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허울뿐인 비정규직 차별시정제, 바꾼다는 말만 무성
[초점] 허울뿐인 비정규직 차별시정제, 바꾼다는 말만 무성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3.28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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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평균 신청건수 200건에도 못 미쳐
신청하면 미운 털 박혀 계약해지 가능성 커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제정된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가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면서 이를 현실에 맞게 고쳐야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제정된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가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면서 이를 현실에 맞게 고쳐야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똑같은 일을 하고도 단지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적은 임금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비정규직의 현실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상식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방증이다.

정부 역시 이를 잘 인지하고 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법으로 이를 명시하면서까지 이를 구체화하고자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지난 2007년,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를 만들었다. 이의 근거라 할 것이 바로 기간제법 제8조 제1항이다.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자임을 이유로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 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법으로 명시하기까지 했지만 익히 알다시피 여전히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상존한다.

법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회적 인식이나 제도적 맹점이 한 원인이고 거기에 더해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 시정제도의 허술함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제도 맹점 개선하겠다는 정부 발표 믿을 수 있나
지난 3월 7일,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은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 전문가 간담회'를 열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중 대표적 사례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불합리한 임금 격차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할 과제라고 강조하면서 현행 차별시정제도의 개선을 다짐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미 법 제정 이후, 수차례 불거져 나온 이야기였고 그럼에도 여전히 시정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고용부 고위관료가 직접 나서 의지를 천명했으니 다시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대의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다. 권 차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차별시정제도 본래의 취지에 집중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같은 보상을 받는 공정한 보상체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비교대상 근로자 판단 범위 확대 등 현행 차별시정제도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을 노동시장 이중구조 대책의 하나로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가운 일이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이 제도가 지닌 구조적 한계를 스스로 자인한 것이기도 했다. 당 법의 실행권자인 고용노동부 고위관료가 직접 시인했을 만큼 이 법은 그간 여러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왔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절대적 을이라 할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눈앞에 닥친 불이익을 시정하기 위해 자신의 고용주인 회사와 척을 질 용기를 낼 수 있냐는 점이다. 실제로 차별신청 제기 후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하거나 계약 해지를 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불이익을 시정하려다 해고를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이다. 

단적인 예로 차별시정제도가 도입된 후 첫 신청 사례였던 농협중앙회 고령축산물공판장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일부가 사측으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한 것이 그 증거다. 당장 법의 권위가 가장 강력했을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신청자가 그 지경에 처했으니 이후 노동자들이 이 제도를 선뜻 이용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용기를 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했던 것은 그만큼 자신들의 처우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는 뜻이다. 도입 이듬해 총 1296건을 기록할 만큼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 열풍이 뜨거웠지만 이는 반짝 열풍에 불과했다. 그 다음해인 2009년 신청건수가 불과 70건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후 신청건수는 한해 평균 100에서 200건을 유지할 만큼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앞서 말한 해고의 공포도 큰 몫을 했지만 그보다는 그 실익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이 컸다. 용기를 내 신청을 하더라도 비교 대상이 되는 정규직의 유사·동종 업무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다 보니 차별을 인정받기 어려운 점도 걸림돌이다. 법 도입 첫해인 2007년, 도로공사 기간제 노동자들이 차별시정제도를 신청했을 때 “비교대상인 정규직 노동자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던 것이 그를 잘 보여준다.

■ 노동자 신청해도 절반은 구제 못 받아

제도를 이용하고 싶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발목을 가로막는 것은 한 둘이 아니다. 그런 부정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진정한 권익을 향상시켜야 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자료 제공 고용노동부
제도를 이용하고 싶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발목을 가로막는 것은 한 둘이 아니다. 그런 부정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진정한 권익을 향상시켜야 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자료 제공 고용노동부

사용자들이 이 같은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비정규직의 직군·업무를 분리해 비교 대상을 없애거나, 비정규직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차별시정 구제는 더욱 어려워진 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시정제도에 손을 벌리지 않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해봐야 이길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아는데 굳이 해고나 계약해지의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총 5년에 걸쳐 처리된 사건 중 ‘비교대상 근로자 없음’ ‘당사자 적격 없음’ 등을 이유로 기각, 각하된 비율이 2018년 18%에서 지난해 43.6%로 늘 정도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기가 어려워졌을 정도다.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차별시정 신청건수가 2019년 204건을 기록한 이후 2020년 122건, 2021년에 165건, 그리고 지난해엔 불과 193건에 그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겉보기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 철폐를 부르짖는 허울 좋은 이 법이 실제론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구색 갖추기용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 역시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차별시정제도 전문가 간담회'에서 이와 관련된 문제점들이 적시되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날 발제를 맡은 권혁 부산대 교수는 사후적 차별 구제 외에도 사용자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요인이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하고 개선해 차별로 인한 갈등과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사전적 차별 예방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상헌 서울시립대 교수는 차별적 처우의 기준을 구체적 예시로 제시한 일본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나라도 사용자와 근로자가 차별 해당 여부를 쉽게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차별 판단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무법인 사람 김병진 안전문제연구소장은 이와 관련해 “비정규직 보호법의 실효성을 전면 재검토해 산업현장의 실정을 반영한 보다 실질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면서 “노사 관계의 특성을 무시한 법률과 차별 시정 제도의 취지에 맞는 적극적인 법률 해석을 노동위원회에서 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을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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