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출발점 선 직무성과급제, 이번엔 완주할까
[이슈] 출발점 선 직무성과급제, 이번엔 완주할까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3.20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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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계 개편 여론조사 결과 '반대'가 절반 이상...국민 여론 부정적
정확한 평가지표 마련 없이는 분란 소지만 가득
<윤석열 정부가 임금불평등 해소를 위해 꺼내든 직무성과급제에 대한 각계각층의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과연 직무성과급제를 향한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세인의 시선이 몰리는 중이다. 사진은 지난해 한국노총이 주최한 임금불평등 해소를 위한 임금체계 대안 모색 토론회 장면. 사진 제공 한국 노총
<윤석열 정부가 임금불평등 해소를 위해 꺼내든 직무성과급제에 대한 각계각층의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과연 직무성과급제를 향한 시도가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세인의 시선이 몰리는 중이다. 사진은 지난해 한국노총이 주최한 임금불평등 해소를 위한 임금체계 대안 모색 토론회 장면. 사진 제공 한국 노총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전 정권의 무능한 노동정책을 꼬집어온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근로 시간 확대와 임금 체계 개편이다. 운을 띄우기 무섭게 격렬한 반대여론에 봉착한 근로시간 확대와는 달리 호봉제 폐지를 골자로 한 임금체계 개편안은 조만간 본격적인 협상 테이블에 올려질 것이 유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호봉제로 대표되는 현재의 연공임금 체계에 불만을 드러낸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MZ세대 상당수가 성과에 따른 차등보상과 비교해 연공급제가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현 정부는 자신들의 의지를 충분히 반영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7월, 개혁 방안 논의를 위한 컨트롤타워로 고용노동부 내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하고 개편안을 심도 깊게 논의하고 있는 상황. 이에 따르면 정부는 개인의 성과와 기업의 실적이 보상에 반영될 수 있도록 현재 연공형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호봉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임금체계 개편안을 들고 나온 논리는 명확하다. 하는 일의 중요도나 가치가 다르면 임금도 달라야 하고, 같은 일을 하는 경우 성과를 더 많이 낸 사람이 임금을 더 받아야 한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다. 또한 직무성과급제가 임금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 또한 정부의 개혁에 힘을 보태고 있다.

■ 사회 변화상 반영 못하는 호봉제 폐지는 당연해

우리나라의 기본급 체계 도입 사업장 현황. 기업 규모가 클수록 연공성이 강한 호봉급을 취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의 기본급 체계 도입 사업장 현황. 기업 규모가 클수록 연공성이 강한 호봉급을 취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힘을 얻은 정부는 지난 2월 상생임금위원회를 발족하고 보다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갈 것을 천명하고 나섰다. 사실 호봉제의 폐단을 적시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친노동자 성향을 지녔던 지난 정부에서도 이와 관련된 시도가 있었을 만큼 기존의 임금체계에 대한 개편 필요성은 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노동계의 반발이 극심한 만큼 이번엔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반드시 개편안을 통과시키기겠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목소리다. 

정부가 그를 자신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호봉제로 대표되는 기존의 임금 체계가 첫 선을 보인 것이 벌써 70년 전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변화하는 사회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구시대적 유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에서 그를 좌시할 수 없다는 것. 친노동자 성향이 강했던 문재인 정부가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하려 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는 호봉제로 대표되는 기존의 임금 체계에 비해 여러모로 합리적인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익히 알다시피 직무성과급은 근로자가 조직 안에서 행하는 직무의 가치와 성과에 따라 급여를 차등화하는 임금체계다. 호봉제는 직무, 성과와 무관하게 매년 오르는 호봉에 따라 기본급을 높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가치의 업무를 수행해도 연차가 같으면 동일한 임금을 받지만, 직무성과급은 그렇지 않다. 근로자가 맡은 직무의 특성과 성과가 임금에 크게 반영돼, 일한 만큼 합리적인 대가를 받을 수 있으며, 이는 근로자 스스로 자기 계발과 성과 창출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역시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기업들이 직무, 성과에 따른 임금 차등화를 도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에 비하면 호봉제가 전체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지난해 6월 고용부의 사업체 노동력 부가조사에 따르면 전체 산업에서 호봉급과 직능급 운영 비율은 13.7%를 차지했고, 직무급은 10.8%에 그쳤다. 노동조합이 있는 1000인 이상 대기업의 경우 호봉급이 80.6%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직무급은 34.5%, 직능급은 23.3%에 불과했다. 시장 영향이 큰 대기업일수록 호봉제 비율이 높았다.

과거 우리나라가 급격한 성장기일 때는 호봉제로 인한 부담이 크지 않았지만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무역수지 적자 누적 등으로 성장률이 크게 하락하면서 직무성과급 도입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대내외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기업의 이익은 주춤하는데, 임금은 이와 무관하게 꾸준히 올라가는 구조이다 보니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 경제가 현재의  저성장 국면을 극복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직무성과급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성과보상과 동기부여 측면에 있어서 한계를 보이는 지금의 연공급 체계로서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경영계의 목소리는 그래서 더 설득력이 있다. 

■ 과도한 성과주의, 노동자 옥죌 수단 전락할 수도

고도 성장기에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호봉제는 적잖은 부작용을 노출해왔다. 장기근속 고연봉자를 줄이기 위해 조기 퇴직이 일상화됐고, 근속기간이 짧은 비정규직에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윤석열 정부만이 아니라 역대 정부에서 한결같이 호봉제 폐지를 강조했던 것도 이런 이유였다. 그럼에도 노동계가 이를 극구 저지하겠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담보되지 않은 성과급 도입이 노동자들의 상황을 훨씬 더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한국노총이 주최한 ‘임금불평등 해소를 위한 임금체계 대안 모색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 상당수가 이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 것이 그 증거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객관적인 직무가치 차이를 측정할 수 없으며, 육체노동 및 작업조건에 대한 저평가와 사회적 가치 미비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도 필수”라며 “직무급제를 도입하려면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고, 직무평가에 노사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초기업 수준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산별연대임금 같은 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섣부른 성과급제 도입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비단 노동계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반 노동자들 역시 이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에 관한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 50.7%가 직무·성과급제 임금개편에 ‘반대한다’고 응답한 것이 그 증거다. ‘찬성한다’는 응답은 33.3%,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16.0%였다. ‘반대’ 응답은 40대에서 59.4%로 가장 높았고, 60대 이상에서 40.6%로 가장 낮았다. ‘찬성’ 응답은 60대 이상에서 43.5%로 가장 높았고, 18~29세에서 27.9%로 가장 낮았다. 임금노동자 기준으로는 ‘반대’가 58.4%로 가장 높았고, ‘찬성’이 26.2%, ‘잘 모름’이 15.4%였다.

절반 이상이 성과급제 도입에 반대한다는 응답을 보여준 정부 임금체계 개편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 자료제공 한국노총

국민 58.6%는 ‘직무·성과급제가 임금격차 해소에 도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도움 될 것’이 30.5%, ‘잘 모름’이 10.9% 순으로 나타났다. 임금노동자에서는 ‘도움 되지 않을 것’이 65.9%로 높았다. ‘도움 될 것’이 24.8%, ‘잘 모름’이 9.3% 순이었다. ‘직무·성과급제를 도입해야 기업별·세대별 임금 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정부 견해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근무연수에 상관없이 성과에 따라 급여를 지급한다는데 일반 노동자들이 우려를 표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제대로 된 평가기준 없이 주관적인 평가를 일삼는다면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명확한 기준, 그리고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성과급제는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학계에서는 직무급제를 도입하려면 직무급제의 요소를 명확히 하고, 평가 기준부터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말 비판사회학회는 '경제와 사회' 리포트를 통해 "직무급이 임금 불평등 완화에 기여하기 위해선 타당한 직무분석으로 공정한 직무 가치를 도출해야 한다"며 "유사한 직무 정보를 조직 안팎으로 공유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직무평가 기준과 가치를 기업만 아는 게 아니라 직원들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대성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직무성과급제가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평가지표 공개와 이의제기 절차의 실질적 보장 등이 필수적”이라면서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를 바꾸기 위해 직무성과급 확대가 사측에만 유리한 것이 아님을 설득하는 동시에, 노동계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수위를 조율하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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