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2]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다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2]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2.21 0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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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뉴질랜드에서 직장 생활할 때의 경험이 아직껏 떠오르는 걸 보면 내가 받았던 충격이 컸던 것 같다.

해밀톤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오클랜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설 전문 대학에서 법률 고문과 운영 관리 책임자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이 학교는 주로 외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졸업 후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하여, 뉴질랜드에서 영주권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중국과 인도가 인구가 많은 만큼 등록하는 유학생이 가장 많았고, 이외에 한국, 일본 및 동남아 그리고 중동 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유학을 왔고, 이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나라별 담당 직원이 각각 고용되어 있었다. 

프로그램 운영과 강사들을 관리하는 학장과 부학장 그리고 프로그램 담당 강사들은 대부분 뉴질랜드나 영국인들이었다. 한국인들은 주로 사무직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학생들 수업에 쓰이는 모든 컴퓨터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이 하나 있었다.

나는 전반적인 학교 운영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학장과 부학장 그리고 각 프로그램 팀장들이 참여하는 커리큘럼 협의 모임뿐만 아니라 직원들 모집 및 인사 관리 그리고 유학생들의 입학과 학사 관리도 맡고 있었다. 

한국인 직원 중에서는 내가 제일 높은 직책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의 고충과 불만 사항 및 건의 사항들도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역할도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인 직원과 가깝게 지냈다. 

특히 모여서 함께 근무하는 사무직 직원들과는 달리 혼자 떨어져서 근무하는 컴퓨터 담당 직원과는 더 가깝게 지냈다. 잦은 컴퓨터 말썽 때문에 자주 만나 이야기하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개인적인 사정도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웠다. 

그런데 이 직원으로부터 오랜 뉴질랜드 생활 동안에 처음으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자식을 키우는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면서 다소 내향적인 사람을 나름 잘 보듬어주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찍힌 발등으로 인한 외적 피해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내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도 선뜻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던 이유는  학교 이사장의 평판 때문이었다. 그와 거래하는 대부분의 한국인 사업자와 학교 졸업생들의 뒷담화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는데, 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독단적으로 학교 운영을 하면서 불거지는 문제였다.

그래도 내가 변호사 신분이라 위법적인 일에 동조하지 않을 것을 알 것이고, 나  자신이 중심을 잡고 있으면서 좋지 못한 평판도 바로잡아보자는 생각으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내 생각이 순진했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이사장이 지향하는 바는 분명했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제공하여 뉴질랜드에서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주려는 교육적 철학이나 목적보다는 어떻게든지 많은 학생을 유치하여 이윤을 얻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유학생들 입학 및 학사 관리를 하는 데 있어  뉴질랜드에서 정한 학사 규정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여러 번 이사장에게 사태의 심각함과 위험성을 알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학장 및 부학장과 함께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학교의 장래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의견일치를 보았다.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견 교환이 있었는데,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이사장의 눈치가 보여서 주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나누었다. 그리고 마침내 학교 지분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실질적으로 학교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호주에 있는 이사장의 형과 형수에게 우리의 우려가 담긴 의견서를 보내기로 했다. 

거기에는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학교 운영을 위해서는 위법도 서슴지 않고 주먹구구식 운영을 하는 현 이사장을 퇴임시키고 전문 경영인을 두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제안서는 우리 모두의 의견을 반영하여 학장 이름으로 보내기로 했다. 이런 모든 과정을 이메일로 주고받았고, 주고받은 메일은 바로 모두 삭제했다. 이사장의 퇴임 건의도 담긴 일종의 쿠데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주고받고 삭제시킨 메일 모두를 컴퓨터 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그 직원이 복구하여 이사장에게 보고했다. 사전에 나에게 일절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에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일이 황당하고 더 심한 배신감을 느꼈던 이유는 그가 컴퓨터 관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의 현 상황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그에 대한 우려를 나눈 적이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우리 의견에 동조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들의 충정 어린 거사(?)는 물거품이 되었고, 나를 포함한 주동자들은 이사장의 눈 밖에 나서 심한 후폭풍을 겪어야만 했다.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니 내가 그 직원에게 발등이 찍혔다고 생각했듯이 이사장도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고 느꼈을 것이다. 의도의 정당성과 학교를 위한 충정 어린 마음은 그다음 문제이다.

우리 대부분은 살면서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산속에 들어가 홀로 살지 않을 바에는 어차피 삶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 수밖에 없고, 나중에 발등을 찍힐망정 그래도 믿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인 것 같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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