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뼈대 있는 멸치(Anchovy) 
[전대길 CEO칼럼] 뼈대 있는 멸치(Anchovy)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1.1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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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멸치’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게 칼슘(Ca)이다. 허나 그것은 멸치를 통으로 먹었을 때 맞는 말이다.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먹으면 칼슘 없는 단백질만 섭취하게 된다.  

몸 길이가 12cm~18cm인 멸치는 분명히 뼈대가 있는 척추동물(脊椎動物)이다. 
멸치에는 칼슘을 물론 칼슘보다 중요한 건강 요소를 함유하고 있는 기관이 있다. 그건 바로 몸 가운데에 들어 있는 까만색의 내장(內臟)따위를 일상적으로 부르는 멸치 똥이다. 멸치가 작은 물고기로 보이지만 특수한 물고기다. 

일반적으로 물고기 항문(肛門)은 배 밑에 붙어 있지만 멸치의 항문은 꼬리 부근에 붙어 있다. 이것은 장(腸)이 이상(異常)하게 길다는 뜻이다. 다른 물고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다. “멸치는 자신보다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통 물고기의 윗(胃)주머니를 갈라보면 그 물고기보다 작은 물고기가 창자 안에 들어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멸치는 배를 갈라도 작은 물고기가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멸치는 물결에 떠다니는 미세한 플랑크톤((Plankton)을 먹고 생존하기 때문이다. 멸치는 부화(孵化)후 처음에는 동물성 플랑크톤을 먹지만 성장하면서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는다. 즉, 멸치는 먹이 사슬의 가장 아래에 있는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에서 사용되는 농약 등의 환경오염 물질이 최종적으로는 바다로 유입된다.  따라서 바다는 지구 규모로 심각한 오염(汚染)이 진행되고 있다. 오염물질의 대부분은 지용성(脂溶性)이므로 먹이사슬에 의해서 큰 물고기와 바다사자 등 해수(海獸)의 지방조직에 농축되어 들어간다. 

다랑어(마구로)의 지방(脂肪)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기분 나쁜 말이지만 다랑어의 지방을 매일 먹는 사람은 수은 등 오염된 지구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생선을 먹는 것이다. 

멸치는 그와 반대로 먹이 사슬의 맨 밑바닥에 있기 때문에 그 지방(脂肪)은 오염에서 동떨어져 있는 셈이다. 그래서 멸치의 배 속에는 플랑크톤밖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멸치를 고추장에 통째로 찍어서 먹더라도 맛이 있고 무탈(無頉)하다. 

국제PEN한국본부 35대 이사장으로 일한 ‘손 해일 시인’의 시집 <<新 자산어보>>에 실린 <통영, 기장 대변, 완도 멸치>란 명시(名詩)를 적는다.  

손 해일 시인

통영, 기장 대변, 완도 멸치 
                        손 해일

학창 시절 도시락 멸치볶음 하숙집 밑반찬에 이골나서 
지금은 혀에 인박힌 멸치 맛 
통영, 기장 대변, 남해 미조, 완도, 삼천포 등등등 
서·남해안 두루두루 멸치 안 나는 곳 없지만 
3월부터 물양장 그물털기 멸치 후리기로 시작해 
살이 통통한 4~5월이 제맛이라 

잔챙이부터 큰놈까지 상급 왕멸치는 석쇠에 굽거나 회로 먹고 
껍질 벗긴 생멸치에 초장 버무린 멸치무침
된장국에 우거지와 고춧가루로 얼큰 멸치찌개
미나리맛 멸치조림 심심풀이 술안주 생멸치에 
분골쇄신 몸 바치는 조미료까지 덩치는 작아도 뼈대 있는 가문이라
행여 어물전 망신 꼴뚜기나 흐물흐물한 문어
변신하는 카멜레온 연체동물들과 나를 비교하진 말게
아암~, 누가 뭐래도 뼈대가 있어야지 뼈대가.

전라도 전주가 고향인 손 해일 시인은 멸치 산지로 유명한 경상도 거제가 고향인 뼈대 있는 가문의 부인을 만나서 문인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거제에서 멸치 수산업을 경영하던 손 해일 시인의 장인, ‘지 산만 어르신’에 관한 비화(祕話)를 밝힌다. 

그 당시 황우(黃牛) 그림으로 유명한 이 중섭(李重燮) 화가(畫家)가 일본 밀항(密航)을 기도(企圖)했다. 이 사실을 알고 남몰래 이 중섭 화백의 일본 밀항을 주선(周旋)하고 경비 일체를 흔쾌히 지원해 주었다. 

이런 미술사적 기록은 남 관 화백이 <<계간 미술>>에 기고한 글에 나온다.     

"덩치 큰 문어가 이쑤시개 같은 멸치에게 청혼을 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그 이유는 뼈대 있는 집안에 어찌 뼈대도 없는 문어를 들일 수 있느냐?"란 유머를 보탠다. 

우리네 혼사에도 뼈대 있는 가문을 확인하듯이 말이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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