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저녁 없는 삶 사는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근로자
[초점] 저녁 없는 삶 사는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근로자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4.04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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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휴가 사용은 언감생심, 휴일에도 일하기 일쑤
비정규직의 47.2%가 유급 연차 휴가 자유롭게 쓰지 못해
법으로 정해진 연차휴가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그 권리를 누리고 있지는 못하다.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에게 연차휴가는 유독 박하기만 하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세상이 변하고 있다. 특근에 야근을 해서라도 수입을 늘리려던 과거 세대와는 달리 MZ 세대는 정해진 만큼 일하고 제대로 쉬는 것을 더 선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이른바 워라벨 열풍이 그것인데 이를 가능케 하는 제도 중 하나가 바로 연차 휴가다.

노동자의 권리를 사수하기 위해 제정된 근로기준법이 명시하고 있는 연차휴가지만 의외로 많은 노동자들이 이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연차휴가를 주라고 말해도 사업주가 듣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법이 그렇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업 분위기 역시 특정 부류에게만은 박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그렇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가 이에 해당된다. 그들에겐 연차휴가는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덕분에 오늘도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과로사의 공포에 떨고 있는 중이다.

■ 연차휴가 자체도 없는 경우가 허다해

기존 52시간 체제에서도 비정규직의 근무시간이 월등히 높은 상황이지만 오히려 연차 휴가 활용은 훨씬 어렵다는 것이 아이러니라 할 밖에 없다. 자료 고용형태별 장시간 노동 비율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기존 52시간 체제에서도 비정규직의 근무시간이 월등히 높은 상황이지만 오히려 연차 휴가 활용은 훨씬 어렵다는 것이 아이러니라 할 밖에 없다. 자료 고용형태별 장시간 노동 비율 *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얼마 전 정부가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을 두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거센 반발이 빗발쳤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주 52시간을 전면적으로 개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던 때문이었다. 이전부터 우리 근로자들이 과도하게 일을 많이 한다는 지적이 뒤따랐고 그를 시정하기 위해 제정된 주 52시간 근무제는 이젠 누구나가 인정하는 근로자 복지의 차원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 제도를 노동개혁이라는 이유로 바꾸겠다고 천명하자 일부는 날을 세우며 비판의 의견을 비추고 있다. 이런 비판에 정부는 단순히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닌, 보다 효율적인 시간 관리 체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고용부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1주 최대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확대해서 1주일에 최대 80.5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노동개혁의 핷미이다. 초과된 시간만큼 휴가를 편성해서 근로자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것이 정부의 발표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 평균 근로시간을 잘 관리하고 장기휴가를 활성화해서 과로를 없애고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는 부언도 뒤따랐다. 결국 일이든 휴가든 몰아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의 의견을 보이는 이들은 여기엔 심각한 오류가 내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법이 정해놓은 휴가조차 실제로 기업 현장에선 맘 놓고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그나마 대기업이나 복지 체계가 잘 구축된 현장에선 설득력을 얻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일만 많이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얼마 전 직장갑질 119가 발표한 직장인 연차휴가에 관한 설문조사였다.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47.2%가 유급 연차 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49.4%, 월 150만 원 미만 임금노동자의 55.6%는 자유로운 휴가를 쓰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단체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응답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평소 연차 휴가를 사용하는 데에도 고용 형태나 직장 규모, 임금 수준에 따라 격차가 크다는 것. 정규직 노동자 80.3%가 연차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비정규직은 41.0%에 그쳤다. 비정규직 44.0%는 연차 휴가 자체가 없다고 답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46.1%가 연차 휴가가 없지만 중앙·지방 공공기관(80.4%)이나 300인 이상 사업장(75.9%)에선 자유롭게 연차 휴가를 쓰는 편이라는 대목이 더 쓰라리다. 결국 가진 것 없고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취약 계층 근로자들의 희생이 강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술 더 떠 비정규직 노동자의 44.5%는 법정 공휴일에도 ‘평일과 동일하게 일한다’고 답했을 정도였다. 이는 정규직(7.3%)의 6.1배 수준이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44.2%도 법정 공휴일에 출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정이 이런데 정부는 휴가를 몰아 쓰는 노동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의 부아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70년전 제정 근로기준법 시대상 반영 못해
취약 계층 근로자들이 자신의 온전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코 근로기준법의 흠결에 있다. 법이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업주가 노동자의 권리를 앞서서 챙기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근로자수가 5인 미만인 사업장의 경우 연차휴가, 해고제한, 연장·야간·휴일가산수당, 연장근로제한 등이 적용되지 않아 연차휴가를 근로자에게 부여할 의무가 없으니 사업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도외시한 채 근로자를 먼저 챙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를 지킨다며 등장한 근로기준법이 외려 70년 동안 힘없는 노동자들의 발목을 잡아온 셈이다. 그간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쏟아져나왔지만 비정규직이나 5인 미만 사업자 등처럼 취약한 노동자들을 위한 배려가 이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시장 조정을 언급한 노동개혁을 앞세우는 입장이라 당장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려는 기색은 아니다. 다만 기존 근로기준법의 단계적 적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고용부는 지난 1월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직원이 4명 이하인 모든 사업장에 단계적으로 주52시간제, 연차휴가 등을 추진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보고했다. 대통령 직속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논의를 거쳐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를 점차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56조), 연차유급휴가를 줘야 한다는 규정(60조),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제한 규정(24조), 부당해고 시 구제를 신청할 수 있게 한 규정(28조) 등을 적용 받게 된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수차례 개정을 거치며 1998년 5인 이상 사업장까지 범위가 넓어졌지만 여전히 4인 이하 사업장은 일부 조항만 적용하고 있다. 영세사업장의 형편이 어렵고 법을 지키는지 일일이 감독하기에는 정부의 손이 부족하다는 현실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의지다.

이에 5인 미만 소사업장의 대표적 형태인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결국 근로자의 권리를 확충한다는 취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부분임을 고려한다면 이는 정부의 의지대로 작용할 확률이 높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법의 취지와는 달리 현장에서의 순탄한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법 집행이 엄격하게 적용될 수 있는 보장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도,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도 똑같이 일을 하는 소중한 노동자들이다. 그들을 배제한 구태적 근로기준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

지난 2021년 업무상 질병으로 사망해 산재보험에서 승인받은 노동자는 총 1252명이었다. 그중 과로사한 노동자가 509명이었다. 정확한 통계가 없어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그중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가 상당수 포함되었을 것이란 점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연차휴가 하나 내는 것도 힘겨워하는 이들이니 과로사의 직격탄을 맞는다 한들 이상하지 않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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