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멀쩡한 도급마저 불법파견 만드는 파견법, 네거티브 제도로 손질 절실 
[초점] 멀쩡한 도급마저 불법파견 만드는 파견법, 네거티브 제도로 손질 절실 
  • 이윤희 기자
  • 승인 2022.11.17 0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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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고용 허가 업종도 네거티브로 전환되는 마당에...파견법은 '왜?'
단 32개 업종에만 파견 허용해놓고 도급은 걸핏하면 '위장도급' 판결
제조업 등에서 도급 계약이 위장도급, 즉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다수 기업을 범법자로 내몰며 경영을 옥죄기 보다는 파견법 개정을 통해 고용 유연성 확보와 근로자 보호를 함께 실현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제조업 등에서 도급 계약이 위장도급, 즉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다수 기업을 범법자로 내몰며 경영을 옥죄기 보다는 파견법 개정을 통해 고용 유연성 확보와 근로자 보호를 함께 실현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사진은 지난 7월 대법원이 포스코를 불법파견으로 판정하자 이를 환영하는 노동계 모습)

[아웃소싱타임스 이윤희 기자] 지난 15일 각종 언론사에서는 외국인 근로자 고용 업종 확대를 다룬 소식을 앞다투어 전했다. 중국동포를 비롯한 방문취업 동포(H-2)의 취업 허용 업종이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되며 대폭 확대된 까닭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31일 열렸던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결정된 사안으로, 정부는 호텔업 등 다수 산업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력 수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와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그동안 방문취업 동포를 고용할 수 있었던 업종은 제조업, 건설업 등 34개 서비스업에서 네거티브 방식에 따라 고용이 금지되는 22개 일부 업종을 제외한 전체 업종으로 확대된다. 

자국민으로 해소할 수 없는 인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고용의 유연성을 갖춘 선택인 셈이다. 이번 조치에 따라 정부는 숙박업, 음식점, 출판업 등의 인력 문제가 다소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면서 파견업계는 도리어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외국인 고용의 유연성은 갖추면서 업계에서 십수년째 요구하고 있는 파견법의 개정은 다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들어 명백히 도급으로 인정받아오던 제조업의 간접공정 또한 불법파견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면서 파견업계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파견업계 관계자는 "타 업종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불법 고용하지 않도록 외국인 고용 허가 업종은 늘렸으면서, 불법 파견을 양산하는 파견법 개정은 왜 이뤄지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볼멘 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 연이은 불법파견 판결...제조 전 과정을 '직고용'으로 풀어내야 만족할까
외국인 고용 허가제도가 기존에 포지티브 방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파견법은 파견 허용 업종을 포지티브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즉 일부 허용 업종을 지정·나열하고 그 외의 모든 업종은 파견을 허용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파견이 허용되는 업종이라 해도 모든 업무에 파견이 허용되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예를들어 파견법에 따르면 수위 및 경비원의 업무는 파견 허용 업종이나 '경비업법'에 따른 제2조 제1호에 따른 경비업무는 파견이 불가하다. 

이런 예외의 수를 포함해도 파견이 허용되는 업종은 단 32개에 불과하다. 파견 대상 업무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파견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근로자 파견 허용 업종
파견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근로자 파견 허용 업종

이런 데다가 최근들어 그동안 정상 도급으로 인정받아왔던 범주의 도급 행위가 불법 파견으로 치부되는 판결이 연이어 터지면서 업계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자동차 제조 산업과 같이 업 특성상 생산성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부 공정을 하도급을 통해 해결해야하는 것이 필수인 산업에서 유사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바로 포스코를 시발점으로 시작된 제조업계 불법파견 판결 사례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7월 포스코에 크레인 운전 업무를 맡은 협력업체 근로자를 직접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해당 판결 이후 업계 내에 퍼진 불씨는 각종 불법파견 줄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달 초 업계에 따르면 전국금속노동조합과 포스코 사내하청지회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대법원이 포스코 협력업체 직원을 직고용하라는 판단이 나오자 모든 사내 하청과 협력업체 소속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한다는 요구가 나오면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모양세다. 

자동차 제조업도 확대일로 중인 불법파견 판결 사례를 피하지 못했다. 현대·기아차는 사내 하도급 노동자들과 진행하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430여명의 협력업체 직원을 직고용하게 됐다. 

문제는 해당 공정이 그동안은 통상적으로 도급을 인정해오던 간접공정이었다는 데 있다. 직접공정 업무는 도급이 불가한 까닭에 직접 고용해 유지해왔으나 기타 다른 간접 업무에서도 도급계약을 불법 파견으로 볼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도급계약이 불가피한 제조업계는 난감해하고 있다.

도급 계약 후 불법파견으로 치부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는 도급인이 어떤 업무 지시도 해서는 안되며 작업 방법도 공유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협업 과정에서 공유되는 작업 공정도 지휘나 지시로 보일 수 있어 업체 입장에서는 불법과 합법 위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파견법상 제조업은 파견이 불가한데 도급조차 길이 막히면서 산업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산불처럼 번지고 있는 불법파견의 불씨는 한국지엠과 현대제철 등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제조업계의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러하자 업계는 파견법 개정을 통해 파견 허용 업종이라도 넓혀달라는 주장이 빗발치고 있다. 도급조차 원천 봉쇄되고 있는 마당에 포지티브 방식을 취하고 있는 파견 허용 업종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개편해 고용 유연성을 확보해달라는 취지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노동개혁의 방향과 성공전략' 토론회에서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파견법의 대상 업무 범위 확대가 반드시 입법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파견법이 기업의 경영을 옥죄는 족쇄가 아니라 법을 회피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기업에 대한 감시와 예방 목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골자다. 

박 교수는 "국제적인 추세에 발맞춰 파견 대상 업무 범위를 확대하고 지난 70여년간 큰 변화가 없던 노동법을 시대 흐름에 맞게 개선해야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사단법인 한국HR서비스협회 김정현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후진적인 근로자 파견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1998년 파견 법이 제정되고 시행된지 24년이 되었지만, 네거티브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선진국과 반대로 파견대상업무가 32개로 제한되어 있고 파견기간은 2년 제한 그대로다"며 "유럽, 미국, 일본, 중국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파견과 아웃소싱에 대한 규제가 거 의 없는 점을 볼 때, 이제는 우리도 국제기준에 맞추어야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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