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공짜야근 주범 포괄임금제 폐지 두고 입장차만 확인
[초점] 공짜야근 주범 포괄임금제 폐지 두고 입장차만 확인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4.24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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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수준 저하, 장시간 근로 등 심각한 문제 발생시키는 악습
개편은 해도 폐지는 어렵다는 정부 태도에 근로자들만 울상
야근을 하고 철야를 해도 그 대가를 받을 수 없게 만드는 현대판 노비문서 포괄임금제를 두고 폐지의 목소리가 높지만 제대로 된 답을 찾기는 힘든 상황이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공짜야근의 주범인 포괄임금제 개편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것일까. 최근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포괄임금제 척결을 위한 일련의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것이 포괄임금제 폐지와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근로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특히 IT와 게임업계 등 포괄임금제가 만연한 업종의 근로자들에게는 귀가 뜨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도 결국 아무 성과 없이 공을 현 정권에 넘긴 뒤라 그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냉정하게 보자면 이번에도 포괄임금제 폐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노동자와 경영계 양쪽의 목소리가 워낙 첨예하게 부딪치는 사안이라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준다는 것이 부담이 갈 수밖에 없는 탓이다. 친노동자 정책을 다수 실행한 문재인 정부조차도 결국 포괄임금제 폐지에 실패한 것을 보면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야당과 노동계는 포괄임금제 폐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될 모양새다.

■ 노동자 대다수는 포괄임금제 폐지 바라지만
포괄임금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슈로 부각되는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특유의 정체성 때문에 사업주들이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합당한 대가 없이 착취할 수 있게 하는 현대판 노비문서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회사와 포괄임금에 동의하는 임금협정을 맺었을 경우, 노동자들은 얼마를 더 일하건 자신이 일한 노동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포괄임금제다. 이런 포괄임금제가 가장 횡행하는 곳이 바로 IT와 게임업계다.

업무 특성상 일이 몰릴 경우 야근과 철야를 수시로 반복해온 이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업종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포괄임금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월, 화섬식품노조 수도권지부 IT위원회가 IT·게임 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에 응한 111개의 회사 중 포괄임금제를 사용 중인 회사는 84곳(76%)으로 여전히 많은 회사에서 포괄임금제가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로자 10명 중 8명 남짓은 포괄임금제 폐지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료제공 화섬식품노조 수도권지부 IT위원회
근로자 10명 중 8명 남짓은 포괄임금제 폐지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료제공 화섬식품노조 수도권지부 IT위원회

또한 포괄임금제 사업장이라 응답한 84곳 중 74곳(88%)의 사업장에서 장시간 노동이 만연해 있었다고 응답해, 포괄임금제가 장시간 노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다. 설문에 응답한 노동자들은 포괄임금제를 ‘임금을 줄이고 장시간 노동하게 만드는 제도’라고 정의하며, 포괄임금제가 인력 자유이용권처럼 악용돼 쓰이고 있다 보니 야근을 당연시 여기는 풍토가 있다고 증언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도 있다. 지난 4월 2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초과근무를 하고 있는 직장인 중 초과근로 수당을 받고 있다는 응답은 41.3%(210명), '받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58.7%(299명)였다.

초과근로수당을 받지 못하는 직장인 중 34.1%는 ‘회사가 이유 없이 수당을 전액 주지 않는다’, 27.4%는 ‘포괄임금제 실시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이유 없이 수당을 주지 않는 경우는 법적 구제라도 가능하지만 포괄임금제 덕에 수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구제조차 불가능하다. 일을 하고도 그 대가를 청구할 수 없다는 의미다. 결국 일부 악덕 사업주들이 포괄임금제라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러 유사한 조사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포괄 임금제 운영엔 여러 까다로운 제약이 따른다. 포괄임금제는 원칙적으로 근로시간의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게 그것. 그럼에도 개별 기업에서는 근로시간 및 임금 계산의 편리함을 이유로 근로시간 산정의 어려움 여부와 관계없이 다수의 분야에서 활용되어왔다. 이럴 경우 노동자들의 권리 구제는 쉽지 않다. 

포괄임금제라는 것이 노동관계법 어디에도 적시돼 있지 않은 제도인 탓이다. 기본적으로 포괄임금제는 법원 판례에 따라 관례처럼 사용되는 기형적인 제도다. 명문화된 조항이 없는 탓에 해석에 따라 적법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제도라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와 관련된 다툼이 생겨 법의 대답을 구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천차만별이다. 때론 노동자의 손을, 때론 사용자의 편의를 이해한다는 입장이어서 노동자들이 이와 관련해 법의 힘을 빌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포괄임금제는 그래서 책임 있는 정부기관이 앞장서서 깔끔한 교통정리를 해줘야 할 대상이지만 앞서 밝혔듯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정부조차도 쉬이 손을 대지 못하는 형편이다. 매해 이어지는 노동계의 포괄임금제 폐지 요구를 애써 못들은 척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개편과 폐지 둘러싸고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

고용노동부는 포괄임금제를 오남용하여 공짜야근, 장시간근로를 일삼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업장 87개소에 대해 즉시 감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포괄임금제를 오남용하여 공짜야근, 장시간근로를 일삼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업장 87개소에 대해 즉시 감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권리 침탈에 정부가 나선 것은 당연하지만 반가운 일이다. 지난 4월 7일, 고용노동부는 두달여간 온라인 부조리 신고센터를 통해 익명 신고된 포괄임금, 고정OT 오남용 의심 제기 사업장 87개소에 대해 즉시 감독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포괄임금제를 오남용하여 공짜야근, 장시간근로, 근로시간 산정 회피 등에 악용하는 시도를 차단하겠다는 의미다.

정부는 포괄임금 오남용 문제는 공정과 법치라는 노동개혁의 중대 과제이자, 유연 근로시간 제도의 취지와 운영을 가로막는 관행화된 부작용으로 보고 척결을 선언한 바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 포괄임금 오남용이 강하게 의심되는 16개 사업장을 선정하여 기획감독Ⅰ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2월부터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온라인 신고센터를 개설하여 포괄임금 오남용을 신고받고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경직적이고 획일적인 근로시간 제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포괄임금 약정이 널리 활용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를 오남용할 경우 공짜 야근, 장시간근로, 근로시간 산정 회피 등으로 이어지고, 이는 편법·불법·불신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포괄임금 오남용 악용 사례는 무관용 원칙으로 단호하게 대처하여 현장 우려를 없애겠다.”며, “이를 통해 자율·준법·신뢰의 기반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동참한 것은 정부만이 아니다. 지난 3월 24일, MZ노조와 청년 당정대를 연 김병민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포괄임금제가 법에는 없이 운영되면서 공짜 노동 문제를 야기한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많이 나왔고 악용 사례를 어떻게 걸러낼 수 있게 법을 보완할 지 방법을 찾아서 추가 입법하는 형태로 가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형동 국민의힘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도 "포괄임금제의 경우 개편 시 정부 측에서도 부담이 크지 않다. 이미 정부가 기업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다 관리 감독을 하고 있고 없애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을 정도로 여당에서도 이와 관련된 문제의식을 다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정부여당이 포괄임금제에 따른 폐단을 인지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행보를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냉정하게 검토해보면 이것이 곧 포괄임금제 폐지로 이어지는 분위기는 아니다.

이는 최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4월 10일 포괄임금제 금지를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에 반응하는 여당 책임자의 입장에서도 확인된다.

여당 정책의 기조를 마련하는 실무 총책임자인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3월 31일 근로 시간 제도 개편과 관련한 당정대 조찬간담회에서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근절하고 근로자대표제를 보완하는 등 현장에서 악용될 수 있는 내용을 방지하는 것을 법제화하는 방향을 논의했다”고 밝힌 것이 그 증거다.

앞서 고용부장관과 여당 의원들의 입장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포괄임금제의 오남용이나 폐단을 시정은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한다는 입장을 반복한 것. 결국 당장은 정부가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도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위험을 굳이 자초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노동자들의 속만 타들어간다. 

수시로 발생하는 오남용과 폐단을 지켜보면서도 폐지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현 상황이 합리적일 순 없다. 스마트 법률 사무소 김찬영 변호사는 “근로계약서 작성 시 기본임금과 소정 근로시간을 명시하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요소”라면서 “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포괄임금제는 사실상 근로기준법을 거스르는 제도”라고 꼬집을 정도로 포괄임금제 자체는 독소 조항이 많은 제도다. 모든 것을 떠나 그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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