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8] 개싸움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8] 개싸움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1.15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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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에서 직장 생활할 때였다.
뉴질랜드는 인종, 종교, 성별뿐만 아니라 나이까지도 차별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뻘 연령의 사람들도 직장 생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다녔던 사무실에도 할머니 연세의 직원이 있었다. 남편을 여의고 혼자가 됐지만, 자녀들과 함께 살지 않고 홀로 지내고 있는 그 직원에게 유일한 식구(?)는 기르고 있는 고양이였다. 

자기 개인 책상 위 곳곳에 고양이 사진을 붙여 놓고 마치 자식처럼 애정을 보였다. 대화 중에도 고양이 얘기가 나오면 고양이 이름이며 성질, 식성 심지어는 족보까지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집에 들어가면 얼마나 반기고 애교를 부리는지 이야기할 때면 얼굴에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그 직원에겐 고양이가 자식이자 친구인 반려동물이었다.

반려(伴侶)란 “짝이 되는 동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전에는 애완동물이란 표현을 쓰다가 요즘엔 인생의 동반자라는 의미에서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함께 지내는 동물들을 거의 한 식구처럼 대하고 있다.

이전에 텔레비전에서 아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치인 사람이 주인에게 버려진 유기견들을 한두 마리 거두다 보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개를 사육하게 된 사연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주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들을 내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키우고 있던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개들의 처지를 자신과 동일시해서 오는 동정심도 있지만, 자신을 믿고 따르면서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이는 개들에게서 얻는 위안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키워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개처럼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동물은 없을 것 같다. 주인의 성별, 신분, 나이, 빈부에 상관없이 자기 주인이란 이유로 맹목적으로 충성을 다하는 개를 볼 때마다 못된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개떡’, ‘개살구’ 등 헛되거나 쓸모없는 뜻을 나타낼 때나, ‘개꿈’, ‘개수작’, ‘개죽음’, 개망나니’ 등과 같이 부정적이거나 정도가 심한 짓을 낮잡아 부를 때 ‘개’를 앞에다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개의 본성과 충직함을 안다면 함부로 ‘개’를 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집에도 반려견이 있다. 아들 집에서 기르던 어미가 새끼를 낳아서 데려다 기른 지 한 20년은 된 것 같으니 노견(老犬)이다. 어미 이름은 “쫑아”이고 우리 집 반려견 이름은 ‘선미’이다. (’선미’라는 이름은 장인어른이 공장을 하실 때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집 아이를 데려다가 식구처럼 키워서 시집까지 보내주었는데 그 직원 이름이 선미라서 그를 그리워하며 붙여준 이름이다)

먹이를 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산책하러 나가는 것 그리고 심지어 잠자리도 장인어른과 함께하다 보니 선미의 충성 대상 1위는 당연히 장인어른이시다. 그래도 식구들을 모두 알아보고 누구라도 나갔다 돌아오면 문 앞까지 나와서 꼬리를 흔들면서 환영해준다. 얼마나 영리한지 우리가 뉴질랜드에 가서 10년 넘게 살고 돌아왔는데도 우리를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며 환영해 주었다.

배변 훈련도 별도로 시키지 않고 몇 번 주의를 주고 화장실에 신문지를 깔아주었더니 꼭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았다. 그 후로 배변판을 구입하고 배변 패드도 구입해서 깔아주었더니 익숙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가 많아서 배변 조절이 잘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배변 습관을 잊었는지, 가끔 화장실에 가지 않고 다른 곳에다 오줌을 누곤 한다. 

그러면 선미와는 견원지간으로 매사 마뜩잖아하시는 장모님이 뒤처리하시면서 “누가 데려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줘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시거나 “어디다 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씀은 심하게 하시지만, 진심이 아니란 걸 우린 안다. 

왜냐하면 밖에서 외식하거나 식탁에 고기반찬이 오르면 몰래 선미를 챙겨주시고, 물그릇에 물이 떨어지지 않았나 계속 확인하며 물 보충을 해주는 것도 장모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까이 가면 으르렁거리는 선미를 내치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 함께하며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만큼 무서운 게 없다.

요즘 장안에 ‘풍산개’ 사건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으로부터 받은 풍산개를 청와대에서 기르다가 양산 사저로 옮기면서 함께 데리고 갔었는데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시행령 문제로 파양시키면서 논란이 되었다.

이에 관해 모 방송국 대담 프로에서 야당 성향의 패널은 시행령을 바꾸지 않아서 전 대통령이 계속 키우게 되면 위법 소지가 있기 때문에 파양해서 국가에 돌려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패널이 팩트 체크라고 하면서 이미 2022년 3월 29일 관련 법령이 개정돼서, 국유재산인 동식물을 다른 ‘기관’이 맡아 기를 수도 있게 됐기 때문에 전 대통령이 사저에서 기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고 문제의 핵심은 매월 250만 원의 개 사육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 대통령 또한 직접 SNS에 글을 올리면서 사저로 옮긴 다음 지금까지 개 사룟값과 병원비를 일체 자신이 지불했으니 무상 양육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개 사육비가 문제의 한 원인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보도에 의하면 전직 대통령으로 세금 공제도 없이 매달 1,390만 원의 연금을 받고, 예우 보조금으로 연 3억 9,400만 원을 추가로 받고, 차량 지원비, 국외 여비, 진료비 등도 연 5억 2,700만 원에 달한다고 하니 혹시라도 패널이 지적한 대로 개 사육비 문제로 기르던 개를 파양했다면 참으로 남세스러운 노릇이다.

시행령 합의 문제나 비용 문제를 떠나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내가 이해되지 않는 점은 5년 넘게 기르면서 새끼까지 받았으니 정도 들고 식구같이 지낸 반려견들일 텐데 어떻게 무 자르듯이 정을 떼고 바로 돌려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집 선미가 장모님을 볼 때마다 으르렁거리고 살갑게 대하지 않는 데도 오래 함께하다 보니 정 때문에 내치지 못하고 데리고 있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까끄름하고 모질다는 한마디 말로 표현하기가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이태원 참사로 인해 온 국민이 애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개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양새는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볼썽사나운 ‘개싸움’으로밖에 안 보인다. 

진돗개처럼 한 주인만을 섬긴다는 풍산개가 사정도 모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걸 생각하면 공연히 내가 다 미안해진다.

한상익(myhappylifeplan@gmail.com)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생애설계 전문강사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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