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9] 다른 세상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99] 다른 세상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1.22 0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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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40도 훌쩍 넘긴 나이에 뉴질랜드로 이민 가서 맞이한 세상은 내가 태어나서 자란 한국과는 너무 다른 세상이었다. 남반구에 위치한 뉴질랜드는 일단 우리나라와 계절이 정반대였다. 

1999년 12월 20일 한국을 떠나는 날 한겨울이라 날씨도 혹독하리만큼 추웠지만, 우리나라를 떠나 낯선 외국 땅으로 간다는 두려움이 칼날 같은 추위보다 더 마음을 아리면서 헤집고 들어왔다.

이제 한국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으로 왠지 모를 아쉬운 마음과 미련이 마음 한구석에서 북받쳐 오르며 출국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해 겨울이 유난히 춥게 기억되는 이유는 단지 날씨 탓만은 아닐 것이다.

당장 필요한 생활용품과 옷 등으로 꾹꾹 눌러 바리바리 싸 온 이민 가방을 가족 수만큼 끌고 밀며 첫발을 내디딘 뉴질랜드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한국에서는 살을 에는 듯한 한겨울 추위로 겹겹이 옷을 껴입고 오리털 잠바로 중무장을 했었는데 몇 시간 후에 도착한 뉴질랜드에서는 반 팔 반바지 차림으로 여름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맞이했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낯설고 어색하고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다른 세상 속의 크리스마스였다. 바닷가 비치에서 듣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내가 좋아하던 빙 크로스비(Bing Crosby)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노래는 한여름에 시간을 앞당겨 듣는 것처럼 실감도 흥도 나지 않았다. 다만 내가 다른 세상에 와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뿐이었다.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은 비단 계절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자고 일어나면 만나는 이웃이 모두 외국인이고, 그들이 쓰는 말, 거리의 간판 및 도로 표지판 모두 영어로 되어 있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받아들이는 시간은 훨씬 짧았지만...

외국을 가야만 다른 세상을 느끼는 건 아니다. 같은 나라에서도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색다른 공간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을 가져다준다.

부선망 일대 독자(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로 보충역 편입을 받아 복무 중이었을 때였다. 같은 사유로 들어온 동료는 나보다 5살이나 많은 노총각이었는데, 동네에서 문방구를 오래 운영하며 돈은 모았으나 늘 가게에만 갇혀 살아서 결혼하기 전에 자유로운 일탈을 경험하고 싶어 했다. 

내가 대학생이고 전공도 연극영화과이니 그 당시 젊은이들이 즐겨 다니던 고고장을 잘 알 거로 생각하고 비용은 일체 자기가 내겠으니 고고장에 데려가 달라고 제안했다. 그 친구 덕분에 찾아간 고고장은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고 별천지였다.

70년대 후반이었으니까 군부 독재에 대항하여 대학가는 대학가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데모와 투쟁으로 세상은 온통 시끄러웠지만, 고고장 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휘황찬란한 조명 불빛 아래 가까이 귀에 대고 말해야 들릴 정도로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는 젊은이들은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들 같았다. 

그들에겐 ‘군정’, ‘독재’, ‘민주화’, ‘데모’, ‘최루탄’ 등과 같은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단어들은 아무 관계 없는 말처럼 보였다. 내일에 대한 고민 없이 오늘 그리고 바로 이 순간만을 즐기려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 큰 괴리감과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얼마 전 있었던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158명이나 되는 사람이 압사당하는 인명 사고가 날 정도로 많은 젊은이가 핼러윈 파티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으로 모여들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전혀 생소한 다른 세상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다. 

특히 자라온 환경과 세대와 공감대가 다른 노인층에는 그토록 수많은 젊은이들이 핼러윈이란 서양 문화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모여들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세대가 다른 노인층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주야로 아르바이트해가며 한눈팔 겨를도 없이 힘겹게 사는 이들에게도 다른 세상 이야기로 생각될지도 모른다.

나라뿐만 아니라 세대별로, 성별로, 직업별로, 어울리는 부류별로 우리 각자는 다른 세상을 만들며 살고 있다. 그 세상이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 한, 내가 몰랐던 다른 세상을 엿보게 될 때 비록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다른 세상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르다는 것이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이지 틀렸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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