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폭력배 취급에 발끈한 건설노동자들...정권 퇴진운동 나선다
[이슈] 폭력배 취급에 발끈한 건설노동자들...정권 퇴진운동 나선다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3.05.08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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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탄압 중단’ 호소하며 분신한 건설노동자 불씨
윤대통령 ‘건폭’이라는 신조어까지 동원하며 압박 나서
건폭이라는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 최근 건설노조 노동자들은 폭력배 취급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건폭이라는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 최근 건설노조 노동자들은 폭력배 취급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건설업은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허리이자 중추로 평가받아온 산업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집값 폭등이나 부실 공사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감수해야 했던 안타까운 전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간의 비난이 안타까움 수준이었다면 최근의 공기는 그를 넘어 척결해야 할 거악으로까지 격상된 분위기다. 그를 주도한 것이 바로 우리 국정의 총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대통령은 지난 2월, 건설 현장의 불법 행위를 ‘건폭’이라 칭하며 단속을 지시했고 이에 노동부와 검경은 채용 강요나 노조전임비·월례비를 받는 행위에 형법상 강요·협박·공갈죄를 적용해 다수의 건설노동자를 입건하는 행보를 이어왔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노동절이던 지난 5월 1일까지 전국 13개 지부와 조합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950여명이 소환조사를 받고, 15명이 구속됐다. 문제는 이 과정이 개운치 않다는 것. 정부가 건설노조의 불법 행위로 규정한 월례비·전임비·채용 요구 등은 건설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로 이에 관한 책임은 노동자들보다는 건설사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그에 관한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반발이 뒤따랐고 이 과정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한 건설노동자가 지난 노동절 당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임으로써 항의의 뜻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사망에 이르렀다. 건설노조를 위시한 건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전면전에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대로라면 건설노동자들과 정부간의 유례 없는 전면전이 불가피하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영장실질심사 앞두고 분신, 사망

지난 5월 2일 민주노총 12층 중회의실에서 건설노동자를 분신에 이르게 한 사건을 두고 항의에 나선 민주노총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제공 민주노총
지난 5월 2일 민주노총 12층 중회의실에서 건설노동자를 분신에 이르게 한 사건을 두고 항의에 나선 민주노총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제공 민주노총

노동절 당일이던 지난 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둔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도 지역 간부가 법원 앞에서 분신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오전 9시 무렵 강원도 강릉시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제3지대(강릉·속초·고성·양양)를 맡고 있는 양모 지대장이 분신했다. 양 지대장은 분신 직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유명을 달리 하고 말았다.

양 지대장은 다수의 건설 현장에서 조합원 채용, 노조 전임비 지급을 강요한 혐의(공동 공갈) 로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분신 당일인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를 얼마 앞두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것. 사고 이후 노동계가 날을 세운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무엇보다 최근의 기류가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와중이라 반발이 더할 수밖에 없는 상황. 윤대통령의 건폭 발언 이후 검경은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수사에 나서고 있는 중에 발생한 이번 일이 불러올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여겨진다. 

검경의 관련수사가 법으로 정해진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까지도 불법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시선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검경이 보인 모습을 보면 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청은 올해 국가수사본부에 배당된 전체 특진자 510명의 10분의 1에 달하는 50명을 건폭 수사에 할당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다. 수많은 서민들의 고통을 부른 전세사기 특별단속 특진자에 배당된 인원이 30명이라는 걸 고려하면 경찰이 어디에 비중을 두고 있는지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다.

단일 수사 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만큼 수사에 배정된 인원과 기간도 압도적이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8일부터 오는 6월 25일까지 200일 동안 ‘건설현장 폭력행위 특별단속’을 진행한다. 특별단속에는 전국 시·도 경찰청과 일선서 수사경찰관들이 대거 투입됐다. 지난 3월 기준 단속인력으로 총 2863명이 동원됐다.

많은 인원이 투입된 일이다 보기 실적쌓기에 목을 매는 모습이 목격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아닌, 특정 집단 때리기를 위한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 분신으로 목숨을 잃은 양 지대장의 케이스가 비근한 사례다. 월례비·전임비 등 건설현장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요구마저 불법으로 규정하고 무리하게 수사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월례비의 경우, 사실상 임금 성격의 돈이라는 판례도 있는 만큼 무턱대고 불법이라 규정하고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어폐가 있음에도 수사가 이어졌고 결국 이로 인한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양 지대장의 분신으로 관련 수사가 힘을 잃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던 건 아니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그를 기대하긴 힘들어보인다. 사건이 일어난 뒤 대통령실은 "고인의 명복을 빌고 가족에게도 위로를 전한다면서, 이런 불행한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는 입장을 내비쳤지만 그게 곧 수사 중단이나 건폭 프레임에서의 탈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불행한 사건 뒤에도 정부여당 관계자들은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더 강하게 건폭 퇴치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 야당과 노동계의 거친 반발에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정부여당의 모습은 결국 양자간의 전면전이 필연적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미 민노총과 한노총 등 노동단체들은 전면적인 총파업을 통해 정권 퇴진으로까지 이어지는 로드맵을 공개하고 있어 노정 갈등은 극한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국제 노동 단체들도 강력 반발.. 독재자 이미지 굳어질 판
우리는 법대로 한다는 소위 법치주의의 관점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현 정부가 이번 사고로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는 시그널은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그게 합리적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3일, 한국을 방문한 앰벳 유손 국제건설목공노련사무총장은 "한국 정부가 600명이 넘는 건설노조 조합원을 수사하고 간부 16명을 구속한 것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이라며 "다음주 ILO에 가서 지난 사흘간 한국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분명하게 보고할 것"이라고 밝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 정부의 노조를 향한 공세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앰벳 유손 사무총장은 "오는 6월 열리는 ILO 연례 전체 총회에서도 한국 정부의 노조 탄압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이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최근 정부의 노조 수사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내 단체들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같은 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성명을 내고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을 규탄하고 나선 것과 함께 참여연대도 건설노조에 대한 공격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당한 노조활동이 위축되는 현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 건설노조의 행보도 촌각을 다투고 있다. 건설노조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의견표명을 요청한 상태다. 정당한 노조활동을 공갈과 협박으로 매도하고 건폭이라는 악의적인 프레임을 덧씌우는 현 상황이 옳지 않음을 대외적으로 알리려는 의도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극단적인 갈등으로 인해 사분오열되는 상황을 막는 일이다. 지금처럼 정부가 건설노조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건폭이라는 용어로 적대시하는 이상, 양측의 갈등은 극한을 달릴 수밖에 없다.

이대성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건설업은 한국 경제를 견인해온 가장 든든한 직군이었다는 사실을 나몰라라 한 채 현재처럼 건폭이라는 프레임에 가둬놓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건설노조뿐만이 아닌 전체 노동자들의 반발이 이어질 것“이라면서 ”맹목적인 노조 때리기 대신 건설적인 노정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가 원하는 노동개혁의 해답은 강압과 채찍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과정 속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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