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7]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오호애재(嗚呼哀哉)라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7]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오호애재(嗚呼哀哉)라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1.08 0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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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카톡~” “카톡~”
아침부터 카톡 알람이 울려댄다. 대부분의 단체 카톡방은 무음으로 바꿔놓았지만, 놓치지 않고 알아야 할 곳이나 즉시 확인이 필요한 몇 곳만 알람을 허락해 두었기 때문에 바로 알람이 온 곳을 확인해본다.

외국에서 사는 우리 자녀들과 함께하는 가족 단톡방이다. 이곳은 아침이지만, 그곳은 한창 활동할 오후라서 움직임이 활발하다. 

핼러윈 데이를 맞이하여 자녀들과 함께 핼러윈 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들을 서로 경쟁하듯 올리는 중이다. 부모는 농부 복장이고 아이들은 바나나와 홍당무로 변신한 모습도 있고, 공주와 스파이더맨, 예쁜 마녀와 노랑 토끼, 그리고 초등학교 선생인 막내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깜찍한 미이라와 유령 등등 공들여 꾸민 핼러윈 캐릭터에 열띤 성원과 재밌는 댓글들이 달린다.

우리 가족이 뉴질랜드로 이민 가서 처음으로 맞이했던 핼러윈 날이 기억난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열어 보니 이웃 아이 둘이 슈퍼맨 복장과 유령 복장을 하고 손에 바구니를 들고 “trick or treat”이라고 하는데, 귀여운 아이들이 반갑기는 하지만 뭘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었다. 

가만히 눈치를 보니까 손에 든 바구니에 사탕과 초콜릿이 들어 있어서 “아, 사탕이나 먹을 걸 줘야 하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어 얼른 집에 있던 한국 과자를 주고 보냈다. 보내고 생각해 보니 또 다른 아이들이 올 거 같아서 우리 집 아이들이 각자 숨겨놓은 과자나 사탕을 모두 수거한 후 다음에 찾아올 아이들은 어떤 캐릭터로 꾸미고 올지 기대하며 흥분된 마음으로 기다렸던 경험이 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낯선 핼러윈 축제라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가 정말 외국에 살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다음 해 핼러윈 데이에는 한 번 겪어 보았기 때문에 적잖은 돈을 들여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사탕과 초콜릿을 잔뜩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또한 우리 아이들도 핼러윈 복장을 하고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사탕과 초콜릿 등 간식거리를 바구니 가득 받아오는 바람에 본전은 뽑았다고 낄낄대며 다양한 사탕과 초콜릿을 가족들이 각자 취향에 따라 골라 먹으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이 올려준 핼러윈 축제에 관한 카톡으로 옛 추억까지 소환하며 즐거워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했을 때는 가짜 뉴스라고 생각했었다. 

인구가 많은 인도나 중국도 아니고,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서울 한 복판에서 150여 명이 압사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났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참사를 당한 피해자 대부분이 20~30대 젊은이들이었고, 심지어 10대들도 있다고 하니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참담한 심정을 어찌 이루 헤아릴 수 있겠는가. 상가에서 의례적으로 전하던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수밖에 없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그만큼 자식을 잃은 슬픔은 오래간다.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부모를 잃거나 모두 가슴 아프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보다 더 큰 비애는 없다. 

남편을 먼저 보낸 아내는 과부, 아내를 먼저 보낸 남편은 홀아비 그리고 부모를 잃은 자식은 고아라는 말로 부르지만, 자녀를 잃은 부모를 가리키는 단어는 없다. 너무 슬픔이 크기 때문에 한 단어로 일컫지 못하고 ‘참척’(慘慽)이란 간접적인 말을 쓴다. 

참혹할 ‘참’(慘)에 슬플 ‘척’(慽)을 써서 자식을 먼저 보내는 일이 참혹하리만큼 슬프다는 뜻이다. 또한 ‘창자가 끊어지는 애달픔’이란 뜻으로 ‘단장지애’(斷腸之哀)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자식을 전쟁에서 잃은 이순신 장군은 “나도 모르게 낙담하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통곡하고 또 통곡하도다... 온 세상이 깜깜하고 해조차 색이 바래 보인다”라고 참담한 심정을 난중일기에 기록했다. 

그리고 박완서 작가는 “자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에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만 같았다.”라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살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어미의 처절한 마음을 적었다.

이태원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섣부른 위로의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입을 다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이 겪는 큰 슬픔에 공감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정신의학적으로 타인의 큰 슬픔에 공감한다는 것은 자신도 이차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150여 명의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사고에 대해 아픔을 나누고 유족들의 슬픔을 깊이 공감하는 우리 모두도 트라우마를 겪는 피해자이다. 

곳곳에 마련된 분향소의 향 내음이 가시기도 전에 벌써 마녀사냥 하듯 책임자를 따지고 추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는 일은 앞으로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 차원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또한 책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응분의 조치는 필요하다. 

하지만 혹시라도, 정말 만에 하나라도 젊은이들의 참담한 죽음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 우리의 순수한 슬픔과 공감을 사회적 분노로 부추기려 하거나, 피해자들에 대해 미안하기도 하지만 ‘고맙다’는 마음을 품는다면 도리도 아니고 유족들뿐만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애도하는 우리 모두를 욕되게 하는 일이다. 

세월호의 트라우마가 가시지도 않은 이 사회에 핼러윈 트라우마가 뒤를 잇는다.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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