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비 광(光)에 서린 내력
[최승훈의 세상사는 이야기] 비 광(光)에 서린 내력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1.03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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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핼러윈 데이’ 한순간의 안전 불감증이 이태원의 커다란 참사로 번져 온 나라를 넘어 외국인들과 함께 모두의 슬픔이 된 현실이 망년자실(茫然自失) 할 뿐이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부상한 이들이 조속히 쾌유하시길 기원드린다.

요즘처럼 사건 사고가 다발하다 보니 어려운 시기를 만나면 도전하기보다 절망에 좌절하는 경향이 생기게 마련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작은 미물에 자극받아 성취를 이룬 사람이 있다. 

화투의 '비광' 속에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은 일본의 전설적인 서예가인 오노도후(小野道風, 894-967)로 실존 인물이다. 이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그는 헤이안 시대 인물로 일본에서는 후지와라 유키나리(藤原行成), 후지와라 스케마사(藤原佐理)와 더불어 산세키 (三跡)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당시 일본은 중국의 왕희지 서체를 추앙하던 시절인데 오노도후를 비롯한 산세키가 등장하면서 조다이요(上代樣)라고 불리는 일본의 독자적 서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노도후는 궁중에서 관리를 지내며 시와 서예 부문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는데, 그를 두고 왕희지가 다시 태어났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그의 서체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가 젊은 시절 큰 실의에 빠졌던 적이 있는데 그때의 일화가 비광의 배경이다. 이 실제의 이야기는 한국의 명필인 한석봉의 어머니가 아들의 공부를 위해 어둠 속에서 떡국을 썰었던 일화와 대비 된다. 

“아무리 해도 나는 안 되는구나. 이젠 지쳤어!" 오노도후는 어려서부터 서예에 입문해서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취월장하는 자신의 실력을 느꼈고, 글씨는 갈수록 힘이 붙어서 거침이 없었다. 용이 꿈틀거리는 정도는 아니라도, 자신의 글에서 살아있는 강렬한 기운이 느껴져서 스스로 감탄했다. 

‘이제 내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도 되겠지!’ 이렇게 자만할 즈음에 그는 한 스승을 만났다. 무명의 스승이 보여 준 필법의 세계 앞에 그는 크게 감명을 받았다. 스승의 필법 세계를 들여다보고 나니, 자신의 글씨는 그저 어린아이의 낙서 같이 여겨졌다. 그는 그동안 공들여 쓴 작품들을 모두 찢어버리고, 그 스승의 문하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한 획 한 글자를 마치 베어진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듯이 처절하게 썼다. 글씨에 점점 더 깊은 맛이 배기 시작했지만, 스승은 칭찬 한마디 없이 항상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더 잘 쓰도록 해라." 그는 점점 의심이 들었다. 혹시 스승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자신의 완성된 더 높은 경지를 스승 역시 모르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결국, 그는 좌절하게 되었고, 더 잘 쓰라는 스승의 말은 자신의 부족한 한계를 돌려서 말한 것으로 생각해서 비관한 끝에 서예 공부를 그만두려고 결심하게 되었다.

“아무리 해도 나는 안 되는구나. 이젠 지쳤어… 해도 해도 안 되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 아침에 그는 짐을 싸고 말았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처량해서 스승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단 봇짐을 메고 우산을 쓰고 문밖을 나섰다. 그동안 글씨에 쏟아부은 시간이 얼마였던가?

그 고생을 하고서야 자신의 분수를 깨달았다는 아쉬움과 후회 속에서 고통스럽게 허비했던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온갖 상념에 빠져서 집 앞의 버드나무 곁에서 우산을 쓰고 우두커니 서서 빗물이 홍수가 되어 흐르는 개천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뭔가가 폴짝폴짝 뛰는 것이 보였다. 조그마한 개구리 한 마리가 빗물이 불어 홍수가 난 개천 속의 작은 바위 위에 갇혀있는 것이었다.

무섭게 흘러내리는 흙탕물에 휩쓸리면 개구리는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그 바위 위로 길게 뻗어있는 버드나무 가지를 잡으려고 필사적으로 뛰어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무가지가 너무 높아 아무래도 개구리가 붙잡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 개구리의 신세가 참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했다. "어리석은 개구리야, 노력할 걸 해야지. 너도 나처럼 네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있구나."

그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여서 외면하려는 찰나에, 거센 바람이 불어 가지가 개구리 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놀랍게도 그 찰나의 순간에 또 한 번 펄쩍 뛰어오른 개구리가 마침내 그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말았다. 잠시 후 그 개구리는 버들가지를 타고 유유히 올라가 홍수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실의에 빠진 채 한참을 그곳에서 개구리를 바라보다가 봇짐을 풀어 내려놓고 나무 앞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자신에게 깨우침을 열어준 존재에게 그렇게 경배하고, 스스로 나왔던 학사로 다시 들어가 스승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며, 다시 초심으로 공부를 시작해서 일본 최고의 학자이자 서예의 명인이 되었다고 한다.

화투 “비광(雨光)” 그림의 윗부분의 검은 것이 버들가지이고, 가운데 파란 것이 개천, 왼쪽 아래 구석의 노란 것이 그 개구리이다. 그리고 가운데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오노도후이다. 비광 속에는 개구리와 버드나무, 우산을 쓴 오노도후(小野道風)가 그려져 있다

마지막 12月 그림에 오노도후 이야기를 그려 놓은 것도 뜻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여러가지 힘든 일 있어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운(運)도 실력의 일부'라는 말이 있다. 저 개구리처럼 노력하는 사람에게 행운이 따르게 마련이다. 희망을 붙들고 있을 땐, 삶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능력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을 극복하고 희망을 품으면서 오늘도 꿋꿋이 또 한 번 도전의 장으로 내달려가야 한다. 긍정적인 목표를 가진 채, 상대방을 인정해주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같이 이기는 극기의 비결이다. 

지금 비탄에 잠긴 이태원 유족과 부상을 입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신(神)조차도 바꿀 수 없는 ‘과거’를 뒤로 하고 가버린 고인들이 남겨준 ‘과거’를 보듬고 남은 사람들은 살아있는 ‘과거’를 정중히 위로하고 슬픔의 유대를 통해 아픔을 나눌 수 있다면 새로운 비극은 막을 수 있으리라 염원해 본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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