 시간 운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를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한국에서의 운전은 더 피곤하다. 

길이 나쁜 것도 아닌데도 더 피곤한 이유는 아마도 일단 도로에 차가 많아서 운전하면서 신경 쓰는 일이 많은 것이 원인일 것 같고, 다른 이유는 운전 시야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뉴질랜드 도로는 고속도로라 하더라도 사면이 확 트인 광활한 광야를 질러가는 길이라 보는 눈이 지겹지 않고 즐겁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는 겨울철이라도 어디에나 푸르름을 볼 수 있어서 눈의 피로도가 적기 때문에 오래 운전하더라도 덜 피곤한 것 같다.

결국 한걸음에 내질러 가지 못하고 속리산 휴게소에서 쉬었다 갔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모임에서 식사가 저녁부터 제공되기 때문에 점심도 해결할 겸 겸사겸사 휴게소에 들렀다. 
금요일인데도 휴게소에는 사람이 붐볐다. 점심시간 탓도 있지만, 코로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서 사람들의 바깥나들이가 늘어난 경향이 크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객들이 줄어 휴게소 상점들이 문을 닫고 있다는 소식이 아직도 기억에서 가시지 않았는데 이미 옛이야기가 되었다. 코로나 여파가 아직 남아있다는 증거로는 상점에 들어갈 때 여전히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밖엔 없었다. 그 외엔 어느 제약도 없어서 모든 것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청송(靑松)에 도착하니 태백산맥의 영향을 받아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공기부터가 다른 듯했다. 아산 공기와 다르다고 느낄 정도이니 서울이나 부산과 같은 대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공기가 다르다는 것이 더 실감이 날 것이다. 

모임 장소인 임업인종합연수원은 주왕산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덕분에 배정된 방에서도 주왕산 기슭의 알록달록한 단풍을 볼 수가 있어 모처럼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청명한 하늘과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든 산을 보니 소풍 나온 아이처럼 마음이 들뜬다. 

오후 모임을 마친 후 뷔페식으로 준비된 식사를 마치고 힐링 음악회에 참석했다. 예음문화예술마당이란 곳에서 주관하고 준비한 힐링 음악회는 마술공연, 해금 독주, 요들송, 하와이 훌라댄스, 팬플룻 독주, 통기타 공연, 장구 난타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다. 

출연자들이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년을 넘긴 나이로 오랜 경력을 지닌 사람들이라 아주 능숙하고 노련하게 공연을 펼친다.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지루할 틈이 없고 보는 내내 흥겹고 즐겁게 지내면서 말 그대로 힐링 시간이 되었다. 출연자마다 앙코르를 받느라고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되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 없이 오히려 짧게만 느껴졌다.

다음 날 분반 소회의를 마치고 점심 식사 후 주왕산 등반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연수원 창밖으로 주왕산에 오르려고 몰려드는 차량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일정을 바꿔 청송의 명물인 사과 농장으로 가기로 했다. 

사과 농장으로 가는 길 내내 주왕산으로 몰려드는 차량 행렬이 끝을 보이지 않고 줄지어 늘어선 모습을 보면서 계획을 바꾸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왕산 단풍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차량이 몰려드는 광경은 처음이라 그저 놀라울 뿐이고 한편으론 꼼짝없이 도로에 정체되어 기다리는 이들이 걱정되기도  했다.

청송이 사과로 유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곳곳이 사과 농장이었고 길가에도 사과 파는 노점이 늘어서 있었다. 예약된 사과 농장에 들러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평생 처음으로 사과도 따보고 내가 고른 싱싱한 사과를 한 바구니 담아 차에 실으니 마음마저 든든해진다. 

주왕산을 오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길가에 늘어선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그리고 먼 산기슭에 보이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도 충분히 가을을 즐길 수 있었다. 

이해인 시인은 ‘단풍나무 아래서’라는 시에서 사랑하는 이가 문득 보고 싶을 때나 마음속에 가득 찬 말들을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울 때 단풍나무 아래로 오라고 하면서, 단풍나무 아래서 하늘을 보면 행복하고 나의 남은 세월 모두가 사랑으로 물드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단풍이 낙엽 되어 떨어지기 전에 그토록 찬란하게 마지막을 불태우는 것을 보며 우리 삶의 마지막을 그려본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단풍에 연신 탄성을 지르며 즐겁고 행복한 여행길이었지만, 돌아오면서 마음 한구석에 슬몃슬몃 자리 잡는 애잔함은 계절 탓인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모르겠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