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노인의 지혜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노인의 지혜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2.12.08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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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경찰과 소방관 500여 명이 사흘 동안 찾지 못한 실종 아동을 30분 만에 찾아내 화제를 모은 일본의 78세 남성 오바타 씨. 그가 아이를 금방 발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자원봉사자인 그는 “애들이 길을 잃으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습성이 있다”며 “이 점에 착안해 뒷산을 집중적으로 수색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노인의 지혜’는 차고 넘친다. 

자주 인용되는 ‘상속의 지혜’도 그중 하나다. 한 노인이 소 17마리를 남기고 죽으면서 큰아들에게 2분의 1, 작은아들에게 3분의 1, 막내에게 9분의 1을 가지라고 유언했다. 아무리 나눠도 답이 나오지 않자 아들들은 동네 어르신에게 답을 구했다. 

그는 “1마리를 빌려줄 테니 18마리 중 각각 9마리, 6마리, 2마리를 갖고 남은 1마리는 다시 날 주게”라고 했다. 연륜이 쌓일수록 깊어지는 노년의 지혜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의 판단력은 청년기보다 노년기에 더 성숙해진다. 인간의 2대 지능 중 하나는 기억 중심의 유동지능(流動知能·fluid intelligence)이고, 또 하나는 경험 위주의 결정지능(結晶知能·crystallized intelligence)이다. 

유동지능은 연산·기억력 등 생래적인 것으로 한창 교육받는 젊은 시절에 활성화된다. 반면 결정 지능은 훈련·판단 등 후천적인 것으로 사회 경험이 풍부한 노년 시기에 강화된다. 이것이 노인들의 의사 결정이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할리우드 영화 ‘인턴’에서 70세의 시니어 인턴 벤(로버트 드니로)이 30세 여성 경영자 줄스(앤 해서웨이)에게 ‘멘토 역할’을 해 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추장의 결단
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옛날에 나이 많은 모든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추장이 있었다. 추장의 말에 따르면 노인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백성들은 추장의 명령에 반감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장의 힘이 막강했기 때문에 복종해야만 했다. 그런데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추장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을 사람이 없는 황량한 가축 방목장에 숨겼다. 

어느 날 아침 추장은 커다란 뱀 한 마리가 목을 휘감고 있었던 까닭에 숨이 막혀 잠에서 깨어났다. 추장은 할 수 있는 한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으나 어느 누구도 그를 도울 수가 없었다. 뱀을 다룬 경험이 있는 노인들은 더 이상 살아있지 않았으며 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뱀을 떼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부모를 가축 방목장에 숨겼던 그 젊은이는 얼른 부모에게로 달려가 휘감은 뱀에게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았다. 젊은이의 아버지가 말했다. 

"얘야, 우선 쥐 한 마리를 잡아서 그 쥐를 추장의 방에 넣어라, 네가 쥐를 풀어놓으면 어떻게 될지 알게 될 것이다!" 

젊은이는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했다. 그러자 뱀은 방 안에 들어 온 쥐를 보자마자 쥐를 쫓아가기 위해 추장의 목에서 스르르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힘이 센 젊은이들이 뱀을 손도끼로 휘감아 밖으로 꺼내와 쳐 죽였다. 

추장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후에 이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누구냐고 젊은이에게 물었다. 젊은이는 자신의 부모님이 살아계시며 그 방법을 알려주신 분도 바로 늙은 부모님이라고 실토했다. 그러자 뜻밖의 진실을 듣게 된 추장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노인을 죽이라는 명령을 후회하고, 오히려 공경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 어머니의 혜안
고구려 때 박정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이 든 노모를 지게에 짊어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고려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깊은 산속에 도착한 박정승이 큰절을 올리자 노모가 말했다. “얘야, 나라의 법을 어길 수는 없다. 날이 어둡기 전에 어서 내려가라. 네가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꺽어 길 표시를 해두었다” 

박정승은 그 사랑에 감격해 노모를 다시 업고 내려와 남모르게 봉양했다. 그 무렵, 당나라 사신이 말 두 마리를 끌고 고구려를 찾았다. 사신을 “이 말은 크기와 생김새가 같다. 어미와 새끼를 가려내보라”고 문제를 냈다. 조정은 매일 회의를 했으나 묘안을 찾지 못했다. 박정승이 이 문제로 고민하는 것을 보고 노모가 말했다.

“그게 무슨 걱정거리냐. 나처럼 나이 먹은 부모면 누구나 안다. 말을 하루 정도 굶긴 후 여물을 갖다주어라. 먼저 먹는 놈이 새끼말이다. 원래 어미는 새끼를 배불리 먹이고 나중에 먹는다” 아들은 그 방법으로 어미와 새끼를 가려냈다. 

그러자 당나라 사신은 고구려인의 지혜에 탄복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박정승은 임금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고려장’을 철폐할 것을 진언했다. 그때부터 고려장은 사라졌다고 한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자신이 복을 받는다. 그리고 앞길이 항상 평탄하다.

■ 왕의 어머니
옛날에 효성이 지극한 왕이 있었다. 그 왕은 법을 어기는 사람은 40대씩 매를 때린다고 공포했는데 공교롭게도 왕의 어머니가 법을 어겼다. 그러자 신하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다. 법대로 왕의 어머니라도 벌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과 왕의 어머니인데 그럴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왕의 어머니라고 해서 벌을 주지 않으면 왕의 명령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왕의 어머니를 벌줄 수는 없다는 곤란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진 가운데 왕은 어머니를 나무에 붙들어 매도록 명령했다. 그러자 왕이 어머니를 용서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후 왕은 옷을 벗어 던지고 어머니께 달려가서 어머니를 꽉 껴안았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죄인을 사정없이 쳐라” 신하들은 차마 왕을 때릴 수 없어서 머뭇거렸다. 왕이 다시 소리쳤다. “뭣들 하는 게냐? 어서 쳐라!” 

신하들은 감히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사정없이 매를 내리쳤다. 왕은 법을 시행하는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도 잃지 않았다. 백성들은 더 한층 왕을 존경하게 되었다. 부모를 잘 공경하면 생명이 길고 복을 받는다것은 만고 불변의 진리이다. 

“지혜는 모든 부를 뛰어넘는다.”는 소포클레스의 명언 또한 이런 원리에서 나왔다. 물론 나이 든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늙어서 탐욕을 부리는 노욕(老慾)이나 노탐(老貪), 신체적·정신적으로 보기 민망한 노추(老醜)는 경계해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소리를 듣는 것도 딱한 일이다. 젊은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세대 간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노인의 지혜’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지혜로운 노인’이 되려는 노력이다. 그래야 젊은이들의 희망이 될 수 있다.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84일째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노인의 모습은 그 곁에서 응원하고 위로하는 소년의 미래상이기도 하다. 그 꿈과 용기가 소년에게 이어지고, 소년이 자라 노인이 되듯 우리 삶도 그렇게 이어진다. 그래서 노인은 ‘가정의 꽃’인 아이들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다.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한국생애설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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