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5]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한상익 컨설턴트의 소소한 일상이야기125] 어디에서 살 것인가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3.05.23 0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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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사는 친구가 영구 귀국했다. 이 친구와는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니고 같은 직장에서도 근무했으니 꽤 인연이 깊은 편이다.

함께 직장 생활할 때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다고 하면서 함께 가자고 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민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노모까지 모시고 있는 형편상 낯선 나라로 이주한다는 것은 남의 일로 여겨져서 함께 떠나지 못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고 이민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회사 여건도 다른 길을 찾도록 부추기는 바람에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을 때 여러 선택지 중에 뉴질랜드로 향하게 된 데는 그 친구의 영향이 컸다.

친구는 자녀로 아들과 딸을 두었는데, 아이들이 장성해서 모두 미국으로 건너가 가정을 이루게 되면서 뉴질랜드에는 아무 연고가 없게 되었고, 직장도 정년퇴직하고 보니 더 이상 뉴질랜드에 남을 이유가 없어졌다고 했다.

자녀들이 있는 미국보다 한국에서 살기로 한 데는 아마도 미국에서 다시 이방인으로 새롭게 적응해 나가는 것보다는 처가 식구들도 있고 친구들도 있는 한국이 더 나으리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나도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다 보니 외국에 나가 살 때는 늘 이방인 같은 생각이 들어 겉돌다가 내 나라라는 안도감으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친구는 뉴질랜드 집도 내놓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기로 하고 돌아왔으니, 이곳에서 여생을 마칠 것 같고, 한국에서 평생을 살고 있는 다른 친구들의 경우도 상전벽해(桑田碧海)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최종 종착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친구의 자녀들이 모두 미국에 있듯이 내 자녀들도 모두 외국에 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이민 가서 거기서 학교를 마치고 결혼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국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둘째는 미국에 살고 있고 나머지 세 아들들은 뉴질랜드에 있다. 

친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친구의 처가 식구들은 한국에 있지만, 아내의 두 자매는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혈육이라고는 팔순이 넘은 누님이 한국에서 살고 있을 뿐이고, 나에게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들은 모두 외국에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장인 장모님을 모시는 일이 끝나게 되면 자녀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순리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미국과 뉴질랜드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치과의사를 하는 믿음직한 큰아들은 당연히 뉴질랜드로 와야 한다고 하고, 미국에 있는 정 많은 둘째 아들은 자기가 부모를 모시도록 예정(?)되어 있다고 미국으로 왔으면 한다.

둘째 아들을 보러 미국에 간 내자는 그곳에서 머물다 보니 미국 생활에 대한 편견이 조금 옅어진 듯하다. 일단 아들네가 거주하고 있는 곳의 주거 환경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보내 준 사진을 보니 한국처럼 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가 시야를 막는 게 없고, 앞마당에 잔디가 깔린 나지막한 단독 주택들로 구성된 전형적인 미국 주택 단지라서 안정감을 느끼게 하며 멀리 바라 보이는 산이 심적 평안함을 준다. 

또한 의초로운 친자매들과 가까운 지인들이 근처에 살고 있어 심심하면 모여 수다도 떨 수 있고, 교회도 한국어로 예배를 볼 수 있으니 마음도 편하고 불편한 점을 못 느꼈을 것이다. 아내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과 아는 동생들도 미국에 많이 살고 있어서, 가면 어울릴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점과 먹거리, 볼거리가 풍부한 것도 충분히 매력이 있다.

문제는 잊을 만하면 터지는 무차별 총기 사고로 인해 안전에 관한 불안감이 여전하고, 한국처럼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하다는 점과 비교와 경쟁이 치열해서 노후를 느긋하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가가 우려되고, 합법적인 신분을 갖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반면에 뉴질랜드는 일단 시민권이 있으니 신분 보장이 되고, 다양한 복지 제도로 재정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또한 아들 셋과 여섯 명의 손자녀가 모두 뉴질랜드에 살고 있으니 자주는 아니더라도 연휴에는 함께 여행도 가고, 가족 행사도 함께할 수 있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지금도 자주 다니던 거리가 눈에 선하듯 익숙하여 미국보다 적응하기가 쉬울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뉴질랜드로 가야 하는 당위성을 마련하려는 듯이 배려심 많은 큰 딸내미가 최근에 스시 가게를 인수했다. 가게 규모가 조그마하고 운영 시간도 짧아서 우리 내외가 가서 하면 딱 좋을 규모라고 한다. 

노후에 일도 하며 생활비도 벌 수 있어 자녀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이 될 수 있을 거 같아 무게추가 뉴질랜드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간다.

누군가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보다 누구와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집에서 살더라도 함께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쁘다면 같은 공간에 있는 자체가 고역일 것이다. 

하지만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라는 들국화의 노래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듯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 물리적 공간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에서 살던지 함께 어울리는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물리적 환경은 크게 문제 되지 않으리라는 의견은 일리가 있다. 사람의 생존 본능과 적응력은 대단해서 어떤 환경에서도 맞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기 맑고 청량한 뉴질랜드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황사와 대기 오염으로 뿌연 하늘을 보고 어떻게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고 있는 내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문제는 생존이 아니라 삶의 질을 따질 때 생긴다. 어느 곳에서나 적응해서 생존해 나갈 수는 있겠지만, 이왕 살 바에는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살면 금상첨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종착지를 선택하는 일이 그래서 쉽지 않다.

한상익
•푸른소나무 life plan consulting 대표
•수필가 •재취업지원 컨설턴트 
•한국생애설계사(CLP)
•뉴질랜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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