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5] 3월에 봄을 그리워하며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15] 3월에 봄을 그리워하며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3.14 0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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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나는 한국에서는 일 년 중 3월을 제일 좋아한다. ‘한국에서는’이란 단서를 단 것은 뉴질랜드에서 살 때는 10월을 제일 기다렸고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3월이나 뉴질랜드의 10월은 모두 봄과 연관이 있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봄을 좋아하기 때문에 봄을 맞이하는 달을 좋아하게 됐다.

한때는 겨울을 좋아했던 적이 있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부는 겨울은 싫지만, 날이 쨍하고 명징(明澄)하면서도 코끝이 얼얼할 정도로 추운 겨울 날씨는 움츠러드는 마음을 바로잡게 해주었다. 거기에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하늘의 선물인 함박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면, 없던 감성도 되살아나면서 아련한 그리움에 젖은 낭만 가객이 되어 샌티한 팝송을 흥얼거리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꺼져가는 장작불의 희미한 불빛처럼 감성이 시나브로 메말라져서 낭만보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다보니, 겨울철이 되면 찬바람에 감기 걱정이 앞서고, 눈이라도 내리면 눈길에 넘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되고 눈이 녹아 길이 지저분해지면 차가 더럽혀지게 될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다 보니 좋아하는 계절도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봄을 맞이하는 3월을 좋아하게 되었다.

봄은 기상학적으로 보통 양력 3~5월을 말하지만, 우리 세시풍속에서 봄은 음력 1월에서 3월까지로 보았기 때문에 사계절의 시작이고 한 해의 시작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서로 한 해를 묘사하는 방식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양력으로 한겨울에 맞이하는 새해에 세운 결심이 흐트러졌다 하더라도 봄이 한 해의 시작점이라는 생각으로 봄바람이 부는 3월에 다시 마음을 추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시작하려면 두툼한 옷을 벗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듯이 옷차림조차 가벼워지는 봄은 새로운 시작을 하기 좋은 계절이다. 학교도 모두 봄기운을 느끼는 3월에 맞춰 새롭게 시작하고 학생을 맞이한다.

봄은 겨우내 추위를 견디기 위해 빼앗긴 따뜻한 기운을 되찾는 채난(採暖)의 시간이다.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힘을 불어넣고 생기를 되찾는 때이다. 자연이 먼저 때를 알고 꽃망울을 터트리고 꽃을 피운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서 3월 표현을 보면 “삼월은 모춘(暮春)이라 청명(淸明) 곡우(穀雨) 절기로다, 춘일이 재양(載陽)하야 만물이 화창하니 백화는 난만하고(爛漫) 새소리 각색이라 당전(堂前)의 쌍 제비는 옛집을 차자오고 화간(花間)의 벌 나비는 분분히 날고기니 미물도 득시(得時)하여 자락(自樂)함이 사랑홉다... (후략)라고 기록하고 있다.

옛날에는 모두 음력을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에 3월을 늦은 봄(暮春)이라고 표현했다. 만물이 화창하고 온갖 꽃들이 난무하고, 떠나간 제비도 대청으로 돌아오고 벌 나비도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활기찬 봄날을 묘사하고 있다. 

미물조차 때를 알고 스스로 즐긴다는 3월이다. 그래서 3월을 아름답고 기쁜 달이란 의미로 희월(喜月)이라고도 한다.

3월은 생명의 시간이다. 김명배 시인은 ‘3월 한일’(閑日)이란 시에서 3월의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 봄바람은/ 젊은 아내의 살내를 싣고 오는가/ 다시 살고 싶게 한다/ 봄바람은 땅속 깊이 묻어둔/ 상처난 씨앗마저 흔들어 깨워서/ 한 세상 다시 살라 한다... (후략)”

봄은 삶의 겨울을 힘들게 견디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다시 살 수 있는 힘을 준다. 얼어붙은 대지에서 죽은 줄만 알았던 꽃들이 다시 피어나게 하여 우리가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용기를 갖게 한다. 

나도 3월에 봄바람이 살랑이면서 겨울을 밀어내면 그동안 춥다고 미뤄왔던 일들을 끄집어내 새로 시작할 준비를 한다. 느즈러졌던 마음을 다시 고쳐잡는다. 무언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도 이때다.

박목월 시인도 이즈음에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그는 ‘3월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라는 시에서 이렇게 적었다.

“...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는/ 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 (중략)/ 무슨 일을 하고 싶다/ 엄청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엄청나고도 착한 일은 아니더라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다. 그것도 어려우면 사랑하는 일이라도 하고 싶다. “... 너희도 노래하고 서로 사랑하라.”고 한 헤르만 헤세의 권고처럼...

3월을 영어로 ‘March’라고 하는 데 이 단어에는 ‘행진’이란 의미가 있다. 3월은 겨울에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떨쳐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전진하며 진보하는 달이다. 이것이 봄이 3월을 빌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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